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걱거리는 체인에 기름칠을 해주던 그리운, 자전거 수리점
다박다박 바퀴를 굴려온 40년 세월

아침 8시. 굳게 잠겨있던 셔터가 드르륵 올라간다.
가게 앞에 하나 둘 자전거를 꺼내 늘어놓고 나면 시작되는 삼천리자전거 대리점 변동점의 하루. 안길선 씨는 가게 문가에 앉는다. 탈탈 돌아가는 선풍기의 바람이 아침부터 자전거를 나르느라 흘렸던 땀을 시원하게 식혀준다.
가게 앞에는 손님들이 직접 바퀴 바람을 넣을 수 있는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다. 덕분에 가만히 바깥을 보고 있으면, 속속 멈춰서는 자전거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셀프로 바람을 채울 수 있다는 걸 아는 손님들이 능숙하게 자전거 바퀴를 매만지는 것이다. 때때로 바람을 넣을 줄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손님을 보면 안 씨는 넌지시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깊은 숲속 옹달샘처럼 바람 빠진 타이어들의 샘터가 되어주는 곳. 물론 중간 중간에 수리를 필요로 하는 자전거들도 끊이지 않는다.



“기어가 잘 안 들어가고 바람도 빠진 것 같은데….” 손님이 이야기하는 증상을 가만히 듣던 안 씨가 돋보기안경을 꺼낸다. 기름칠을 하며 이리저리 체인을 매만지는 사이, 그를 기다리는 손님이 한 명 더 늘었다. “90kg이 타도 끄떡없게 바람을 넣어줘요.” “뒷바퀴는 바꾸쇼. 골치 아프네, 이거.” 오늘 처음 만난 손님까지 가세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골골거리던 자전거는 어느새 멀쩡하게 고쳐진다.
그가 이 사거리에서 자전거 수리점을 해온 날이 어느덧 30여 년. 이곳에 오기 전부터 자전거 수리점을 해왔으니, 다 합치면 42년차 정도 될까 싶다. 자전거가 업무용이었던 옛날엔 신문 배달부나 다방 아가씨들에게 필수적인 교통수단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여름방학 때면 자전거를 찾는 사람들이 참 많았는데, 요즘은 있으면 타고 없으면 안타는 물건이 되었다. 아이들 역시 컴퓨터를 하느라 바빠 영 자전거를 안타는 눈치다. 그 와중에 유행은 빠르게 변해버리니, 제아무리 오랫동안 자전거 수리점을 해온 그라도 좀처럼 따라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바퀴 살 하나하나를 꿰었던 옛날과는 달리 지금은 부품이 만들어져서 나오고, ‘빵꾸’라고 부르던 것을 이젠 고상하게 ‘펑크’라고 한다. 다섯 개였던 기어가 열한 개까지 늘어났으니, 조금만 딴청을 부리면 금세 세상이 달라져 버린다.



“옛날에는 내가 잘못 고쳤나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잘 고장이 났었는데….” 튼튼하게 잘 나오는 요즘 자전거들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허허롭게 웃는다. 그가 처음 이 가게를 열었을 때는 근방에 자전거 수리점을 하는 사람이 열한 명이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두 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손님들이 때때로 “지금까지 가게를 운영해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올 정도.
“얼마 안 탔는데 펑크가 났어요.” 그는 난처해하는 손님의 설명을 들으며 바퀴를 분리한다. 튜브를 물속에 넣고 꾹 눌러보니, 한쪽에서 뽀글뽀글 올라오는 기포. “잘못 타니까 그렇지요.” 그가 종종 ‘밥통’이라고 표현하는 공구통을 들고 나온다. “그래야 나도 먹고 살지.” 우스갯소리를 하며 펑크를 때우고는 기름때로 인해 까맣게 변한 장갑으로 뒷바퀴를 만지던 그가 으? 몸을 일으킨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자전거 수리를 할 줄 알았던 건 아니다. 처음 수리점을 시작할 때만 해도 기술자 직원을 따로 뒀었다. 직원을 옆에서 살피면서 밤새 자전거를 분해했다가 조립해가며 기술을 익힌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도 탈 줄 몰라서, 운동장에서 밤마다 연습을 하곤 했었다. 지금이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옛 생각을 하면서도 부지런히 자전거를 고쳐 내어준 그가 잠시 앉아 숨을 돌린다.



선풍기에서 탈탈 나오는 바람을 쐬고 있으려니,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온다. 자전거를 사고 싶단다. 여성용, 아이용, 산악용…. 종류부터 가격대까지 천차만별인 자전거를 소개해주니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실은 스무 평 남짓한 가게에 진열된 자전거는 많지 않다. 장사가 잘 될 땐 80대까지 진열했었지만, 구색을 맞추려면 족히 150대는 진열하는 게 좋다. 그래도 손님의 마음에 드는 자전거가 있었던 모양이다. 당장 탈 수 있게 안장을 조절하고 전체적인 상태를 점검한 그가 손님을 배웅한다. 손녀의 손을 잡고 온 할아버지, 장을 보고 들어가던 아주머니, 하교하던 학생…. 점점이 가게에 들르는 손님들을 상대하다보니 해가 저물어간다. 까무룩 넘어가는 해를 보고서야 그도 슬슬 바깥에 진열했던 자전거들을 다시 안으로 들인다. 발 디딜 틈 없이 빽빽하게 채운 자전거 사이로, 그는 다시 잠시 선풍기 앞에 앉아 땀을 식힌다.
마지막으로 탈탈탈 돌아가던 선풍기를 끄면 오늘 하루도 잘 굴러갔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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