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군인 영가의 방문

정직하게 살고 세상을 위하는 연민과 공익심으로 기도를 했을 때
진리가 주는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취재. 정은구 기자

“예전에 군에서 의문사로 죽은 군인들의 재를 오랫동안 지냈어요.”
정상덕 교무가 원불교 인권위원회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천주교, 불교, 기독교, 원불교 네 개 종단의 인권단체가 모여서 군 사망자들의 천도재를 주기적으로 지내주던 중이었다. 어느 날 정 교무가 재를 주관하게 되었는데, 당시 재를 지내주기로 한 군인은 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청년이었다.
발인식 후 국방부 앞에서 재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던 정 교무. 잠을 자는데, 키가 190cm는 됨직한 청년 영가에게 가위를 눌렸단다. 놀란 정 교무가 “왜 그러느냐, 힘들면 교무님에게 이야기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을 하니, 영가는 천도재를 열심히 지내달라고 했다. 그 영가는 병 때문에 죽었다던 군인이었다. 발인식을 지내고 나서, 억울한 마음에 정 교무를 찾아와 매달린 것이다. 그날 밤 정 교무는 청년 영가를 앉혀놓고 한참동안 대화를 나눈 뒤, 정성스럽게 천도재를 지내주었다.
“실체가 없는데 실재가 있고, 아무것도 없는데 대화를 했지요. 지금도 생각나요.” 이후 죽음에 대한 억울함이 풀려서 유족들은 군에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았고, 청년 역시 국립묘지에 안치되었다. “행정적으로는 군에서 해결할 일이지만 영혼적으로 그 영가는 억울하게 죽었고, 그래서 더욱 천도재를 간절히 원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영가를 만나게 되니, 자연스럽게 천도재를 임하는 마음 또한 정성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단다. “믿음이 가잖아요. 영혼이 있고, 죽으면 다음 생에 태어나는 것이라는 걸요. 지금 나와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데 어떻게 어영부영 천도재를 지내겠어요? 정신 자세를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재 지내는 태도가 저절로 달라지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한 세계. 그렇기에 기도에 대한 자세 또한 명확해졌다고. “작은 일을 하더라도 하늘의 감응을 받아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바로 그것이 기도예요.” 만 번 기도하는 것보다 한 번을 떳떳하게 사는 게 바로 진정한 기도라고 말하는 그. 진리와 일대 일로 만나도 당당할 수 있어야만, 기도를 했을 때 위력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도 영혼 하나를 제도시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생활은 엉망이면서 기도만 열심히 하는 건 소용없어요.” 정직하게 살고 세상을 위하는 연민과 공익심으로 기도를 했을 때 진리가 주는 기회를 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일반 사람들에게도 아주 쉬운 일이에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면 되니까요. 욕심으로 천지기운을 받아오는 게 아니라, 진실한 자신감과 적공으로요.”
기도란 진리와 나의 진정한 만남이라고 강조하는 정 교무. 그 위력에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 영가의 억울함도 지나치지 못하는 것일 터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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