틱낫한 스님과 벽암사원(2)

글. 조덕상  교무·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쉼과 치유와 성장의 공간(space to rest, heal, and grow)인 벽암사원.
이번 호에서는 벽암사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프로그램으로 틱낫한 스님 전통의 수행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마음챙김의 날
벽암사원에는 ‘마음챙김의 날(Day of Mindfulness)’이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인데, 오전 9시쯤 방문하면 됩니다. 프로그램은 9시 반부터 시작되고, 이때 현장법설(live dharma talk)의 시간을 갖습니다. 11시 반이 되면 걷기명상을 합니다. 그런 후 12시 반이 되면, 야외에서 마음챙김 식사를 합니다. 이게 표준적인 ‘마음챙김의 날’ 일정입니다.
때론 다른 요일에도 마음챙김의 날을 운영하는데, 마음챙김의 날의 매력은 보통의 훈련 프로그램과 달리 사전예약 없이 자유로운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잠깐의 시간만 낸다면 벽암사원에서 마음챙김의 날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겁니다.
마음챙김의 날 프로그램 내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웹사이트에서는 ‘일상의 마음챙김(Mindfulness in Daily Life)’ 섹션을 참조하라고 합니다. 저도 여기의 글을 보며 틱낫한 스님이 추구하는 마음챙김을 더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님, 마음챙김의 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드려보고 싶습니다. 그럼 스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지 않으실까요?

일상의 마음챙김(Mindfulness in Daily Life)으로 나아가는 데 있습니다. 마음을 챙기는 것은 진실로 살아있고, 현존하고, 자신의 행동과 주위의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챙김은 선방(meditation hall)에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이 방에서도, 저 방에서도,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하는 길 위에서도, 다시 말씀드려 하루의 모든 순간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일상의 마음챙김 실천
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 중 대표적인 방법에 걷기명상이 있습니다. 누구나 다 걷습니다. 이 점이 ‘일상의 마음챙김’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걷기에 또 다른 의미를 전해 주었습니다. 친구와의 만남이 중요한 것처럼, 걷기 자체를 하나의 만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어디든 걷게 된다면 걷기명상에 충분한 시간을 주세요. 삼 분 말고 팔 분이나 십 분의 시간을 주세요. 나는 공항에 갈 때 항상 한 시간 더 여유를 두고 그곳에서 걷기명상을 합니다. 친구들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와 있고자 하지만 나는 사양합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Walking Meditation>, Sounds True, 2006, 27쪽)
스님은 땅과 데이트를 합니다. 데이트라는 것은 누군가와 만난다는 설렘이 있습니다. 영화 보고 밥 먹고 차 마시며 대화하는 모든 것은 만남의 여러 모습이고, 만남을 통해 땅과 가까워집니다. 저는 이것을 ‘땅과 친해지기’라고 부릅니다. 틱낫한 스님은 걷기명상에 대해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발과 땅 사이의 만남에 깨어있으라. 마치 당신의 발로 대지에 키스하는 것처럼 걸어라.”(<Peace is Every Step>, Bantam Book, 1992, 28쪽)
연인과 데이트를 한다면, 어디에 가고 무엇을 먹던, 진짜 목적은 만남 그 자체가 아닐까요? 어딘가에 가고 무언가를 해서 즐겁기도 하겠지만, 함께 있다는 그 자체로 행복한 순간이고 경이로움으로 빛납니다.
스님께서는 호흡 알아차림의 마음챙김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땅과의 만남에 호흡 알아차림을 안내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두 걸음을 걷는 동안 숨을 들이마시고 다시 두 걸음을 걷는 동안 숨을 내쉬는 것인데, 이는 꼭 두 걸음에 맞춰서 한다기보다, 호흡이 편안한 정도를 보아서 세 걸음이나 네 걸음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Walking Meditation>, Sounds True, 2006, 25쪽) 호흡의 리듬과 걷기라는 움직임을 통해 땅과 깨어있는 만남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틱낫한 스님께서는 왜 걷기명상을 강조했을까요? 그건 우리가 일상에서 무수히 걷지만, 습관적으로 걷고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강박적으로 뛰다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물 위를 걷거나 공중을 걸으면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물이나 공중을 걷는 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에요. 날마다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기적을 겪고 있는 겁니다. 파란 하늘, 흰 구름, 푸른 잎사귀, 호기심에 찬 어린아이의 검은 눈동자, 우리 자신의 두 눈, 이 모두가 기적이지요.(<틱낫한 명상>, 불광출판사, 2013, 32~33쪽)

걷기는 단지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아닙니다. 순간을 깨어있음의 기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걷기는 세상에 참여하는 발걸음으로 전환됩니다. 바로 ‘참여불교(Engaged Buddhism)’입니다. 그럼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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