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고요함(虛靜·恬淡·寂漠·無爲)은
천지의 근본이자 도덕의 지극함이다


글. 김정탁

<천도(天道)> 본문

하늘의 도(天道)는 운행하면서 멈추는 일이 없기에 만물이 생겨난다.
제왕의 도(帝道)도 운행하면서 멈추는 일이 없기에 천하가 따른다.
성인의 도(聖道)도 운행하면서 멈추는 일이 없기에 세상 사람들이 쫓는다.
하늘(天)에 밝고, 거룩함(聖)에 통하고, 제왕의 덕(德)에 트인 사람은 자신을 위함이 어두우며 고요하다.
성인의 고요함(靜)은 고요함이 좋아 고요하게 있는 걸 말하지 않고 만물에 마음이 어지럽혀지지 않은 고요함이다.
물이 고요하면 그 물의 밝음은 수염이나 눈썹을 비칠 정도이고,
그 물의 평평함은 수준기에 들어맞아 훌륭한 목공도 그걸 기준으로 삼을 정도이다.
물의 고요함이 이처럼 밝은데 하물며 정신이야!
성인의 마음의 고요함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는가! 
성인 마음의 고요함은 천지를 비쳐주는 거울이며, 만물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허정(虛靜), 염담(恬淡), 적막(寂漠), 무위(無爲)는 천지의 근본이고 도덕의 지극이어서 제왕과 성인은 거기에 쉰다.
거기에서 쉬면 마음이 비워지고, 비워지면 채워지고, 채워지면 다 갖추어진다.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지고, 고요해지면 모든 것과 쉽게 응하여 움직이고, 움직이면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
고요해지면 하고자 함이 없고, 하고자 함이 없으면 각자가 책임을 지고 일한다.
하고자 함이 없으면 마음이 여유롭고, 마음이 여유로우면 걱정과 근심이 없어져 오래오래 산다.
허정, 염담, 적막, 무위는 만물의 근본이다.
이것을 밝힘으로써 나라를 다스렸던 것이 요(堯)가 군주였을 때이다.
이것을 밝힘으로써 왕을 섬겼던 것이 순(舜)이 신하 노릇 하던 때이다.
이럼으로써 위에 처한 게 제왕과 천자의 덕이며, 이럼으로써 아래에 처한 것이 노자(玄聖)와 공자(素王)의 덕이다.
이럼으로써 속세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노닐면 강해나 산림에 은둔한 선비들이 따른다.
이렇게 나아감으로써 세상을 위하고 어루만지면 공적이 커지고, 이름도 드러나서 천하가 하나될 것이다.
고요하면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왕이 되고 하고자 함이 없으면 존경을 받는다.
본새대로 있어도 천하에 그와 아름다움을 다툴 수 있는 상대가 없다.

