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 교도 금쪽 교무

글. 이성심 편집인

어떤 분이 딸아이가 예전과 다르게 아빠 말을 잘 듣지 않는다며 속상해 했다. 딸은 중1, 사춘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투덜거리는 말투와 막내라서 언니들을 이기려고 하는 등. 가족간 사소한 그러나 마음 상하는 취사에 그 분은 속을 끓이고 있었다. 불공법이나 가족 유무념공부, 한줄 감사일기 등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요즘 TV에서 방영하는 ‘금쪽같은 내 새끼’ 시청을 권했다.
가끔 TV방영 시간이 맞아질 때 ‘금쪽같은 내 새끼’를 주의 깊게 시청하곤 한다. 자녀와 대화법, 대인관계에서 마음 상하지 않게 충고하거나 거절하는 방법 등 각종 테크닉을 쉽게 알려줘 유익하게 받아들였다. 필요한 부분은 메모를 할 정도로 나의 시청 태도는 우수했다. 과연 그 분도 이렇게 학습하며 시청하실까? 훗날 물었더니 보고 있다는 응답이었다.
금쪽은 매우 귀하고 소중한 것을 가리킨다. 이 시대는 교무나 교도 모두 금쪽같은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TV프로에서는 ‘금쪽이’를 귀하고 소중한 것을 넘어선 그 이면의 문제행동을 예의 주시한다. 소중한 금쪽이의 문제행동을 보편아이로 되돌리는 실제적인 처방을 하고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끔 교무님들로부터 금쪽이 교도님에 대한 상담을 받는다. 또 교도님들로부터 금쪽이 교무님의 교화방법에 대한 이견을 물어온다. 또 금쪽 교무들 간 심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례가 들려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바람과 해님>의 외투이야기를 생각한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 결국은 따뜻한 온기라야 사소한 문제, 어떤 상황, 갖가지 경계를 원만하게 해결해내는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대종사께서는 선진후진, 재가 출가 모두 업어서라도 받들어 주어야 한다고 하셨다.  
문제행동이 부각되는 금쪽이 교도 금쪽이 교무가 아니라, 우리 모두는 본래 성품 그대로를 발현하는 과정에 있는 귀한 ‘금쪽 교도 금쪽 교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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