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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은혜 갚을 차례/새벽부터 빗소리다/평생의 오점/길냥이를 부탁해 2017년02월호

은혜 갚을 차례

글. 박향전

연말 저녁, 한울장학회 운영위원회를 하는 중에 <월간 원광>으로부터 글을 부탁받았다.
한울장학회에서는 은혜를 발견하고 그 은혜를 갚는 마음으로 매월 만 원씩의 회비를 모은다. ‘남의 자녀라도 내 자녀같이 가르치자’는 타자녀교육의 정신에 바탕해 2015년에 설립된 이 장학회는 혈연, 지연은 물론 종교까지 초월해 회원가입이 가능하며, 열악한 환경에서도 학업에 정진하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장학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나는 이 장학회의 총무를 맡아 2년 임기를 마치고, 2017년에 재임됐다. 결혼 후 전업주부의 삶을 살면서 두 아이를 키우고 공부를 병행하고 있기 때문에 육아와 살림, 그리고 계속 돌아오는 시험 준비까지, 내 생활은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바쁘다. 하지만 통영교당 서광덕 교무님으로부터 총무 일을 제안 받았을 때, 나는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는 결혼한 지 2년이 지나도록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가족과 친지의 간절한 바람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다 해봤지만 그래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그때 나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이만 생기게 해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겠다’.고 진리전에 기도했다. 그 기도가 하늘에 사무쳤던지 얼마 뒤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겼고, 26개월 터울의 두 아이를 건강하게 낳았다.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 다니는 엄마들을 눈물 맺힌 마음으로 부러워했던 나는, 현재 딸과 아들을 모두 가진 200점 엄마가 되어있다. 간절히 바라던 바를 이룬 이후로 내 삶은 더 이상 바라는 게 없을 정도로 감사와 행복이 흘러넘친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 둘째 아이까지 어린이집에 보낼 시기가 되었을 때다. 이제 조금은 내 시간을 가질 수 있겠다 싶었던 바로 그 해에 한울장학회가 발족되었고, 총무로 추천을 받았다. 두 마음 없이 ‘아, 지금부터 내가 받은 큰 은혜를 갚을 차례가 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혜란 영생을 통해 자기가 뿌려 놓은 만큼 받는 것이고, 또 받은 은혜는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다. 진리는 은행의 출납보다 더 정확하게 인과보응의 이치를 실행한다. 나의 보물인 두 아이를 얻었으니, 아무리 시간이 없더라도 도움이 필요한 곳에 보답하는 게 당연하다.
새해를 맞으며, 그리고 한울장학회의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지금껏 받은 은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글을 쓰다가 잠시 멈추고 아이들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니, 또다시 가슴이 벅차오른다. 삶 속에서 은혜를 발견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인 것 같다.
2017년에도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정성을 다해야겠다.


새벽부터 빗소리다 

글. 안병욱

하루를 시작하며 들리는 첫 소리의 느낌에 따라 전날 기운이 묻어나오기 마련인데, 나의 감정은 빗소리를 반겨줄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나는 비가 싫다.
미운 마음이 든 마당에 미운 이유를 찾아보기로 했다.
첫째로, 옷이 젖는 게 싫다. 젖는 게 싫을 만큼 값비싼 옷을 갖고 있지도 않지만, 나름 까다롭게 고른 옷이 젖어 축축해지면 스멀스멀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또, 자유롭지 못하다. 우산을 들어야 하는 내 손이 자유롭지 못하고, 이렇게 비 오는 날에도 억지로 출근해야 하는 내가 자유롭지 못하다.
셋째, 온갖 묵은 감정들이 올라와 괴롭혀대기 시작하면 나조차 나를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식이면 온갖 꼬투리를 잡아 백 가지도 넘는 억지 이유를 만들어낼 것이다. 비도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터인데, 내가 비에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바꿔먹기로 한다. 내려주는 비가 반가웠을 때를 떠올려보기로.
하나, 낯설고 따분한 여행지.
3시간여의 기다림을 홀로 버텨야 하는 시간인 데다 비가 올 것처럼 하늘은 어둑어둑했다. 식당으로 향했다. 십여 분 후,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때마침 비가 시원하게 내린다. 예상과 달리 여행지에서 만난 굵은 비는, 기분을 망쳐놓기 보다는 따분함을 식혀주는 이벤트 같았다. 여행지에 땡볕만 비춘다면 금세 지쳐버렸을 일이다.
둘, 회사일로 숨 쉴 틈 없이 바쁜 날들.
바쁜 일정에 따라 마음도 바쁘고, 몸도 바빴다. 시계를 보니 퇴근시간이 지나 있었고 일정을 체크하며 빌딩 현관으로 향하는데 시원스럽게 내려주는 굵은 비를 만났다. 예상치 못한 비에 붙들고 있던 바쁜 마음을 놓쳐버렸다. 멍하니 서 있자 “이제 그칠 때가 되었다.”는 경비아저씨의 걱정스런 인사가 들려온다. 잠시 비 감상을 하기로 한다. 그리고는 요 앞 정류장까지 뛰어간다.
그리고 또…. 찾기 어려울 것 같던 비가 반가웠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것도 어렵지 않게 말이다. 그리고는 비에 대입해본다. 비 대신 사람, 비 대신 일, 비 대신 미래. 비 대신….
‘내가 누군가의 단점만을 끄집어내진 않았던가. 내가 누군가의 세계관에 반하는 이유만 찾아내진 않았던가. 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인 이유만 만들어내어 기회를 잃진 않았던가….’ 작은 종지에 담겨있던 마음을 꺼내 넓은 접시에 놓아본다.