지난달 <외편> ‘천지(天地)’를 끝내고, 이제부터 <외편> ‘천도(天道)’를 시작한다. ‘천지’의 주제는 천하 경영과 관련한 치도(治道)이다. 장자가 치도에 관심을 보였다는 점에선 유가와 맥을 같이한다. 그렇지만 치도를 구현하는 방법에선 차이가 크다. 유가식 치도가 인(仁)를 앞세운 유위지치(有爲之治)라면, 노장적 치도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무위지치(無爲之治)다. 따라서 ‘천도’에 이어 ‘천지’에서도 유위지치를 비판하는 내용이 전개된다. 천도는 하늘의 도(天道), 제왕의 도(帝道), 성인의 도(聖道)를 소개하며 시작한다. 여기서 성인의 도는 ‘재유(在宥)’의 인도(人道) 개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천도를 재유의 연결이라 보는 시각도 있다. 
하늘의 도, 즉 천도(天道)는 운행을 멈추지 않으므로 만물이 항상 생성된다. 사실이 그렇지 않은가! 천도에 따라 사시의 순환이 생겨나기에 만물은 소생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제도(帝道)도 운행을 멈추지 않음으로 천하가 그쪽으로 기울고, 또 성도(聖道)도 운행을 멈추지 않음으로 세상 사람들이 이를 따른다. 그런데 막상 천도를 훤히 알고, 성도와 통하고, 제왕의 덕에 대해 모든 방면에서 통하는 사람은 자신을 위하는 데 있어선 어두울 정도로 고요하다.  
그런데 성인의 이런 고요함(靜)은 고요함 자체가 좋아 고요하게 머무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 만물이 성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기에 저절로 고요해지는 것이다. 이런 고요함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거울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물이 고요하면 그 밝음이 수염이나 눈썹을 비칠 정도이고, 그 평평함이 수준기에 들어맞아 훌륭한 목공도 그걸 기준으로 삼는다. 물이 고요해도 이 정도로 밝고 맑은데, 하물며 성인 마음의 고요함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은가. 그러니 성인의 고요한 마음은 천지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天地之鑑)이자 만물을 빠짐없이 비추는 거울(萬物之鏡)인 셈이다.
장자는 성인의 이런 고요함을 구체적으로 밝힌다. 허정(虛靜), 염담(恬淡), 적막(寂漠), 무위(無爲)가 그것이다. 이 개념들은 노자 <도덕경>에서 등장한다. 먼저 허정은 텅 빈 고요함을 의미하는데, 도덕경 16장에 ‘마음 비움이 지극함에 이르고  고요함 지킴을 돈돈히 하다(致虛極 守靜篤).’는 내용에서 따온 듯하다. 여기서 치허극(致虛極)의 ‘허(虛)’와 수정독(守靜篤)의 ‘정(靜)’을 합해 허정(虛靜)이란 단어를 만들었다. 또 염담은 담담함을 뜻하는데, 도덕경 31장에 ‘마음을 담담하게 지키는 게 최상이다(恬淡爲上).’는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또 쓸쓸하고 휑함을 뜻하는 적막은 도덕경 25장에 ‘쓸쓸하고 휑하다(寂兮寥兮).’에서 비롯되었다. 무위는 하고자함이 없다는 의미인데, 도가사상을 대표하는 개념이기에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장자에 따르면 허정, 염담, 적막, 무위는 천지의 근본(天地之本)이자 도덕의 지극함(道德之至)이다. 그래서 제왕과 성인까지 여기에 머물면서 쉰다. 여기서 쉬면(休) 마음을 비우고(虛), 마음을 비우면 차게 되고(實), 차면 다 갖추어진다(備). 또 마음을 비우면 고요해지고(靜), 고요해지면 모든 것과 다 응대하며 움직이고(動), 움직이면 만사가 잘 이루어진다(得). 또 고요해지면 하고자 함이 없고(無爲), 하고자 함이 없으면 각자가 책임을 지고 일한다(任事者責). 또 하고자 함이 없으면 마음이 온화해지고(兪兪), 마음이 온화해지면 걱정과 근심이 없어서(憂患不能處) 오래오래 산다(年壽長).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다.

 休 → 虛 → 實 → 備
              靜 → 動 → 得
                   無爲 → 任事者責
                        兪兪 → 憂患不能處 → 年壽長

허정, 염담, 적막, 무위는 만물의 근본(萬物之本)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것을 깨달으면 임금 자리에 앉을 수 있다. 요(堯) 임금이 그런 경우이다. 또 이것을 깨달으면 신하 자리에 설 수 있는데, 순(舜)이 임금되기 전이 그런 경우이다. 이렇듯 허정, 염담, 적막, 무위를 지니고 윗자리에 있으면 제왕이나 천자의 덕이 되고, 이걸 지니고 아랫자리에 있으면 현성(玄聖)과 소왕(素王)의 도가 된다. 여기서 현성은 성인으로서의 덕을 지니고 있으나 드러나지 않게 사는 사람을 말하는데, 노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소왕은 제왕의 능력을 가지고 있으나 재야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데, 공자를 의미한다.
허정, 염담, 적막, 무위를 깨달아 세속에서 물러나 한가하게 노닐게 되면 강해(江海)나 산림(山林)에 은둔한 선비들이 그런 성인(聖人)을 진심으로 따른다. 이것이 휴(休) → 허(虛) → 실(實) → 비(備)의 과정이다. 반대로 벼슬길에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면 개인적으로는 공명을 크게 떨치면서 천하는 하나로 통일된다. 이것은 정(靜) → 동(動) → 득(得)의 과정이다. 이런 식으로 허정, 염담, 적막, 무위를 깨달으면 가만히 있어도 성인이 되고, 움직이면 왕이 된다. 이처럼 하고자 함이 없어도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위(無爲) → 임사자책(任事者責)의 과정이다. 또 본새대로 소박하게 있어도 천하에 그와 아름다움을 겨룰 사람이 없게 된다. 이것이 유유(兪兪) → 우환불능처(憂患不能處) → 년수장(年壽長)의 과정이다. 
Ι교수·성균관대학교 소통학. smilejtk@hotmail.com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