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들의 고향, 초원에 서다

한동안 몽골의 초원을 동경했습니다.
“왜 가려고 하는데?”
“광활한 대지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싶어.”
“뭐하려고?”
“내 영혼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거지.”
“지금 삶은?”
“글쎄.”
문득 말문이 막힙니다.
‘회귀하고 싶은 건지, 비우고 싶은 건지, 도망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그렇게 몽골의 초원에 섰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과 뭇 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자연의 웃음소리, 그리고 듬성듬성 연기를 피워내는 사람소리. 아, 간혹 대지와 하늘 사이에서 ‘깨어있음’을 알리는 새소리도 빠트릴 수 없습니다. 



“저 넓은 땅이 누구 소유래요?”
“글쎄요.”
“저만한 땅이 한국에 있었으면 엄청 부자가 되겠죠?”
“하하. 다 소용 없잖아요. 여긴 몽골입니다.”
도시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 습관은 이내 입으로부터 계산을 시작합니다. ‘너무 많이 물들었나 보다. 세파에.’
  누군가 톨스토이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를 들려줍니다.
시골농부인 주인공은 싼 값에 어마어마한 땅을 소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경지역으로 떠납니다. 그곳 추장에게서 귀가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듣게 되죠.
“하루 동안 다니며 당신이 괭이로 표기한 모든 땅을 주겠소. 단 조건이 있소. 해가 지기 전에 원점으로 돌아와야 하오.”



해가 뜨자마자 서둘러 출발한 농부는 몇 개의 숲과 언덕을 지나고 호수를 건넜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기울기 시작했죠. 그는 이 순간부터 뛰기 시작했습니다. 한 개의 언덕, 한 개의 숲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심장이 멎을 것처럼 숨이 가빠왔지만 땅을 포기할 수는 없었죠.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온 순간, 그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심장마비로 죽고 만 거죠.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한 평 남짓한 그의 무덤뿐이었습니다.

초원은 참 지혜롭습니다.
몽골의 더 넓은 대지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생명들에게 3개월의 시간동안만 삶을 허락했습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스스로 쓸모없는 땅이 되어 만물을 잠재우죠. 그게 인간의 욕심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그래서 초원의 사람들은 대지를 닮고 하늘을 닮아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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