평생의 오점

글. 김종환

원불교에 자의반(自意半) 타의반(他意半)으로 입교한 지 만 50년이 되어, 과분하게도 항마위로 승급하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두 분의 스승님에게 결례를 범한 죄책감이 응어리로 농축(濃縮)되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옛날, 열 명도 못 되는 고령의 할머니 교도님들과 문을 열게 된 곡성교당이 1년 만에 문을 닫아야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그때 이성로 교무님이 부임하시면서 교당의 활성화를 위하여 나에게 교도회장직을 권유했다. 하지만 원불교에 대한 기초 상식도 없는데다가 신심조차 없었던 나로서는 부담스러웠고, 당시 몇 개 지역사회단체에 관계하고 있어서 응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교무님은 매일같이 방문해 집요하게 설득하였으나, 나의 완강한 사양에 눈물바람을 보이기도 하셨다.
당시 교당은 월세를 내고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나는 처고모님이 남겨두신 유산 일부와 지역사회 유지 몇 분의 도움을 받아 교당 건물을 매입하는 것으로 교당과의 인연을 완전히 정리하기로 결심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교무님이 “건물 마련에 대한 인사차 종법사님께 예방하자.”고 권유하였다. 나는 인사만 드리고 오기로 하고 승낙하였다.
원기 56년 11월, 그렇게 나는 교무님과 동행하여 총부에서 대산 종사님(당시 종법사)을 예방하게 되었다. 대산 종사님과 허심 없이 약 30여 분간 환담하던 중, 교당회장직 수락을 못하는 나의 사정 이야기가 나왔다. 그것을 들으신 대산 종사님이 엷은 미소를 얼굴에 띠며 예정되어 있던 다음 일정을 미루셨다. 그 후 총부와 원광대학 경내를 한 시간 가량 순회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는데, 당시 나는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였다. 말씀 말씀이 다 법설인 것을…. 받들 생각은 못하고 잘못된 자만심으로 가득 찼던 나의 언행 때문에, 수행하던 교무님의 입장은 얼마나 난처하였을까? 지금의 나는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다.
내 삶에 최고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기록될 대산 종사님과의 귀중한 만남.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오롯이 받들지 못했던 것과, 이성로 교무님이 눈물바람을 보이게 한 죄책감은 씻지 못할 오점(汚點)으로 응어리져 지금도 내 가슴에 뭉쳐 있다.
그 후 나는 교당을 마련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광스럽게도 개인 공로표창을 받았다. 이 표창패를 내가 보관중인 많은 상패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큰 스승님의 높은 뜻을 깨우치지 못한 죄책감과 참회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대산 종사님과 이성로 원로교무님에게 합장하고, 머리 숙여 다시 한 번 지면을 통해서 용서를 구하고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여생, 두 분 스승님에게 참회하는 심정으로 더욱 수행에 정신하면서 살아가기를 다짐하며 끝을 맺는다.


길냥이를 부탁해

글. 최승희

“야옹, 야옹, 야옹.”
 2016년의 마지막 외출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이제 막 새끼 티를 벗은 작은 고양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대부분의 길고양이들과 다르게 내가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바들바들 떨고 있을 뿐이었다.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 조그만 애를 어떡하지? 그렇다고 데려갈 수는 없는데?’ 나는 계단에 쭈그려 앉아 고양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슬쩍 일어서려는데 내 발과 발 사이로 고양이가 들어왔다.
일단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도록 계단 위쪽 화단에 직접 들어올려주고 싶었지만 찜찜했다. 마침 그날 AI감염 의심 고양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고양이가 화단 쪽으로 따라오기를 바라며,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기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이십 분쯤, 드디어 고양이가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어, 이러면 안 되는데.’ 고양이는 화단에 들어가지 않고 내 신발에 코를 비비다가 내가 선 자리를 빙빙 돌았다. 나는 AI가 떠올라 녀석을 애써 외면했다. 고양이는 2미터 정도 나를 따라오다 쫓아내는 손짓을 하자 그제야 화단으로 들어갔다. 그 작은 몸에게 2미터 거리는 어느 정도일까.
집에 도착해서도 고양이 생각에 마음 한쪽이 불편했다. 다음날 다시 가보기로 하며 잠들었는데, 그날 먹은 회가 탈이 났는지 새벽부터 구토를 했다. 하루 동안 앓고 나니, 집에서 15분 정도 떨어진 그곳까지 다시 갈 기력은 없었다.
‘삼 일이나 지났으니 다른 데로 가고 없으려나? 누가 해코지하지는 않으려나?’ 아픈 지 삼 일째,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나는 온갖 경우의 수를 생각만 하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집을 나섰다. 며칠을 굶은 빈속인데도 작은 스티로폼 박스와 수건을 챙겨 집을 나서는 걸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계단은 텅 비어있었다. 실망과 안도가 교차했다. 집에 돌아가려는데, 계단 아래에서 작은 그림자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 녀석이었다. 그 녀석이 튀어나온 곳에는 물과 사료가 있었다. 그릇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누군가 먹이를 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적당한 곳에 준비해온 보금자리를 두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책임감을 느껴서 신고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일정 기간 내에 입양 신청자가 없으면 안락사 되는 운명. 나에게 그 녀석의 운명을 좌우할 권리는 없었다. 먹이를 챙겨주는, 누군지 모르는 분에게 마음속으로 감사 인사를 드리며 그 녀석의 생존을 빌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른 고양이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