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려고 하면
다 쉬운 일이 됩니다.”

정은택 원광종합병원장

취재. 조예현 기자     사진. 박수현 기자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상(相)있는 것이 상 아님을 알면 곧 여래를 보리라.
대학 시절, 금강경을 접한 청년은 예순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그간 원불교도로서 해온 교단사업들을 묻는 질문에 “그거 별 거 아니에요” 라는 말로 돌아온다.
호흡기내과 전문의로 원광대학교병원에서 35년간 봉직하고 작년 정년퇴임을 한 정은택(법명 성국, 부송교당) 화성원광종합병원장. 그는 원광대학교병원 재임 시 해외의료봉사, 해외교당지원사업, 군종지원 등 각종 교단사에 합력해왔다. 호들갑스럽게 대단한 일을 했다며 칭찬하는 이들에게 그저 힘을 조금 보탰을 뿐이라며 늘 상(相)없는 공부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교도가 된 지 50년. 성실한 교도는 아니었다고 자평하지만 그는 소리 없이 교무들의 숨통이 되어주고, 꼭 필요한 곳에 손을 넣어주는 정 많은 교도다.
원광대학교병원장을 거쳐 원광종합병원장까지…. 어려울 수 있는 조직 운영도 원장이라는 상(相)을 내려놓는 것부터 시작한다. ‘용건 없이 서로 이야기 나눌 수 있고, 편하게 식사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그 조직은 행복한 공동체’라는 것이다.
원광종합병원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그는 화성시민들이 믿고 찾아오는 병원, 건강을 되찾아갈 수 있는 병원을 만들기 위한 희망찬 길을 힘차게 나섰다.

● 코로나19 확산세가 극심할 때 병원장에 취임하셨습니다.
“원불교에서 하는 병원이고 워낙에 기반이 탄탄한 곳이라 긴 고민 없이 수락했습니다. 원광종합병원은 코로나 팬데믹 2년 동안 적극적인 대응과 적절한 대처를 잘 해와서 오히려 화성시에서는 이미지가 더 좋아졌지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응급수술이 필요한 코로나 확진자를 치료했는데요.
“대단한 일은 아니고 흔히 있는 일입니다. 사실 별 거 아닌데 병원 내 감염이 두려워 기피해서 그렇죠. 어차피 할 거라면 우리가 하는 것이 좋고, 하기로 마음먹으면 그것이 복잡한 일만은 아닙니다.”
얼마 전 원광종합병원은 손가락 상해를 입은 코로나 확진자를 수술하기로 긴급결정을 내리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쳤다.
“안하려고 하면 안할 이유만 찾게 되고, 하려고 하면 다 쉬운 일이 됩니다.”

● 엔데믹 시대에 병원 운영 계획이 궁금합니다.
“그동안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병원들이 많이 위축되었습니다. 이제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어 이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외래환자, 응급환자, 입원환자, 수술환자들도 다시 예전 상황으로 회복될 거라고 봅니다.”
화성에 위치한 원광종합병원은 인구유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 지형 조건이지만 ‘훌륭한 병원이라면 설악산 꼭대기에 있어도 환자들은 찾아온다’는 정 원장의 신념으로 내실을 탄탄히 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 병원 운영을 하는 데 표준이 있을까요?
“‘용건 없이 대화 나누고, 용건 없이 차 한잔 하자!’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어서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 그저 만나서 사소한 이야기라도 재밌게 하는 관계가 되는 것이 중요하지요.”
먼저 벽을 허물고 다가가는 소탈한 성격을 가진 그에게 함께 일하는 임직원들은 힘든 일도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는다.
“자신이 이 조직의 부속품이나 도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중요하죠.”

● 교도가 된 지 50년이 되셨네요.
“어릴 땐 그저 교무님들이 좋고, 친구들이 좋아서 다녔죠. 그렇게 성실한 교도는 아닙니다.”
그는 대학시절 만난 원불교 도반들과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교당에 교무님을 성심으로 보좌하셨던 어른이 계셨어요. 지금으로 치면 덕무님이셨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도 그분이 가장 강렬하게 인상에 남아 있어요.”
나라는 상(相)이 없는 사람은 저런 모습일까? 청년들을 위해 늘 밥을 지어주고, 야외활동이 있을 땐 버스에서 내리지도 않고 반찬 준비를 했던 모습들. “어린 제가 봐도 저런 모습이 보살이겠다 싶었어요.”

● ‘원불교’를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원불교는 녹차 같아요. 다른 종교랑 비교를 하자면 담담한 맛이 있는 종교랄까. 그것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이끌어내는 강렬한 매력은 좀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내가 위안을 받고 제도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해야죠. 짧은 역사 속에서 아직 부족한 부분은 앞으로 더 채워나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현대인들은 더 외롭고 그래서 기댈 곳이 필요하다. 이 마음병을 치료해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든든한 의지처가 되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그다.

● 존경하는 스승님이 계시나요?
“원광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던 문산 김정용 총장님이에요. 제가 원광대학교병원장을 하는 4년 동안 정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문산님은 일과 공부를 모두 잘하셨던 분 같아요. 현실적인 문제를 원불교 교법으로 승화시키면서 해결해가는 모습이 정말 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시비가 많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모습과 당시에는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시일이 지나고 보면 그것이 모두 학교와 교단을 위하는 일로 결말을 맺는 모습까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것인지 확실히 길을 제시해주셨어요. 가다가 헤맬 수도 있고 길을 잃을 수도 있지만 결국 그 목표를 향해 가시는 분이시죠. 우리가 가야할 길을 늘 잊지 않게 해주셨어요.”

● 마음 속 표준이 되는 법문을 전해주세요.
“어린 시절 원불교를 처음 접하고 지금까지 ‘처처불상(處處佛像) 사사불공(事事佛供)’은 늘 마음속에 있습니다. 모두가 부처, 일마다 불공은 제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책임을 맡고 있든지 적용할 수 있는 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법문을 현실에 적용해서 성공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 행복의 비결이 있을 것 같습니다.
“참 감사하게도 저한테 좋은 성격이 하나 있다고들 하세요. 그것은 괴로웠던 이야기는 ‘그 때 그런 일도 당했어!’하며 웃어넘기고, 즐거운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고요. 하하!”
좋은 일 아홉 개는 잊어버리고 서운한 일 하나만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았던 일과 감사한 일을 더 많이 기억하는 게 타고난 천성이라는 그. 그래서 지나온 삶이 만족스럽고 현재도 행복하다.
“모든 직업이 마찬가지지만 병고를 겪고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더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담당의사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가 환자와 보호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거든요.”
그는 중국 작가 루쉰의 ‘희망’이라는 시를 좋아한다. ‘희망이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
“행복도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고 만들어 가면 우리한테 찾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조금만 더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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