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만남

글. 이이원

강원도, 한 며칠 초록 산 풍경에 마음 쉬고 동해안 푸른 바닷물에 몸 담갔다가 돌아오면 몸과 마음에 기쁨이 채워지는 힐링의 고장이다. 요즘은 길이 많이 반듯해졌지만, 예전엔 구불구불 산길을 돌고 돌아 멀미를 이겨야 도시에서 도시로 갈 수 있었던 고장. 지금은 곳곳에 교당이 있지만 원기 50년대만 해도 원불교 인연을 만나기 힘들었던 이곳에 인연을 만나고자 무작정 길을 나선 선진이 한 분 계신다.
은타원 조일관 선진은 6.25전쟁 중에 서울보화원장으로 재직하며 달밤에 채소를 가꾸며 아이들의 웃음과 함께 했고, 1.4후퇴 때도 그곳을 지키며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피난 가도 죽을 사람은 죽는데, 아이들을 버리고 갈 수는 없다.’는 게 그분의 신념이었고,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이었다.
원기 52년도, 원불교 불모지 강원도에 일원의 법 종자를 뿌리기 위해 길을 나섰다. 고소한 인연을 만나기 위해 고향인 김제 원평에서 수확한 참깨로 참기름 열댓 병을 챙겨나선 길이다. 참기름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말을 건네는 수단이었고, 믿음의 가교였다. 사람들은 평소 참기름 향기라고 알았던 것과 너무도 다른 향기에, 너도 나도 참기름을 달라고 했다. 은타원 선진은 장사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원불교 교법을 전하며 한 병씩 팔곤 했다. 그렇게 춘천과 원주를 오가며 4년 동안 한 사람 한 사람 만났지만 교당 설립의 기연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고난 속에서 찾는 적공의 길이었다. 사람들이 참기름을 필요로 할 때쯤 그곳을 다시 방문하여, 싫다 해도 교법을 전했고, 좋다 하면 열변을 토하는 법열의 여정이었다.
은타원 선진의 발걸음이 속초에까지 이르렀다. 야산을 개간해 채소를 가꾸며 인연을 만나려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주위에서 안 될 게 분명한 일이라고 말렸다. 그러나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치열한 열정의 삶이었다.
“결코 헛되지 않을 걸세. 내가 밭을 만들었다면 누군가 씨를 뿌릴 것이고, 내가 씨를 뿌렸다면 누군가 그 곡식을 거두지 않겠는가? 대종사님 말씀을 전하는 일이었으니 나는 행복하네. 나는 행복하네.”
은타원 선진은 건강을 염려하는 후진에게 행복한 미소를 건넸다. 강원도 뿐 아니라 방방곡곡 온 누리에 일원의 법음이 가득하길 소망하는 기도였다.
강원교구가 교구청을 새로 짓는 불사를 하고 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나는 적공의 도량이 될 듯. 아, 고소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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