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 가장 깊은 빛

임충휴 대한민국 칠기 명장

취재. 김아영 기자

임충휴 대한민국 칠기 명장(제384호)의 손길을 따라 옻칠이 한 겹 한 겹 쌓인다. 곱고 투명하게 겹겹이 올린 옻칠은 몇 달 뒤 안에서부터 깊고 영롱한 빛을 낼 터. 마르면 갈아서 또 칠하고, 또 갈아서 칠하길 여러 번, 25가지의 제작공정으로 지문은 닳아 없어졌지만, ‘꽃을 피운’ 영롱한 빛은 언제나 그간의 고됨을 잊게 했다.

“나전칠기의 영롱한 빛에 반해 이 일을 시작했어요. 그게 삶의 전체가 되었죠.” 전남 완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소년에게 나전칠기 기술은 배를 곯지 않을 유일한 기회였다. 어린 시절 가지고 놀던 조개껍질이 오색찬란한 빛을 내는 자개라는 것도 이때 처음 알았다. ‘어떻게 저런 빛이 날까?’    3년간 나전칠기 공방에서 궂은일을 하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기술만 좋으면 잘 살 수 있다는 말이 원동력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무와 옻칠, 조개껍질이 만나 작품으로 탄생하는 감동을 잊을 수 없었다.
“18년 동안 자개일(나전기술)과 옻칠하는 기법을 배웠어요. 1994년에는 드디어 성수동에 공방을 개업했지요.” 그의 뛰어난 기술이 소문나면서 경대를 시작해 9자 장롱, 12자 장롱의 주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탄탄대로일 것만 같았던 나전칠기는 IMF 외환위기 이후 큰 위기를 맞았다. 80명의 직원을 두었던 그는 공방의 문을 닫고 빚더미에 앉았다.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전통 칠기 기술을 후대에 전하고 싶어 떠날 수가 없었지요.” 포기하지 않은 그는 전승공예대전 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상, 한국옻칠공예대전 금상, 현대미술대전 대상 등 대회에서 20여 차례 입상하며 2004년 대한민국 명장에 선정됐다. 2016년에는 경원재 앰버서더 한옥호텔 연회장 벽면에 가로 4m 세로 2m 크기의 옻칠나전 ‘일월오봉도’를 제작했다. 객실에 비치된 옻칠 가구와 곳곳에 자리한 나전칠기도 그의 작품이다. 국내는 물론 유럽, 미국 등 해외 전시회도 꾸준히 하고 있다.
“옻칠은 재료와 만드는 방식 모두 친환경이자 무공해예요. 자연의 천연재료로 만들고, 방충·방습 효과도 뛰어나죠. 사람들에게 전통 나전칠기의 우수성을 알리고 싶어요.” 그러기에 현대에 맞는 변화도 필요하지만, 전통의 근본을 지켜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그. 그는 60여 년 동안 전통 그대로 오리지널 삼베를 이용해, 옻나무 수액과 찹쌀풀을 섞어 기물을 베로 감싸고 토회칠을 한다. 그리고 다시 표면을 고르고 바르기만 여러 번, 생칠과 옻칠을 하고 자개 부착 후, 마르면 갈아서 다시 칠하고, 광내는 과정만 20여 번을 거친다. 이뿐이 아니다. 옻칠은 유일하게 열이 아닌 습으로 말리는 도료(칠)로 습도가 맞지 않으면 원하는 색이 나오지 않기에 적정한 습도와 온도를 맞추어야 한다. 또 칠이 조금만 두꺼워도 울고, 너무 얇아도 비치기에, 곱고 균등하게 칠을 올리는 게 중요하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라도 빠지면 기물이 튼튼하지 않고, 옻칠과 자개의 영롱한 빛이 표현되지 않는 것이다. 그가 “작품 완성까지 길게는 1년이 걸리지만, 모든 과정을 거쳐야 자개와 옻칠이 어우러져 영원히 오래도록 빛이 난다”고 말한다.
“고민이 많죠. 내가 습득할 걸 후대에 어떻게 전해 줄까, 어떻게 옻칠의 친환경적인 우수성을 알릴까, 항상 생각해요.” 몇 년 전에는 다양한 색의 옻칠과 무늬를 이용해 현대에 맞는 디자인을 만들었는데…. 파스텔톤의 나비장과 경함은, ‘나전칠기는 고루하다’는 편견을 벗어내기에 충분. 많은 이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2018년부터 서울남부기술교육원 등을 통해 후진을 양성하고 있어요. 젊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배우겠다는 게 감사하죠.” 옻과 나무를 만지며 거칠어진 손이, 세상에서 가장 깊은 빛을 빚어낸다.  문의 | 임충휴갤러리 032)571-5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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