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경책
글. 황현진 예비교무·원광대 원불교학과 3학년

보신각에 도착하니 마침 타종 시간이다. 소란스런 도심 속이어서 그런지 종소리는 멀리 울리지 못하고 보신각 주위만을 맴돌아 볼품이 없었다. 그때 감상이 하나 떠올랐다. 오늘 나의 운명도 저 보신각 종소리와 같을 것이라는 씁쓸한 예감이 그것이었다.
사드철회와 성지수호를 외치는 우리들의 목소리가 어디까지 울려 퍼질까? 시작부터 막막하기만 하다. 세상의 물질문명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정신문명은 저 도심 속의 보신각 종소리처럼 왠지 따로 논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시민들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고독함과 씁쓸함을 느끼고, 저 도심 속의 보신각 종소리에서 왠지 모를 처량함을 느꼈을지라도 우리의 문화와 정신을 지켜내는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정신이 주가 되어 물질을 끌고 가야만 물질을 선용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한 나라의 사상과 정신을 책임지는 종교의 성지를 군사시설의 반경에 넣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든다.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덜 성숙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물질과 정신이, 주와 종이 뒤집혀 걷잡을 수 없는 ‘공업’의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보신각 앞에서 천도교, 천주교, 기독교, 원불교 4개의 종단이 부르짖은 ‘평화’라는 두 글자는 대한민국을 향한 경책이자, 세계를 향한 경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좌선 때 경책 한 방에 졸음이 완전히 깨지 않는 것처럼, 세상도 쉽사리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감님이 포기하지 않으시고 자비로운 경책을 계속 내려주시는 것과 같이, 우리 역시 포기하지 않고 세상을 향한 죽비가 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오늘처럼 거리로 나와 소리 높여 평화를 외치기도 하고, 때로는 희생과 봉사로, 때로는 설법으로 해야 할 일이 참 많다. 어깨가 묵직해진다. 동시에, 나도 세상도 진급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 가슴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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