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와의 인연

  글. 김법조 교무

사회생활을 하던 1989년 3월, 한 달간 오사카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입교한 지 얼마 안 되는 청년교도가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니, 당시 애월교당 이수진 교무님은 직접 공항에 나와 오사카교당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지를 전해주셨다. 여행 중 묻고 물어 찾아간 교당은 2층의 가파른 계단에, 어둡고 좁은 다다미 방이었다. 장봉운 교무님은 일본교화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느낀 감상은, 해외에 준비 없이 성직자를 파견했고 본인 또한 준비 없이 와서 이국땅에서 고생한다는 안타까움이었다. 함께 동행하던 언니는 “여행 와서 이상한 종교를 찾아다닌다.”며 나를 걱정스러워했다.
10년 후 1999년 5월, 출가자로서 오사카교당에 부교무 발령을 받았다. 인사발령을 받고 나니 10년 전의 어둡고 추웠던 오사카교당이 떠올랐다. “어찌해야 하나.” 하는 분별심이 일어났다. 당시 배은종 국제부장님은 “개척이 힘들지만 보람은 있다.”라며 응원을 해주셨다. 나는 수화불피 한다는 전무출신의 정신을 확인하며, ‘인연지라 교단에서 보냈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임했다. 출국 전 종법사님이셨던 좌산 상사님에게 인사를 갔더니 “어린 것을 보내려니 짠하다(부교무인데 단독이니). 교당이 좁다더라. 교통이 편리하고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전을 생각해 보아라.” 라는 큰 숙제를 주셨다. 부임하고 보니 교당은 교단의 지원을 받아 대지 13평, 연건평 24평 건물을 구입하고 종교법인 인가를 받은 상황이었다. 비록 좁지만 안정된 교화터전이 마련된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오사카교당은 1935년에 창설된 해외교화의 효시인 교당이다.일제강점기에 재일동포들을 비롯, 일본인마저도 제도하려 하셨던 대종사님의 대자대비심으로 시작된 역사적인 교당. 하지만 교화가 어렵고 교도가 없어, 좁은 교당도 넓기만 했다. 찾아오는 이도, 찾아갈 곳도 없어 교당 주변을 매일 걸으며 이리 저리 살피면서 코리아타운도 알게 되고, 재일동포들의 생활과 환경도 알아갔다.
교당이 위치한 곳은 재일동포들의 집단 거주지인 이쿠노 구이다. 구민 13만명 중 4명에 1명이 외국인 즉 재일동포로, 그 가운데도 제주 출신 재일동포들이 많아 ‘작은 제주’라 불릴 정도이다. 고향과 고국을 향한 그들의 지원은 제주 발전에 큰 힘이 되었다. 제주 출신인 나는 어려서부터 자연히 재일동포들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이루어진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을 받았기에 그분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가까이에서 들여다본 그들의 삶은 부지런하고 검소했지만, 여유가 있는 형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향, 고국의 형제들을 돕고 살았던 점을 알게 되니 미안하고 죄송해지면서, 지금이라도 내가 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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