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루게 한 사진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추운 컨테이너 안에서
SNS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괜히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글. 유영상

작년, 군대에 있을 때다. 우리가 주말에 할 수 있는 놀이는 사지방(사이버 지식 정보방), 공놀이, TV 시청뿐이었다.
그날도 나는 어김없이 아침부터 사지방으로 뛰어갔다. 혹시 자리가 없을까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데, 아침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았다. 아침의 컨테이너 안 공기는 너무나 차가워서 숨을 내쉴 때마다 김이 솔솔 나왔다. 하지만 SNS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따뜻했다.
군인들은 대부분 사지방에서 SNS나 웹툰을 본다. 보안상의 문제로 제한되는 활동이 많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인터넷 활동은 정해져 있다. 그 중 나는 인스타그램(Instagram)이라는 소셜미디어를 즐겨했다. 인스타그램은 사진을 찍어 키워드를 태그하면 그 키워드에 관련된 사진을 여러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당시의 나는 강원도 산 속에 있는데다 카메라도 없어 사람들이 올리는 사진들을 보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 왠지 집에 돌아간 내 모습이 상상돼 대리만족을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올리는 음식 사진을 보면서 ‘다음에 휴가를 나가면 저 음식은 꼭 먹어야지.’ 하는 생각도 자주 하곤 했다. 어쩌면 그게 내 유일한 낙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친구들 사진 중에 정말 부러운 사진이 있었다.
캘리포니아, LA의 유니버셜 스튜디오에서 찍은 친구의 사진들…. 내 또래의 친구들은 교환학생으로 독일, 스페인, 영국 등 외국 이곳저곳에서 해외의 캠퍼스 라이프를 즐기고 있었다. 중학생 때부터 ‘외국에 여행가고 싶다. 외국에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지만 꿋꿋하게 한국에서만 23년을 지낸 나에게 너무나 부러운 장면이었다. 질투까지 생겼다. 아침부터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추운 컨테이너 안에서 SNS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괜히 가엽고 불쌍하게 느껴졌다. 컨테이너를 나온 나는 다짐했다. ‘전역만 하면 해외로 바로 뜬다.’
그렇게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들에게 질투심을 품은 채 나는 올해 1월 28일 전역을 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에, 모아놓은 월급을 가지고 태국으로 떠났다. 10일간 여행을 다녀오고 나니 몇 개월간 뭉쳐있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 기세를 몰아 LA에 교환학생으로 다녀 온 친구에게도 연락을 했다. “어떻게 갔니? 무슨 준비를 했니?” 등을 끈질기게 물어보았고, 1학기가 시작하자마자 학점 관리와 영어성적을 쌓아갔다. 그 결과 나는 2017년에 1년간 뉴욕에 있는 대학교의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군대에 있으면서 해외에 나가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질투했다. 그리고 그 질투심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을 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 질투가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부러워하는 것만큼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동기부여는 없을 것이다.

질투는 내 친구

서로를 가장 응원하고 가장 위하지만, 또 서로를 가장 질투한다.
서로가 있기에 의지가 되고 서로가 있기에 불끈불끈 승부욕도 일으킨다.

