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성주에 가 보셨습니까?


K형, 잘 지내고 계십니까. 얼마 전 독실한 천주교 교인인 부인을 먼저 보낸 막막한 심사를 잘 추스르고 계십니까. 늦게 재미 붙인 그림공부는 계속하고 있겠지요.
K형, 별고을 성주(星州)에 가보신 적 있습니까. 많은 선비들이 배출되었고 또 주산이 가야산이라 불교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웠던 유서 깊은 고장입니다. 친환경 참외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도회지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넉넉하고 온화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선한 사람들이지요.
이곳에는 2대 종법사인 정산 종사의 탄생지와 구도지가 있습니다. 원불교 성지이지요. 이분은 야성(冶城) 송씨 후예로 이름은 도군(道君), 법명은 규(奎), 법호는 정산(鼎山)입니다. 주세불 대종사께서 전북 정읍 화해에서 정산 종사를 만난 후 “나는 이제 근심을 놓았다. 나의 법을 전해줄 법주를 만났다.”며 기뻐하셨지요. 그리고 19세의 이 젊은이를 수위단 중앙에 서임하셨지요.
K형도 아시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성주군 성산포대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가 배치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한편에서는 “사드배치가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필요하고 또 환경에 안전하다.”고 하지요. 다른 한편에서는 “국방과 무관하고 천문학적 비용이 지불되며 환경에 유해하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하자 사드배치 장소는 며칠 만에 성주골프장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국가적 사업계획이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순식간에 결정되고 또 바뀐 꼴입니다. “과연 국가적 사업이 맞기는 한가?”라며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갖기 시작했지요. “이건 아니다.”라는 여론이 시간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습니다. 성주성지의 머리 위에 사드를 얹어 놓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자 원불교 교무들은 성주, 김천,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사드 말고 평화!”를 앞장서서 외치고 있지요.
K형, 그런데 교무들의 사드배치 반대를 배반하는 그림자들이 교당 주변에 어른거립니다. 교무들의 사드배치 반대가 자기의 정치적 신념과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정치적 입장을 종교적 믿음보다 우선시 하는 거죠. 보편적 진리보다 이데올로기에 더 경도되어 있는 것입니다. 종교적 진리보다 정치적 입장을 더 치켜들 때 십자군이 등장하고, IS가 조직됨을 역사에서 읽습니다. 교당을 참 나의 공적성소(空寂聖所)가 아니라 세속의 에고실현장 정도로 삼기 때문 아닐까요. 이것은 교당을 분탕질하는 맹목이며, 교무들을 배은하는 행위입니다. 부처(佛)와 부처의 가르침(法), 승단(僧)을 믿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K형, 성당에서는 성(聖)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이를 신자로 받아들입니까. 이 사람이 교리를 해설하고, 선임신도로 세워지는 것을 용납하는지 궁금합니다. 천주교 성지인 양근성지 곁에 사드가 배치된다는데도 이를 쌍수하여 반기는 천주교 신자라면 이이의 신앙심이 온전한 것입니까.
교무들은 한반도에, 동북아에, 세계에 평화가 영원한 날갯짓 하기를 희망할 뿐입니다. 결코 정치적 입장의 한편에 서서 사드에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평화가 심어지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교무들은 보수냐 진보냐의 어느 한편에 서서 사드 반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님을 K형도 잘 알고 계시지요. 교무들의 사드배치 반대엔 약간의 정치적 입장도 개입해 있지 않습니다. 교무들이 원하는 건 평화 외에 아무 것도 없습니다.
K형, 원불교는 도덕세계의 도래를 희원합니다. 도덕세계는 정신을 개벽하지 않는 한 요원하지요.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도(道)는 현상계에서 덕(德)이라는 얼굴로 드러냅니다. 병기(兵器)가 결코 덕이 될 수는 없지요. 덕은 보편적 원칙입니다. 평화야말로 인류가 추구하는 궁극의 보편적 진리가 아닙니까.
형수님 안 계셔도 성당에 잘 나가시겠지요. 안부 묻는다는 게 두서없이 넋두리가 되었습니다. 겨울 문턱입니다. 건강 열심히 챙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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