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되돌아보는 발걸음

'원불교 제주 4.3을 걷다' 순례

취재.'박수현 기자

동백꽃은 2월에 피고 진다. 그러나 제주에서는 4월에도 배지로, 마스크로 다시 태어난다. 바로 4.3을 상징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핏빛 동백! 화려함 뒤엔 슬픔이 담겼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마주 보고 평화가 무엇인지 되짚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평화 순례 ‘원불교 제주 4.3을 걷다’이다. 원불교 인권위원회·원불교평화행동·평화의친구들이  주관하여 기획된 이번 순례. 2018년에 시작되어 코로나19로 잠시 멈췄지만, 올해 재개되어 감흥이 남다르다.
순례의 첫 번째 장소는 송악산 앞 자그마한 동산, 섯알오름. 이곳엔 ‘예비검속’이란 명목으로 무고한 주민들이 학살당한 아픈 역사가 있다. 벗어 놓은 고무신은 유품이 되어, 그날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추모비 앞에서 작은 위령제가 진행되었다. “오늘 이 순례를 통해, 남아있는 폭력의 뿌리가 평화의 발걸음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녹아지길 바랍니다.” 법복을 입은 강현욱 교무(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교당)와 이현진 교무(제주교당). 참가자 모두 함께한 가운데 천도법문과 독경을 올리며 영령들을 추도했다.
30분을 달려 도착한 ‘빼앗긴 마을’ 무등이왓. 4.3 당시 전소되어 복구되지 못하고 흔적만 남아있는 마을. 참가자들은 생존자 홍춘호 할머니의 가이드로 마을을 돌았다. “어두컴컴한 큰 넓궤(동굴)에서 감자범벅을 먹으며 40일을 버텼수다.” 매일 밤 사라지는 사람들.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이후의 삶도 만만치 않았다. 집을 구하려 해도 ‘4.3 폭도’라며 거부당해 결국 외양간에 살림을 차렸다. 꿋꿋이 살아온 할머니의 인생. 참가자들은 할머니를 꼭 끌어안으며 아픔을 위로했다.

순례는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로 이어졌다. “마을의 벚꽃을 다 베어버리고 이제는 기지 앞에 벚꽃을 심고 있어요.” 강정마을 지킴이 ‘반디’ 씨가 기지 입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10년이 넘도록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이어왔던 강정마을 주민들. 마을은 찬반으로 분열되었고, 심하면 문중끼리 제사도 못 지낼 정도다. 기지가 만들어졌지만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주민과 지킴이들. 참가자들은 강정 평화 천막미사에 동참하여 지지의 뜻을 밝혔다. “강정과 성주, 우리 함께 평화를 만듭시다.”
마지막 순례지인 한림읍 월령리에 위치한 작은 집. 어느 할머니의 사진이 걸려있다. 이곳은 ‘무명천’ 진아영 할머니의 삶터. 총탄에 턱을 맞은 뒤 평생 얼굴에 무명천을 두르고 살아야 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집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청소와 관리를 맡아요.” 7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기억하려는 제주 사람들. 원불교 제주교구도 매년 3월 말 4·3평화공원위령제단에서 천도재를 올린다.
제주행 비행기가 북새통을 이루는 요즘, 제주의 또 다른 역사도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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