밥 한 그릇

글. 이이원

이야기 하나.
조갑종 선진이 영산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방 고칠 일이 생겨 이웃에 사는 구들돌 장수에게 구들돌을 주문했다. 가져다주기로 한 날에 맞춰 방을 미리 뜯었는데 구들돌이 도착하지 않았다. 그는 며칠이 지난 해질 무렵에서야 구들돌을 싣고 왔다. 날이 저물어 저녁식사를 대접하려다가 그간의 사정을 대종사께 말씀드렸다. “아무런 소식도 없이 약속을 어긴 것은 큰 잘못이다. 그 구들돌 장수에게도 어떤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겠지만, 저녁밥은 주지 말도록 해라.”
그러나 조갑종 선진이 생각하기에는 날씨도 춥고 배도 고플 것 같았다. 결국 이원화 선진에게 부탁하여 저녁을 대접해 보냈는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그 사실을 대종사께 고백했다. “여길 오가는 사람에게 밥 한 그릇 공양하는 건 참으로 소중한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은 우리와 약속을 하고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오기로 한 날에 맞춰 방까지 미리 뜯었으니 우리의 손해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와 같은 공가(公家)에서 약속 어긴 것을 별일 아닌 듯 여기고 저녁밥까지 준다면, 그 사람은 결국 이 사람 저 사람에게도 약속을 잘 지키지 않게 되고 결국 신용 없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그것을 바로잡아주려고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너는 나보다 자비심이 많고 선량한 사람이로구나. 네가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다.”
소태산 대종사의 꾸중에 모골이 송연하다. 매끼니 밥 한 그릇 앞에 두고, 한 사람의 일생을 바로잡고 영생을 안내하고자 하셨던 대자대비의 마음이 담겼음을 챙겨본다. 아! 맛있는 밥 한 그릇.

이야기 둘.
교당으로 한 젊은 남자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산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내의 출산으로 아이의 양육이 어려우며, 아직 제대로 된 일을 구하지 못했고, 쌀이 떨어져서 밥도 굶고 있다는 전화였다. 교당에는 이곳저곳에서 도와달라는 전화가 자주 걸려오고 시도 때도 없이 문을 두드리며 돈을 달라거나, 필요 없는 물건의 구매를 강요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정중하게 거절하면 온갖 싫은 소리를 다 쏟아놓거나 전화를 툭 끊어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왜인지 모르게 그날의 전화는 진심처럼 들렸다.
마침 쌀이 조금 여유 있길래 나눠줄 요량으로 교당에 오라고 했다. 쌀을 덜어주려 했더니 굳이 “마트에서 새로 사주든지, 돈으로 주면 내가 사겠다.”고 한다. ‘전화로 말한 이 사람의 이야기가 거짓이었구나!’ 정말 힘들고 어렵다면 감사하며 받아갈 일인데…. 돈을 요구한 것은 그의 말이 거짓이라는 방증이었다.
교당은 어려운 이웃들과 정신 육신 물질로 함께 하는 곳이다. 하지만 자력을 키우지 않고 무작정 도움을 바라는 사람에게 참으로 돕는 일이란 무엇일까. 이웃과 함께하는 일이 사람에게 공들이는 일인데, 오늘도 쌀 한 줌 아껴 ‘이웃과 함께하리라.’는 마음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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