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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시집가는 길 2017년02월호

부부가 되는 이들을 축복하는, 폐백음식
시집가는 길
취재.  기자

꼬들꼬들 말린 사과꽃과 당근꽃, 각양각색의 다식, 매끈하게 손질한 밤에 호두, 키위, 곶감, 도라지 정과….
차곡차곡 늘어놓으니 한 상 가득 들어차는 구절판의 재료들. 형형색색의 재료들을 펼쳐놓은 조대현 씨가 자리를 잡고 본격적으로 찬합을 채워나간다. 내일 있을 결혼식을 위해 폐백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조 씨가 구절판 찬합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인 박지근 씨는 대추고임에 한창이다. 350여 알의 대추를 일일이 실에 꿰어 둥글게 쌓아올리는 작업, 그 속에 가득한 밤과 촘촘이 자리 잡은 형태가 어여쁘기 짝이 없다.
미리 재료를 만들어두면 작업은 척척. 하지만 장보기부터 무려 열흘을 꼬박 준비해야 하는 게 바로 폐백 음식이다. 구절판찬합에 채워넣는 재료만 해도 아홉 가지가 넘는 데다, 육포나 도라지 정과 등 뭐 하나 기성제품 없이 직접 만드는 까닭이다. 조 씨는 재료들의 양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찬합을 주의 깊게 살핀다. 색과 모양을 하나하나 신경써가며 배치하다보니, 집중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꽃송이 모양의 오징어를 가운데에 채워 넣으면 끝. 조 씨의 손끝이 조심스러운 게, 오징어꽃으로 꽃꽂이를 하는 모양새다. 지금이야 집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지만, 본래 강남에서 십 년 이상 가게를 운영해왔던 그녀. 섬세하지 않으면 이 일을 할 수 없다는 게 그녀의 생각이다.
“오징어꽃 좀 더 만들어야겠네.” 박 씨가 미리 잘라둔 오징어를 꺼낸다. 기본적인 재료들은 모두 조 씨가 만들어내지만, 대추고임과 오징어꽃은 그의 몫.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우스갯소리를 하며 가위를 잡는 솜씨가 썩 능숙하다. 10년 동안 아내의 일을 거들어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수를 받은 참이다. 조 씨는 “옛날엔 오징어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느냐.”며 넌지시 대꾸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녀가 대추고임에 손을 대지 못할 정도다. 재료 하나하나 만드는 작업을 생각하면 당초 혼자서 할 수도 없는 일. 오징어꽃으로 구절판의 가운데를 정성스럽게 꾸민 조 씨가 몸을 일으킨다. “육포는 어디 있어요?” “내 눈에는 땡이요.” “없어요?”
육포는 며느리를 치마폭으로 감싸듯 감싸주어라, 대추는 아들딸 많이 낳아라, 밤은 삼정승을 낳아라…. 하다못해 부재료로 쓰이는 은행조차도 옛날 어른들이 사랑을 표현할 때 사용하던 열매다. 음식마다 뜻이 있으니 폐백을 하는 절차에도 다 의미가 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폐백이나 이바지 풍습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 조 씨에겐 안타까운 일. 그래서 들어오는 주문들을 더욱 소중하게 받는다. 말린 육포를 살피던 그녀가 남편을 향해 말을 건넨다. “올 때 잣 좀 갖다 줘요.”
본래 그녀는 한식 강의만 25년을 했다. 잡지 연재도 하고, 가까운 지인부터 탤런트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치던 그때만 해도 폐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잠시 강의를 쉬었던 게 폐백과 이바지 일로 자연스레 넘어간 것이다. 일이 워낙 힘들어 손을 놓을까 고민하다가도 주문이 들어오면 그 마음이 고마워서 놓을 수 없었던 나날. 남편 박 씨도 퇴임을 하고 일을 거들어주니, 심심찮게 도란도란 이어온 세월이다. 꼭 내 자녀를 시집보내는 기분으로 시작했던 일. 강의를 접고 폐백을 이어온 13년, 매번 음식을 보낸 날이면 갓 시작하는 어린 부부를 위해 기도한다. 이런 일을 하니 남을 위한 기도를 하게 된다며, 그녀는 종종 웃음을 짓는다.
그런 마음이 전해진 덕분인지, 예식장에서 폐백을 돕는 수모가 조 씨가 만든 음식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경우도 있다. 오늘은 딸 둘의 폐백도 모자라, 며느리에게 넌지시 소개를 해주어 아들 결혼식의 폐백까지 맡긴 손님이다. 그러니 조 씨의 손길에는 더욱 정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물며 젊은이들이 부부로서 첫 출발하는 자리를 함께하는 음식이니 보람은 당연히 따라온다.
“이제 포장해야겠네. 보자기 가져와 봐요.” 대추는 홍보자기, 육포는 청보자기. 박 씨는 행여 새신부의 앞날에 풀기 어려운 매듭이 질까 싶어 보자기를 묶지 않고 끼워서 마무리한다. 큼지막한 복주머니 모양으로 마련된 음식들을 보니 어깨에 잔뜩 쌓였던 피로가 가시는 듯하다. 음식들을 내일 아침 일찍 식장으로 배달해, 이번 주에도 딸아이 하나를 무사히 시집보낸다.
힘이 들지만 참 이만하길 다행이다. 이렇게 자분자분 많은 결혼식을 축복해나갈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