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한 만남

글. 장재훈

<1>
만남, 제우(際遇), 해후(邂逅), 상봉(相逢), 조우(遭遇) 등은 그 뜻이 비슷한 낱말들이다.
우리 원불교는 만남의 종교이다. 천지은은 하늘과 땅과 나와의 만남이다. 사람이 하늘, 땅으로부터 입은 은혜, 곧 천지가 인간에게 베풀어준 하늘의 공기, 땅의 바탕, 해와 달의 밝음, 바람과 구름과 비와 이슬 등의 은혜, 그 은혜와의 만남이다.
부모은은 아버지와 어머니와 나와의 만남이다. 부모라는 존재가 아니면 우리는 태어날 수도 없었으며, 길러질 수도 없었다. 또한 인도(人道)의 대의를 알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남으로써 존재 그 자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고 보은 실천에 정성을 다하면 세상은 자연히 나를 위하고 귀히 여길 것이며, 나의 자손 또한 부모의 효행을 본받아 나에게 효성을 다하려 할 것이다.
동포은은 인류 형제는 물론 금수초목까지도 동포로 보고 만나는 것이다. 참 귀한 만남이다. 원래 동포라는 개념은 같은 어머니의 포태(胞胎)에서 태어난 형제자매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나 일반적으로 한 민족 또는 한 나라에 속하는 백성들까지 확대하여 동포라고 부른다고 했다.
세계의 모든 인류가 한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것과 같은 형제자매의 윤기로 맺어져 있다고 보며, 더 나아가 금수와 초목으로까지 그 범위를 확대 해석하고 있다.
법률은은 국가에서 제정한 법률뿐만 아니라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올바른 규범, 예의, 윤리 등과 나와의 만남이다. 인간이 일반 동물과 다른 점은 인류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람이 사는 바른 길이 무엇이며,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고 지켜왔다는 것이다. 만약 이 법률이 없다면 아무리 천지, 부모, 동포의 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잠시도 살아갈 수가 없게 될 것이니 참으로 귀한 만남이다.
이렇듯이 사은처럼 큰 만남도 있지만 남과 여의 만남, 월간<원광>과 필자와의 만남, 필자와 독자와의 만남 등 그 만남의 종류는 참으로 많고 많은 것이다.

<2>
필자에게 있어 최고, 최상의 만남은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의 화해리 만남이다.

화해제우(花海際遇)

싸르락 싸락
바람 부는
원기 3년 4월의 어느 날 밤,
전북 정읍군 북면 화해리 마동부락
김해운의 사랑채는
훈훈하고 편안하였나니
문풍지 후려치는 칼바람 한 자락
그 서슬에
등잔불 깝북 숨죽이더니
이윽고 길게 솟구친 불혓바닥이
자욱하게 검은 그을음 토해냈나니

밤새 떨어진 세상 근심들이
바람의 길을 따라
후미진 고샅길에 아픔으로 쌓이고
밤새껏 진지한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의 만남
있었으니,
매캐한 그을음을
세상의 어둠을
온누리의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성스러운 두 숨결이 맑게 만드셨나니

사벽이 어둠으로 둘러싸인 세상,
신령스러운
거룩한 만남의 두 숨결이
싸르락 싸락
칼바람 부는
원기 3년의 봄 터널을
지나고 있었나니
아침이 온다고
다 같은 아침이 아니었음을
우리 중생들에게 알려주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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