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불이 꺼지지 않는 곳, 노량진 수산시장

신명난 호창으로
깨어난 밤


취재. 정은구 기자 

자정을 넘긴 시간.
입김이 나는 추운 날씨, 노량진  수산시장의 불은 환하기만 하다. 바쁘게 짐을 나르는 사람들 사이로 등장한 경매용 전동차. 숫자가 적힌 모자를 쓴 중도매인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김백수 과장도 경매대 위에 올라선다. “합시다, 합시다!” 동료 경매사가 감정사로서 물품을 들어 보이면, 덩달아 높아지는 김 과장의 목소리.
오징어, 조개, 낙지, 굴…. 하루에 만 톤이 넘는 물량이 매일 소비되는 장소다보니, 경매를 진행하는 동안은 정신이 없다. 때때로 도저히 팔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물량이 들어와도 결국 다 팔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숫자 하나로 울고 웃는 곳이다 보니 예민해지기 일쑤. 숫자를 정확하게 불러줘야 하는 경매사 또한 매한가지다. “42! 42!” “20개만 주쇼!” “나머지!” 
척 보면 양식인지 자연산인지, 국내산인지 일본산인지 구별해내는 경매사들. 하물며 중도매인들의 안목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연달아 제시되는 숫자를 확인하는 경매사의 목소리에 흥겨움이 더해진다. “역전에 역전! 역전에 역전!”
한바탕 조개류를 팔고나니, 열 맞춘 굴박스가 기다리고 있다. “이리 오세요~! 굴 사, 굴!” 경매는 여러 군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그러니 걸음도 바쁠 수밖에. “어긔야 어걍됴리 아으 다롱디리!” 김 과장의 호창에 저절로 이목이 집중되는 이곳. 음률을 섞어가며 각자 개성 있는 호창을 하는 것이 조금이나마 목을 편하게 만드는 노하우다. 김 과장은 일찌감치 백제가요인 ‘정읍사’의 후렴구를 선택한 참. 호창을 하다보면 흥이 돋아서, 참여하는 사람들도 추임새를 넣듯 소리를 얹는다.


활어 경매는 새벽 3시부터 시작되었다. 어른 팔뚝보다 큰 어류들이 기운 좋게 팔딱거릴 때마다 사방으로 물이 튀는 탓에 바닥엔 물이 흥건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활어의 신선도가 떨어지다 보니 신속함이 생명. 때문에 활어는 수지식 경매를 통해 빨리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 두 줄로 나란히 선 중도매인들의 손짓에 경매사의 눈짓도 바쁘게 움직인다.
경매장 곳곳에서 일꾼들은 열 개, 스무 개의 박스를 쌓아 옮기기 여념 없다. 상자를 옮겨달라고 요청하고, 낙찰 받은 물건들을 확인하는 중도매인들 사이로 울려 퍼지는 종소리. 김장철에 사용되는 생새우, 동백하의 경매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다. 따로 시간을 정하지 않고 동백하가 도착하는 족족 열리는 경매라 이렇게 종소리로 알리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 좋은 물건을 낙찰 받으려다보니 고성이 오고가기도 하지만, 금세 다른 볼일을 보기 위해 뿔뿔이 흩어진다.
경매가 슬슬 마무리되어 갈 즈음이면, 오늘치 물품을 산 중도매인들이 저마다 좌판을 깔기 시작한다. 중도매인들의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방금 낙찰 받은 싱싱한 해산물들을 진열해두면, 새벽바람을 맞으며 찾아온 소비자들이 슬슬 돌아본다. 어느덧 어스름하게 밝아져오는 하늘. 그야말로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노량진 수산시장이다. 누군가 “오늘 시장해요?”라고 묻기라도 하면, “1년 365일 엽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연유가 달리 없다.



새벽 여섯 시가 넘어가면, 경매가 슬슬 마무리 되고 경매사들은 오늘의 시세를 정리하기 위해 사무실로 향한다. 몇 시간 동안 소리를 지르다보니  김 과장의 목소리는 다 쉬었다. 산지 관계자와 통화해 내일 물량을 확인하는 등의 일을 하다보면, 결국 해가 뜨고서야 퇴근을 하게 된다. 13년 동안 일을 해오면서 남들과 다른 생활패턴을 사느라 가족과 여행을 가는 일도 요원하기 그지없는 게 때때로 미안하다. 낮밤이 바뀌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면서도 이렇게 자리를 지켜나가고 있으니, 이 일이야 말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다. 그가 부르는 숫자가 곧 시세가 되니 그 책임도 막중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힘을 내는 것이다.
그렇게 새벽빛을 밝히던 이들이 퇴근하면, 호창을 이어받듯 가게 문을 연 상인들의 호객소리가 시장을 북적인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