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가을
꽃밭에서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콘크리트 갈라진 틈새에 풀꽃 하나 피었습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손가락으로 툭 튕겨 말을 걸어봅니다.
“자니?”
“아니. 명상 중이야.”
“힘들지 않니?”
“왜?”
“너무 척박한 곳에 자리 잡았다.”
“하늘을 봐. 구름이 떠다니지. 팔을 펼쳐봐. 바람이 느껴져? 또 콘크리트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있어. 부족한 게 뭔데.”
“혼자라 외롭지 않니?”
“일부러 이곳에 자리 잡은 걸. 아무것에도 간섭 받지 않고 나만의 세상을 꿈꾸기 딱 좋은 곳인데…. 봐봐,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일체 관심을 두지 않잖아.”
그렇게 홀로 꽃을 피운 풀은 씨앗을 만들어 맘껏 세상 밖으로 날립니다. ‘너희들 맘대로 살아보렴.’ 어느 집 화단에 자리 잡은 꽃은 사랑을 받을 테고, 들녘에 내려앉은 꽃은 자유롭게 흔들릴 것이고, 도시 어느 길목 외로이 선 꽃은 고독을 즐기겠죠. 그래서 꽃들의 세상은 행복합니다.

2.
꽃들의 깔깔깔 웃음이 산비탈에 가득합니다.
찬바람이 한 번 쓱 지나자 어깨를 툭툭 털어낸 꽃들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집니다.
“떠나려고?”
“아니, 돌아가려고.”
“어디로?”
“우리가 살았던 별들로 제각각 흩어지는 거지. 철새들은 남북으로 왔다 갔다 하지만, 우린 별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해.”
“거기가 어딘데?”
“빨강 꽃은 빨간 별로 갈 것이고, 노랑꽃은 노란 별로 갈 것이고, 초록 꽃은 초록 별로 돌아가는 거지.”
“무얼 타고 갈 건데?”
“사람들은 꼭 어떤 물체적인 것을 타야 가는 줄 아나봐. 우린 그냥 마음으로 가면 돼. 영혼으로 가는 거지. 영혼의 우주선을 타면 몇 광년의 거리도 눈 뚝딱이거든.”
“그럼, 그 별에서 겨울을 나고 오는 거야?”
그래서 겨울별이 유난히 반짝이나 봅니다. 노란 별을 더욱 노랗게, 빨간 별은 더욱 빨갛게…. 꽃이 지면 하늘은 별꽃들로 가득 채워져 겨울 강을 건너는 것이죠. 그래서 꽃들의 이별은 슬프지 않습니다.

3.
스르륵 잠에 빠져듭니다. 세상은 새까만 어둠이 차지했습니다. 몸을 뒤척뒤척.
천정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번쩍 뜹니다.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무수한 꽃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별들도 숨어 들어옵니다. “흑~.” 놀란 가슴. 그리고 다시 캄캄한 어둠.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모두 어디로 쓸려 간 거야.’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쿵쿵 두드립니다.
“아니, 좀 살살 두드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네.”
아우성 소리가 새어나오는 곳을 찾다가 가슴을 열어젖힙니다. 그 속에 꽃들이 숨어 있었네요. “아니, 왜 여기에 다 모여있어?”
“네 마음속이 제일 따듯하니까.”
“다들 꽃별을 찾아 우주로 떠난 거 아니었어?”
“하하하, 여기가 우주야. 네 마음속이.”
“…….”
“봐봐. 네 마음속에 모든 꽃들이 다 모여 있고, 별들이 꽃들을 실어 나르잖아. 마음보다 더 넓은 우주는 없어.”

꽃들이 떠날 시간이 다가옵니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돌아올지, 당신은 아시죠?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