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순자 전통 솜옷정장 기능전승자

따스함을 입다

전통 솜옷(한복)은 두 겹의 천 사이에 솜을 둔 핫바지나 핫저고리 같은 형태의 옷을 말한다. 솜을 얇고 고르게 펴 만드는 게 중요하다. 

‘포근하지만 둔하지 않고, 몇 겹이 겹쳐졌지만 몸의 선이 살아있는 옷.’
허순자 전통기능전승자(15-04호)의 전통 솜옷정장(한복)을 입어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이다. “솜 한복이라고 하면 대부분 누비를 생각하는데, 솜 한복은 핫바지, 핫저고리를 가리키는 거예요. 식구들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기를 바라며 바느질하던, 어머니 같은 옷이지요.” 뭉실하던 솜이 한 장 한 장 얇게 펴지고, 안감, 겉감이 하나로 바느질되자, 옷에 따스함이 담긴다.
“시작은 어머니였어요. 어깨 너머로 배운 바느질이 참 재밌었죠. 어머니 못지 않게 제 솜씨도 괜찮았는지 시내 한복집의 기술자로 취직도 했고요.” 20대 때에 더 많은 기술을 배우고자 서울로 상경한 그녀. 기술을 배우는 게 너무 좋아, 바느질로 밤을 꼬박 새우곤 했단다. 그런 그녀의 한복집에 시내의 멋쟁이들이 모여든 건 금세였다. 부산에서도 바느질감을 싣고 올라올 정도였다. 
“그렇게 반평생을 바느질을 하며 종로에 가게도 열고, 집도 마련하고 7남매도 잘 키웠지요. 하지만 무언가 더 업그레이드 하고 싶었어요. 한복디자이너로서 내 작품을 만드는 거요.” 그녀 나이 60대. 첫 작품은, 친정어머니가 혼수로 해주셨던 광목천으로 만들고 싶었다. 어머니와 ‘나’의 합작품을…. 고민 끝에, 어머니에게서 배운 솜 한복 만드는 기술로 솜 바지저고리를 만들어 출품했다. 결과는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입선. 다음해에는 무명베 솜 두루마기를 출품해 장려상을 수상했다. 화려한 출품작 사이에서, 그녀의 하얀색 무명 작품은 서민적이면서도 어머니 같은 따뜻함이 있었다.



“그래서 더 눈에 띄었나 봐요. 외국인들이 무슨 작품이냐고 많이 물어왔어요. 한국의 어머니들이 아들을 장가보낼 때 손수 무명으로 베를 짜서 입혔던 옷이라고 설명했지요.” 그 후로도 매년 작품을 출품해 입상한 그녀. 대한명인협회로부터 ‘전통 솜옷 명인’으로 선정되며, 사라졌던 솜 한복을 세상에 알렸다. 양복을 만드는 남편 김동선 씨는 그런 그녀를 두고 “아내의 손이 솜과 친하다.”며 웃었다.
“다른 사람들은 손에 솜이 묻어나 옷을 만드는 게 어려운데, 저는 솜이 달라붙지 않고 자유자재로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친하다고 하는 거죠. 오랫동안 만져서 그런 것 같아요. 하하.” 하지만 사물이라도 친해지려면 소중히 하고, 예뻐해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 박물관에 가면 솜 한복부터 찾아보고, 밤을 새워서라도 재현해 보는 노력이 함께 있었기 때문. 몇 년 전부터는 ‘우리 옷 만들기’란 수업을 지역주민에게 무료로 연 그녀다. 
“예쁜 전통옷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사람들이 전통옷에 대한 관심도 많더라고요. 이 작은 공간이 꽉 찰 정도로 수강생이 많았으니까요.” 지금은 공간을 넓혀 주민센터에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저고리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서로 박수를 치고 사진을 찍으며 너무나 좋아한단다. 접할 기회가 없었을 뿐,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은 시대를 뛰어넘는 것이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아볼 때가 제일 행복해요. 저도 인생의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한복을 만들며 그 고비를 이겨내고 넘어왔으니까요. 한복은 저에게 참 소중하답니다.” 한 평생, 입는 사람의 치수를 잰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재어 옷을 만들었다는 그녀. 하얀 무명의 옷에 따뜻함이 깃든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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