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몸 길들이기

글. 성인광 추부교당

정식 법강항마위 승급 후보자 훈련을 작년 4월 말에 다녀왔다. 삼십 계문 공부길에 대한 교재도 있어 중간에 보기 시작해 오늘까지 다 읽을 수 있었다.
교재를 읽으며 법마상전급 십계 중 마지막 세 조목인 ‘탐심(貪心)을 내지 말며, 진심(瞋心)을 내지 말며, 치심(痴心)을 내지 말라’에 대한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특히 모르는 걸 아는 척하고 없으면서 있는 척하며 양심을 속이는 일이 나에게 있는지 잘 연마하고 궁굴리며 살아가야 할 것 같다.
이 공부를 실천해야 하는 데 있어 마음과 몸을 길들이는 것이 제일 어려운 것 같다. 한 구절씩 마음에 새기며 마음 한 번 일어날 때 잘 보고 돌리는 습관을 들여서 마음공부에 전념해 보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용서하세요, 미안합니다.


이대로라면

글. 양도은 전주혁신교당

신앙의 결여를 겪어왔다. 풍랑을 겪고 나면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은 샘물처럼 솟는 보람이다. 그러나 자칫 꽃이 개화도 하기 전 너무 일찍 꺾이는 삶이 있다.
내겐 너무 빠른 남편의 병마와의 사투. 나에겐 의지할, 나를 지탱해 줄 새로운 큰 거목이 필요했다. 그이는 본격적으로 앓아눕게 된 것이다.
나는 허공에 부웅~ 떠버린 걷잡을 수 없는 헛헛한 마음에 우울증을 감지하게 되었고, 다행히도 그 때, 불현듯 한 생각이 스쳤다. ‘교당에 나갈까?’ 10여 년 전 다니던 교당을 접고 대전에서 사는 6년간 내왕을 멈췄던 것이었다. 2019년 7월 21일 드디어 교당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로부터 1년 후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코로나 위험을 무릅쓰고 운 좋게 가족들이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다. 환자 곁을 떠날 수 없었던 내게 베풀어주신 교무님의 정성, 자칫 배웅 길이 너무도 초라하고 쓸쓸했을텐데, 우리 교도님들의 고귀한 독경과 교무님의 정성 가득한 천도재 덕분에 여한이 없었다.
새해 들어 두 번째 법문사경을 시작했다. 매일 교전 사경은 첫 새벽에 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하루를 열고, 일기는 늦은 밤에 쓰면서 조용히 하루 동안의 마음을 정리한다. 나의 마음가짐이 이대로라면 난 참 교도가 될 것 같다.


사진 스튜디오에서 일하며

글. 이성원 안암교당

사진 스튜디오에서 촬영 보조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첫 촬영으로 아기 100일 촬영이 있었다. 사장님께서는 아이가 울면 동요를 불러주며 시선을 재밌게 잘 이끌어주라고 주문했다.
‘경계다!’ 순간 ‘동요’라는 단어를 듣고 부끄러움이 올라왔다. 용기를 내어 촬영을 잘 마쳤지만, 문득 ‘나는 왜 부끄러움이란 감정에 사로잡혀 일을 자신 있게 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일까. 내성적인 성향 때문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지금 내게 편하고 익숙한 상황들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두렵기 마련이었다. 결국 용기를 내고 행동하였기에 얻을 수 있는 것들임을 깨달았다. 새로운 것을 맞이할 때의 두려움과 부끄러움.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는 데 꼭 필요한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나랑 맞지 않는 일이라며 그만두고 싶단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잘 배우고 성장해나간다면 훗날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기회가 참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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