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종 이리보화당한의원 원장
도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취재. 장지해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입학이 확정된 뒤 큰 형(김성현 원로교무)이 서류를 한 부 가져왔다. 그리고는 “한의사 인재 양성 장학생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으니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때 형이 내민 그 서류가 전무출신 지원서였다는 것은, 학림사(과거 원불교학과 남자기숙사)에 들어가서야 알게 된 일이었다.
낮에는 한의과대학생으로, 아침저녁에는 원불교학과생으로 수학시절 본의 아닌 이중생활(?)을 했던 김학종 교무(이리보화당한의원 원장). 출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시작한 생활은 아니었지만 총부에서의 생활은 본래 지내던 곳인 양 모든 게 좋았다. 이때를 두고 “전무출신을 하면서 한의학을 부전공으로 할 수 있어서 큰 소득이었다.”고 말하는 그. 두 공부의 병행이 너무 힘들었을 땐 오히려 한의학을 그만두고 원불교학을 선택하고 싶었다니, 아무래도 그는 천생 전무출신인 것이다.

● 보화당한의원에서 근무한 지 올해로 35년이 되셨습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당시에는 중앙총부 초창의 운영살림을 대부분 책임질 정도로 중요하고 큰 기관이었어요. 참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 한의학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지요.”
원기 68년(1983) 한의대 졸업과 함께 한의사교무가 된 그. 한의대를 다니던 수학기간 6년 동안 원불교학과생들과 함께 예비과정을 이수함으로써 교무 자격을 인증받아 이리보화당에서 교역생활을 시작했다. 두 학과 생활을 하는 게 힘들긴 했지만, 무엇보다 아침 일찍 일어나 좌선을 하거나 법문을 듣는 것이 너무나 잘 맞았다는 그. 그걸 두고 스스로 ‘아마 전생부터 이어온 습관이 있었나보다.’고 생각한단다. 그래서일까? 성적이 우수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의 진학을 꿈꿨지만 가정형편 때문에 고민하던 어느 날, 큰 형의 원광대학교 진학 제안이나 스스로 큰 거부감 없이 내린 결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한 일이다.

● 한의사교무 1세대로서, 사명감도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사명감이라고 하면 그저 ‘전무출신 사명감’일 뿐이지, 기관이나 일에 대한 사명감이 따로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일하는 사명감은 세속적인 사명감이고, 기관을 발전시키느냐 못 시키느냐는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잖아요. 전무출신을 하려다보니 주어진 일을 할 뿐 아닌가요? 내 앞에 앉은 교무님이나, 저나, 종법사님이나, 대종사님이나 그 사명은 같아야 하고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한의사교무로서, 개인의 이익이나 안위보다는 교단의 살림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을 김 교무. 혹 그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느냐고 물었더니 “추호도 없었다.”는 답이 바로 돌아왔다. 물론 적응해가는 과정 중에서야 크고 작은 갈등이 없었겠냐만은, ‘밖에서 한의사를 하면 더 잘 살 수 있을텐데….’ 하는 개인적인 욕심은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너무 세속적인 질문을 던진 것 같아 웃어버리고 만 기자다.

● 몸과 마음의 상관성에 대한 연구도 계속 하고 계시죠?
“예전에 전무출신 훈련 때 ‘유전자의 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생각과 감정의 흐름이다.’라는 내용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이건 학문이자 진리예요. 내가 오늘 만약 화가 났다, 그러면 화난 그 순간에 몸 속 세포들이 영향을 받아서 모두 변해요. 인과는 이 찰나에 작용을 하고 있지요. 내가 생각한 그게 세포 하나하나에 작용을 해서 나를 아프게 만드는 거예요.”
그가 말하는 유전자는, 일종의 업과 같다. 내가 짓고 들인 습관이 저장되었다가 발현되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니 현재의 내 생각과 습관을 바꾸면 유전자도 업도 바꿀 수 있다는 것. 정업난면이라는 말에 묶이지 말고,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미래를 바꿔나갈 수 있다고 힘줘 말하는 김 교무다.

● 역경을 극복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요.
“교무라고 해도 내 몸을 편안하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죠. 그런데 ‘내 몸을 아끼는 건 나에게 손해다.’라는 생각을 해야 해요.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번뇌가 오는 게 좋죠. 내가 내 자존심이 일어나는 걸 겪어보지 않으면 자존심을 다스리는 능력이 생기질 않거든요. 역경과 번뇌가 나를 키우는 양식이라는 걸 알면, 피하지 않게 돼요.”
그에게도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다. 마음을 너무나 괴롭게 만들던 어떤 인연, 그 인연 덕분에 성리연마를 하게 되었다는 것. ‘도대체 왜 이렇게 화가 날까?’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다 보니 자신을 가장 괴롭게 했던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공부를 하게 해준 은인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단다.

