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지고 기억하다

영모원

취재. 장성문 객원기자

봄날 햇살 안은 산허리가 허공을 품고 있다. 허공에는 무수한 생명과 존영, 애틋한 마음이 차있다. 이곳은 익산에 위치한 영모원. 추원보본의 도리를 다하는 장. 고인의 뜻과 추억을 되새기는 동시에 자신 천도도 이뤄가는 신성한 곳. 우리가 온 곳이며 갈 터이다.

모심과 추모
“총부 옆 자선원 자리가 대종사님 당대엔 묘지였어요. 이후 대산 종사님 뜻에 따라 원기 68년(1983)부터 이전을 시작했죠.” 영모원의 역사를 설명하는 이현덕 영모원 원장. 그렇게 40여 년, 영모원은 스승의 일원주의 사상에 바탕한 공도자숭배 및 추원보본의 유지를 계승해왔다.
원불교는 물론 우리나라 장례문화를 선도했다는 영모원. 이제서야 대중화되고 있는 평장(묘지에 봉분이 없는)을 처음부터 도입했고 납골당도 원기 82년(1997) 설립 당시에는 전국에 몇 군데 없었다. 환경의식 신장과 더불어 각광받고 있는 자연장도 12년 전부터 하고 있다. 영가와 유족들의 마음을 염두에 두고 입묘 문화의 폐해 개선 및 환경보전을 신경 쓴 까닭이다.
특히 가정의 달을 앞둔 이 시기는 영모원이 특별천도재를 올리는 때. 올해로 18회인 특별천도재는 만색(萬色)을 뽐내는 철쭉이 만발하는 4월 25일부터 5월 1일까지 진행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올해에도 작년에 이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한다는 이 원장. “매년 올리는 정성이지만 더 정성을 다해요. 위패도 매년 새로 만들고, 작년의 경우 위패가 많아서 꽃 대신 다육이를 위패 아래 장엄하고 유족들께 선물했어요. 의미가 있어서 다들 좋아하셨죠.”
이러한 의식들을 통해 알게 모르게 교화도 많이 이뤄진다고. 열심히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니건만 역사와 전통 덕인지 교도 아닌 분들도 많이 찾아오는 것이다. 교인들도 원불교 식으로 기도를 올려주면 힘을 얻고 고마워 한다고…. 고인을 추모하는 유족들의 마음에는 절차나 형식 같은 울이 없는 까닭이다. 그렇게 비교도였던 분들도 의식을 통해 감동을 받아 원불교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영모원은 유족의 집과 가까운 교당에 설법을 요청하며 자연스레 관계를 이어나가도록 한다.

흔적없이 돌아가다
묘지와 납골당, 자연장의 수요가 같을 정도로 근래 들어 자연장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라는 영모원. 유골과 고운 마사토를 1:1로 섞어 둥글게 파낸 땅에 묻는 자연장은 어떠한 흔적과 폐기물도 남지 않아 친환경적이고 보기에도 좋다.
영모원이 자연장을 도입한 것은 원기 95년(2010). 영모원의 경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 일반인들을 위한 자연장지가 최초로 설치됐다. 이후 원기 98년(2013), 전무출신으로는 최초로 법타원 김이현 교무의 자연장이 있었고 현재까지 120여 기가 모셔졌다. 특히 전무출신 자연장 터에 세워진 식운릉(息韵陵) 표지석은 전무출신의 고결한 삶을 추모하고 있다.
어떠한 표식도 없는 자연장이기에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발생한다고. 가족 유골이 묻힌 땅을 다시 찾기 위해 근처 벽에다가 낙서를 해놓는 것이다. 그래서 일반인 자연장지에 가면 이름이나 표식을 그린 애틋한 사연의 벽화(?)를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최소한 묻힌 지점이라도 알 수 있도록 표지석을 설치했다.
많은 분들이 오고가면서 마음에 치유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이 원장. 특히 영모원이 자신천도를 위한 장이기를 염원한다. 정산 종사의 ‘죽을 때의 큰 재 한 번보다 생전 예수재(豫修齋)가 중요하다’는 법문을 예로 들며 사후정리보다 생전정리를, 생전정리보다는 노전(老前)정리를 강조한다. “가능하면 힘이 있을 때 정리를 하는 게 좋아요. 참배하시는 분들도 참배로만 끝날 것이 아니라 본인 정리도 하는 자신 천도의 의미를 빼놓아서는 안될 것 같아요.”
대세계주의인 일원주의를 바탕으로 대세계사당을 지향하는 영모원. 오늘도 허공을 품은 영모원은 정성스런 의식과 청정한 환경 조성으로 영가와 유족들의 완전한 천도 및 진리세계의 인도를 위해 정성을 들인다.  영모원 063)836-4311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