글. 원누리

나의 첫 번째 질투는 기억도 안 나는 시절의 것이다. 지금도 인정할 수 없지만 나는 내 동생이 태어났을 때, 동생 그 자체를 질투했었다고 한다. 제일 친한 만큼, 제일 가까운 만큼 서로 계속 비교를 하게 되는 사이, 자매.
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다. 정확히는 27개월 차이.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집안에서 가장 어린 아기는 ‘나’뿐이었다. 게다가 여자아기는 너무 오랜만이라, 나는 온 가족의 관심대상이었다. 기억도 나지 않을 어린 나이였지만, 아마도 그 사랑이 무척이나 좋았던 모양이다. 동생이 태어나 그 사랑과 관심을 나누어야 했을 때, 나는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동생을 무척이나 미워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동생과 나를 가까이 두지 않으려 필사적이었고, 나는 기회만 있으면 동생에게 다가가 질투심을 표출하려 했었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동생을 아기 침대에 재워둔 채 방문을 닫고 나오셨다고 했다. 집안에는 나밖에 없었고, 나는 고작 27개월의 겨우 걸음마를 뗀 아기였기에 어머니는 안심하고 집안일을 하셨다. 그런데 까무러치게 우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어머니는 놀라서 방으로 달려가셨단다. 어머니가 발견한 동생은 눈 쪽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다. 어머니가 다른 곳에 잠깐 눈을 돌린 순간, 내가 방에 들어가 동생의 눈 주변을 꼬집었던 것이다.
그 사건 때문에 지금까지도 동생에게 미안하다. 기억도 안 나는 시절이지만 내 질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고, 나는 온 집안의 질투쟁이가 됐다.
이십 몇 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는 서로를 가장 응원하고 가장 위하지만, 또 서로를 가장 질투한다. 서로가 있기에 의지가 되고 서로가 있기에 불끈불끈 승부욕도 일으킨다.
모든 추상적인 단어들의 뜻은 상대적이다.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기준이 다를 수 있고,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질투 역시 그러하다.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이다. 남들 눈에는 그렇지 않게 보일 수 있지만 내 기준에서 너무나 투명하게 보이는 내 마음은 온통 질투덩어리다.
진정한 친구는 내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해 줄 수 있는 친구보다, 내가 잘 됐을 때 조금의 시기도 없이 진정으로 축하해 주는 친구라고 한다.
그럼 그동안 나는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었을까? 그 생각을 한참 했던 시절의 나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너무 치사했다. 나 자신을 예쁘지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진심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매사에 진심으로 기뻐하게 되었다.
질투는 사람을 추하게도 만들고, 어느 때보다 스스로의 열정을 불태우게 만들기도 한다. 밉기만 했던 내 질투가 요즘은 친근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스스로의 미운 마음을 너무 미워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질투는 나의 힘

어릴 적 나는 그 사랑을 혼자서 받아보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글. 김원일

청소년들을 만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아이들 여럿을 대하다 보면 무관심한 친구도 있고, 관심을 받으려는 친구도 있고, 상대를 견제하는 친구도 있다.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그 중에 친구들의 말을 끊거나, 살짝 흉을 보며, 살랑살랑 꼬리를 흔드는 이른바 질투심이 강한 친구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 조금만 공을 들이면 투덜거리면서도 모두를 챙기는, 요즘 말로 ‘츤데레’ 캐릭터가 되지만, 잘못하다가는 인간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요주의 인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아래로 다섯 살 어린 여동생이 있다. 그 정도 어리면 누이가 잘 따르지 않겠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지금이야 사이좋게 지내지만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서로를 눈엣가시처럼 여겼다. 어느 순간 부모님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경쟁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특히 부모님 앞에서 티격태격 다투기 시작하면 끝장을 봐야 했다. 동생에게 지는 일이 부모님의 사랑을 뺏기는 일이라 생각했던 것일까? 승리를 쟁취한 뒤에 돌아오는 보상은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쪽 구석에서 무릎 꿇고 두 손을 든 내 모습. 그런 오빠의 밑에서 꿋꿋이 버텨온 누이여, 미안하구나.
질투의 화신은 집에서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명절이면 내가 살던 대구를 벗어나 친가, 외가가 있는 익산에 다녀왔다. 친가에는 사촌형, 외가에는 외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사촌형은 나이가 같지만 한 학년 위고, 외사촌동생은 한 살 어리지만 같은 학년이었다. 으레 멀리서 온 내가 당연히 명절동안 사랑을 좀 더 많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친가에서는 “아버지가 장남이니 너도 장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잣대를 좀 심하게 댔고, 외가에서는 내가 형인데도 형이라 부르지 않는 외사촌동생과 그걸 가만히 놔두는 어른들을 보며, 뚜껑이 몇 번이나 열렸는지 모른다. 그러다 차이나는 세뱃돈 때문에 불만이 폭발한 어느 설날. 사촌형과 외사촌동생을 때려눕힌 나는 어른들에게 끌려가 비오는 날 먼지 나게 혼이 났다.
뭐가 그리도 모자라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여하튼 남들보다 받는 것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시샘을 엄청나게 냈던 것 같다.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아끼는 것이 꼭 나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닌데도, 어릴 적 나는 그 사랑을 혼자서 받아보고자 무던히 애를 썼다. 결과가 좋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하면서도 말이다. 사랑을 받고 싶으면 먼저 사랑을 주든지 상대방이 바라는 걸 했어야 한다는 걸 아는덴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전히 아는 것만큼 실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혹은 미움 받지 않으려고 남을 돕는 내 모습을 보며 가끔은 아이러니함을 느낀다. 애정을 얻고자 ‘질투’를 무기 삼아 쟁투를 유발해온 철부지 소년이, 나이가 들어서는 ‘배려심’으로 살아간다니…. 그것이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라면 꼭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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