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옹졸하면 그릇도 옹졸해요
도자기 빚는 도공, 최현천 교무


취재. 정은구 기자

너구리도 고라니도 불쑥 다녀간다는 고즈넉한 새등이문화원.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경주에 위치한 이곳이 얼마 전 새롭게 단장을 마쳤다. 다섯 개의 황토방에 법당, 다실까지.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발 물레와 전통 장작 가마로 만든 도자기들인데…. “이젠 흙을 보면 어떤 질감의 그릇이 나올지 감이 잡혀요.” 새로운 문화교화의 장을 열고 있는 최현천 교무(원불교 새등이문화원)다.

일심을 빚다
기관에서 지내다가, 교당 교화를 나가기 위해 준비하던 시기.
최 교무는 머무를 곳을 찾다가 이성택 교무의 소개로 알게 된 전통 가마 공방 ‘새등이요’에 잠시 있게 되었다. “낮에는 무초 최차란 선생님의 일을 조금씩 돕고, 밤에는 독경연습과 법문공부를 했죠.” 그렇게 사는 동안 ‘새등이요’가 교단에 희사되고, ‘새등이문화원’의 개소로 이어졌다고. “산 정이 있으니 제가 인사발령을 받은 거죠. 그게 어느덧 16년이 된 거예요.” 평생 연구한 전통 가마와 차도를 이어가고자 원불교에 목적 희사를 선택한 무초 선생. 도자기를 만들어 본 적이 없었던 최 교무는 자연스럽게 무초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 “백지로 왔으니, 선생님이 가르치는 대로 배웠죠. 배운 대로 했기 때문에 그릇이 잘 나왔어요.” 그의 도자기 전시장에는 각양각색의 그릇이 진열되어 있다. 또한 창고에도 그릇이 한 아름 쌓여 있는데…. “선생님은 그릇이 이상하게 나와도, 그것에 맞는 용도로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하세요. 저 역시 그 철학을 이어받았죠. 그래서 깨뜨리지 않고 두는 거예요.”
도자기를 빚고 성형해서 구워내기까지 걸리는 시간만도 몇 개월. 유약을 칠하거나 5박 6일 동안 불을 뗄 때는 혼자 작업할 수가 없어서 울산교당 교도들의 도움을 받는다. “도자기는 내 마음의 표현물이에요. 내 마음이 옹졸하면 그릇도 옹졸하게 나오죠.” 마음이 깊고 넓어져야 그릇도 남들이 볼 때 풍만하고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데…. “옛날 도공들은 가마에 불을 땔 때는 금줄을 쳤어요. 불 때는 사람 마음이 흐트러지면 불이 안 보이거든요.” 장작 하나에 그릇이 타기도 하고, 유약이 안 녹기도 한다. 게다가 흙을 성형할 때에도 잡념이 들어가면 모양이 안 나온다니, 두 마음 가지고는 그릇을 만들 수 없다는 것. “결국 도자기를 만들 때 일심이 절로 되고, 수행이 되는 것이죠.”
그렇게 만든 도자기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위안하는 에너지를 전할 수 있다면, 이것이야 말로 법을 설하는 일이렷다!

치유의 공간
“무초 선생님을 모시며 사는 동안, 한 번도 식은 밥을 드린 적이 없어요.”
주변에서도 인정할 만큼 성심을 다해 스승을 모시고 있는 최 교무. 이젠 스승에게도 인정받을 만큼 실력을 쌓았지만, 아직은 제자를 받는 일이 조심스럽다. 전통 방식의 도자기 제작이라는 것이 도제교육을 통해 이뤄질 수밖에 없다보니, 배우고 싶다고 해서 쉽게 가르칠 수도 없는 일. “제가 39세에 왔는데, 그때 선생님이 76세셨어요. 그렇게 늦은 나이에도 인연이라면 만날 수 있으니까 욕심은 안 부려요. 스승이 제자를 만나는 것이 쉬운 일도 아니고요.” 그러니 스승을 잘 모시고, 전통 도자기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는 최 교무. 그러나 그 속에서도 새등이문화원의 쓰임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을 텐데….
“우선 전통 도자기와 차도의 명맥을 이어나가야겠죠. 거기에 덧붙여서, 저는 환자를 치유할 수 있는 황토방을 만들고 싶어요.” 무초 선생이 직접 구상한 환자 치유용 황토방을 통해 문화원을 휴식과 치유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것. “훈련을 하는 곳이 아니라, 푹 쉬고 심신을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경주 여행도 하고, 장작불로 뜨끈하게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출·재가 교도들의 쉼터가 되어주겠다는 다짐이다.
“지금 당장은 가마를 새로 지어야 해요. 보통은 10년 쓰면 새로 짓거든요. 처음엔 뭣 모르고 지었는데 지금 지으면 잘 지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소곳한 용의 머리를 닮은 가마 앞에서, 최 교무가 너털웃음을 짓는다. “시나브로 16년을 보낸 게 아니라, 죽을 둥 살 둥 16년을 보내며 정말 열심히 배우며 살아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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