● 원불교가 사회와 더 가깝게 만나기 위한 고민도 많습니다.
“교무가 깨우쳐야 해요. 만약 어떤 마을에 전기가 안 들어와서 너무너무 깜깜한데 누군가 횃불을 하나 들고 나타나면 사람들이 앞길을 볼 수 있게 되잖아요. 많은 대중 가운데 깨친 사람이 한 명만 있으면 세상이 환해질 수 있어요. 누추한 집일지라도 그 안에 교무가 영성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으면 저절로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죠.”
우리 각자 각자가 대종사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 당연한 말’로 알아와서일까? ‘우리는 대종사님 혜명의 등불’이라는 제목의 성가 17장 의미가 제대로 와 닿은 건 이때였다.
“영성을 밝히는 일은, 좋은 건물이나 화려한 말에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교화 안 된다.’는 말은 ‘우리 공부 안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죠. 교화가 안 되는 원인을 왜 남에게서 찾나요? 환자를 만나서 병에 대해 잘 설명해주는 것도 교화고, 이렇게 교무와 교무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교화잖아요. 교화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어요.”
출가교역자 숫자 1,500명. 그 중 열 명이라도 제대로 된 횃불을 밝힌다면 세상을 환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는 그. 그러기에 ‘왜 내가 불을 안 밝혔지?’ ‘왜 내가 남을 원망했지?’를 생각하기보다, 종법사님이나 수위단 혹은 교단 지도부를 향해 ‘당연한 원망생활’을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마음 아프다.

● 젊은 후배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말씀을 해주세요.
“누구에게나 피가 붉게 돌고 뜨겁게 끓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두 길로 나뉘는 것 같아요. 정진하기도 가장 쉽지만 동시에 꺾이기도 가장 쉬운 거죠. 부직자의 ‘부’자 떼는 게 참 어려운데, 그때를 잘 지내고 나면 점점 중도가 잘 잡히는 시기가 와요. 그런데 사실 ‘부’자 떼도 별건 없어요. 오히려 그때가 더 좋을지도 모르겠네요. 하하하.”

● 인재양성에 대해서도 한 말씀 해주시죠.
“저는 특수직 인재양성이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필요하다고 봐요. 과거에 특수직으로 키워진 몇몇 사람들이 환속한 것 때문에 교단의 관심도가 멀어지긴 했지만, 학생 시절에 어떤 전문직 분야를 함께 해나가면 비용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참 좋은 기회가 되거든요.”
이 이야기를 하며 김 교무는 특히 ‘동기(동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가까이에서 함께 공부하는 이들의 배려와 관심이 있어야 특수직 인재 역시 잘 뿌리내릴 수 있다는 것. 모든 학과 일정을 함께하지 못하다보면 자칫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어서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한의사교무로서 오롯하게 살아올 수 있었던 공을 동기들에게 돌린다. 물론 개인의 단단한 서원은 필수 전제다.

● 표준삼는 인생의 좌우명이 있으신가요?
“교무님이나 나의 표준은 같아요. 가는 길이 같으니까요. 문자로 쓰면 주인공, 조금 더 풀어서 이야기하면 ‘당신 안에 있는 동그라미’. 그걸 표준 잡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 담은 지식은 치매에 걸리거나 열반하는 순간 모두 사라지지만,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동그라미는 절대 없어지지 않으니까요.”

● 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알려주세요.
“이 공부를 해야 해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던 대통령이나 가장 행복하기 위해 욕심을 냈던 그 주변 사람들이 요즘 왜 불행할까요? 그건 이 공부, 정신수양 사리연구 작업취사 공부를 안 해서 그래요. 정신수양 공부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사리연구 공부로 지혜를 밝히고, 작업취사 공부로 바른 행동을 했다면 이런 문제가 일어났을까요? 삼학공부는 원불교 사람만 하는 공부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열려있고,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어디에나 적용되는 공부죠. 원불교의 ‘원’이라는 의미는 그런 것 같아요. 단순히 다수의 종교 중에 하나로서가 아니라, 그 모든 종교와 사상을 다 품어내는 폭 넓은 의미로의 ‘원’인 거죠.”

● 도가 뭘까요?
“지금 교무님이 입으로 말하는 그게 도예요. 우리의 육근(안·이·비·설·신·의)을 떠나서는 도가 없죠. 도는, 당신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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