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짓고 복을 나누는 사람들, 자원봉사자
불볕더위보다 뜨거운 마음

취재. 정은구 기자 

“아이고, 반가워라.”
“안녕하세요~!”
아침 10시, 조용하던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하나둘 사람들이 들어온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이들이 익숙하게 앞치마를 찾아 걸치는 이곳. 오늘은 서울역 노숙인 급식 봉사가 있는 날이다. 오후 5시 급식을 위해서 음식을 만드는 조리담당 자원봉사자들이 원봉공회 사무실로 모인 것.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들을 반겨주는 것은, 새벽 6시에 마포시장에서 사온 한가득의 재료들이다. 4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조리대 앞에 선 사람들은 여덟 명. “가지 씻고, 버섯 찢으세요~.” 박스째 쌓여있는 채소들을 커다란 바구니에 옮기며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역할을 찾는다. 이걸 언제 다하느냐고 한숨을 내쉬면서도 버섯을 찢는 손길은 분주할 따름.
이대기 씨 역시 조리대에 선 자원봉사자들을 바쁘게 살핀다. 그가 매주 수요일마다 빨간 밥차 자원봉사를 나온 지도 어느덧 3년.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이젠 척척 꿰고 있다. 오후에 올 배급담당 자원봉사자들이 사용할 앞치마와 조리도구를 챙기며, 틈틈이 주방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척척 찾아 대령한다. 조리 담당 자원봉사자들이 늘 같은 사람들은 아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봉사를 해온 이 씨의 보조가 필수적이다.



한쪽에서 설거지를 하고, 다른 쪽에서 부지런히 고기를 다듬는 시간. 이 씨와 마찬가지로 몇 년 째 주방의 총책임자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도원 씨가 다음 요리 준비를 위해 액젓을 꺼내든다. 10년 동안 뷔페에서 일했던 그녀는 다인분의 음식을 만드는 데에 능숙하다. “남은 가지는 봉지에 넣어서 냉장고로 들어가요~.” 눈대중으로 정량을 기가 막히게 맞춘 그녀가 진두지휘하는 주방. 양파의 매운 냄새가 주방을 넘어 원봉공회 사무실로까지 진동하지만 누구 하나 우는 소리가 없다.
몇 백 명의 식사다보니, 재료 준비만으로도 오전 시간이 훌쩍 넘어간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면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요리를 할 시간. 에어컨 두 대와 세 대의 선풍기가 동원되지만, 부엌의 열기는 도통 식을 기미가 안 보인다. 날이 더운 와중에도 일감이 산더미라 지칠 법도 할 텐데, 오히려 웃음소리가 한가득. 시끌시끌한 분위기가 유쾌하기만 하다.



왁자지껄한 수요 밥차 자원봉사는 이 씨에게 무척 즐거운 시간이다. 76세의 나이에 아픈 부인을 간병하는 와중에도 봉사활동을 하는 그의 모습은 사실 누구나 감탄할 모습. 하지만 그는 도리어 이곳에 나오지 않는 날이 어색하다. 어디 그 뿐일까? ‘내가 오지 않으면 굴러가지 않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일랑,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누구나 가지고 있다. 사실 자원봉사라는 건 누가 시켜서 하는 일도 아니고, 알아서 해야 하는 일이다. 지인의 권유로 처음 나오게 된 이 씨는, 매번 ‘나오길 잘했다.’ 싶은 생각으로 일을 찾아 돕고 있다.
국이 보글보글 끓을 때쯤이면 조리 업무는 마무리가 된다. 다음주 식단인 계란말이를 위해 야채를 다듬는 사이, 이 씨는 준비된 반찬과 주방용품들을 웨건에 차곡차곡 옮겨놓는다. 가장 마지막에 준비되는 따뜻한 밥은 급식소 바로 앞에 주차될 ‘빨간 밥차’에서 지어질 것이다. 부엌이 정리되자, 자원봉사자들도 하나둘 앞치마를 벗는다. 슬슬 배식 담당 자원봉사자들이 올 시간이다. 아픈 부인을 위해 이 씨도 오늘은 일찍 들어가 봐야 한다.
그런데 아뿔싸, 밥차가 고장 났다는 연락이 왔다. 일찌감치 온 배식 담당 자원봉사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시계를 살핀다. 다행히도 배식시간을 앞두고 아슬아슬하게 고쳐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하마터면 반나절 동안 준비한 요리들이 무색해질 뻔 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떠나도 차마 가지 못하고 상황을 살피던 김 씨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마지막으로 앞치마를 벗는다.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한 사람이라도 더 돕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다. 배식 후 설거지만도 몇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함께하는 봉사자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다. 날씨와 상관없이, 그저 마음이 나서 돕는 까닭이다. 화곡교당에서, 양천교당에서, 목동교당에서, 여의도교당에서, 가락교당에서…. 여기저기에서 왔다는 이들은 처음 만났음에도 어쩜 한결같은 말들을 한다. “봉사에 중독이 됐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들과 함께 배식 자원봉사를 나온 어머니가 앞치마를 둘렀다. 빨간 밥차에선 모락모락 흰 김이 오르고, 노숙인들이 차례차례 급식소로 들어오고, 바깥에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한 시간 가량의 배식이 시작될 저녁. 몇 십 명의 공심어린 하루가 몇 백 명의 주린 배를 따뜻하게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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