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분명하면
고생스럽지 않다

황성학 원불교훈련기관협의회장

취재. 장지해 편집장

예비교무 시절, 만덕산훈련원에서 학년 동선(冬禪)을 나고 있는 예비교무들에게 작업이 주어졌다. 작업 내용은 표고버섯 종균을 접종할 나무를 산 위에서 굴리고 나르는 것. 애초 정해진 기간 안에 끝나지 않아 훈련 기간을 연장까지 해야 했던 일이었다.
드디어 훈련이 끝나는 날. “여기가 낙원이지? 앞으로 여기서 살 사람 손 들어봐라”라는 승산 종사의 말에 동기들은 주저 없이 손을 들었지만, 작업 내내 ‘내가 이 일 하려고 출가했나?’라고 생각했던 그는 차마 손을 들 수 없었다는데…. 그렇게 ‘이 산 속에서도 진짜 평생 살 수 있을까?’는 그의 오랜 고민이자 화두가 되었다.
“그랬는데 첫 발령을 삼동원으로 받은 거예요. 갓 새로 지어진 곳이라 그야말로 일거리가 엄청난 상태였지요. 첫 날부터 돌을 줍고 리어카에 실어 옮기는 일을 했을 정도로요. 그런데 그렇게 4년 정도 살고 나니까, 해답을 얻게 됐어요. ‘평생 여기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겠구나’ 하고요. 일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결이 된 거죠.”
그래서일까. 황성학 원불교훈련기관협의회장(국제마음훈련원장)에게 반복하여 배우고, 익히고, 실천하는 ‘원불교 훈련’이 갖는 의미는 조금 더 남다르다.

● 훈련기관협의회장으로서, 훈련기관협의회(이하 훈기협)의 역할을 소개해주세요.
“훈기협은 전국의 원불교 훈련원들이 서로 의지하고, 정보교류도 하고, 집단적으로 의식도 공유하는 창구예요. 크게 두 가지 역할에 초점을 맞추는데, 가장 우선 목표는 교도정기훈련 내실화지요. 교도정기훈련 프로그램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향상시켜서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 각 훈련원이 가진 프로그램과 자료들을 공동으로 축적하고, 공동의 방향을 설정하고 추진하고 평가까지 함께 해나가고 있어요.”

훈기협의 두 번째 목표는 ‘대사회적 훈련 강화’다. 원불교인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갖춘 공간으로써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 곧 오픈될 공동홈페이지 ‘마음 온’은 각 훈련원들의 소식을 한 데 모아 접근성을 높일 예정이다.

● 훈기협의 활성화와 함께 긍정적 피드백도 실제로 많아졌습니다.
“훈기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람이 바뀌더라도 유지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추는 거예요. 질 높은 프로그램을 어느 정도 정형화 해놓으면 개인이 가진 역량이 달라도 흔들리지 않거든요. 한 해 또는 몇 해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 할지 함께 공유하되, 각 훈련원의 특징은 그대로 존중을 하지요. 각자 개발한 것을 공유하니까 매년 17~8개의 훈련 프로그램이 수확되어서 상당한 자료와 실력으로 축적되어가고 있어요.”

● 상시훈련이 강조되면서, 상시훈련의 기반이 되는 정기훈련에 대한 기대도 함께 높아지고 있습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의 정신이 일상생활 속에서 신앙하고 수행하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원불교에서는 당연히 상시훈련이 중요해요. 하지만 상시훈련을 잘 하기 위해서는 정기훈련이 반드시 이뤄져야 하죠. 경전·법규 연습, 의두 연마, 염불과 좌선, 상시일기 점검 등을 해 본 적이 없으면 일상에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렇다고 교당에서 모두 책임지기에는 교화 현장의 상황이 어려운 게 현실이죠. 교당과 훈련원은 사실 상시훈련이 가능하도록 역할을 분담하되 ‘연결되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교당과 훈련원이 하나가 되어서 ‘어떻게 하면 교화를 함께 성장시켜나갈까. 교도님들의 신심과 서원이 어떻게 살아나게 할까’라는 공동 목표를 함께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죠. 그런 측면에서 보면, 정기훈련을 단순히 ‘이수하는 과정’ 정도로 여기는 인식은 아쉬운 부분이죠.”

각 훈련원의 정기훈련을 대하는 마음자세에 있어 재가·출가교도들이 ‘이 훈련을 통해 상시훈련에 도움을 받고, 생활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자료를 마련하겠다’는 의식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황 원장이다.

● 훈련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쁠 때는 언제인가요? “훈련에 참여한 분들이 각자 나름대로 깨달음을 얻고, 신선한 감동을 느끼고, 자신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을 공유해줄 때 가장 기쁘죠. 꽃이 탁 피는 순간을 지켜보는 느낌이랄까요? 그런 사람이 단 몇 명만 있어도 훈련을 하는 보람이 있고, 즐거워요.”

● 작년 한 해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국제마음훈련원에서는  온라인 동선(冬禪, 겨울훈련)이나 온라인 마음훈련(일명 온마훈련) 등으로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했습니다. “올 1월에 진행했던 온라인 동선의 경우, 계기는 소박했어요. 작년 1월에 훈련원 개원 5년 만에 처음 시작한 ‘동선’의 역사를 끊어지지 않게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과, 우리만 참여해도 괜찮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훈련이 시작되니까 130명이 입선을 한 거예요. 실시간 송출을 하니까 현장감이 그대로 전달되고, 댓글 등으로 상호 소통도 충분히 되더라고요. 한 번 해보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그렇게 온마훈련과 온라인 교도정기훈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동선을 해야 하나…’ 고민하던 시기만 하더라도 온라인에 대해 아는 이는 훈련원 내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일단 도전했고, 나름 성공을 맛보며 자신감을 얻어 또 다른 도전을 하게 된 황 원장과 훈련원 식구들. 무엇이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함을 사례로 보여주는 일면이다.

● 현대인들에게 원불교 훈련원이 어떤 힘을 줄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이 ‘현대인들은 하늘에 달이 떠있는데 그 달을 볼 시간조차 없이 산다’고 한 적이 있어요. 그만큼 여유가 없이 산다는 거죠.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갈증하는 것이 마음의 여유를 찾는 일인 것 같아요. 마음을 돌아보는 여유 없이 열심히만 살면 어느 순간 허망해져요. 우리 훈련원들은 물론이고 종교들이 그 일을 해야죠. 스스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역할이요. 국제마음훈련원도 그런 쉼터가 되고 싶어요. 그럴만한 실력도 충분히 갖춰져 있어요.”

● 종교가 위기인 시대라고 합니다.
“이런 질문을 해보고 싶어요. ‘현재의 여러 종교들이 교도(신도)를 위한 종교인가? 아니면 교도(신도)가 종교를 위하는 종교인가?’ 종교의 존재 의미는 그 종교가 있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것이어야 하는데, 역전된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종교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종교를 위해 인간들을 희생시키고 있는 거죠. 숫자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고, 이웃종교들 역시 숫자에 민감한 건 결국 경제 때문이에요. 물론 경제자립이 쉽지 않은 현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태산 대종사께서 걸어가고자 했던 길과 맞지 않다면 당장 어떤 해결법이 나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결해나갈까 계속 고민을 해야죠. 그런데 요즘, 너무 조용한 것 같아요. 이러다가 일상성에 젖는 건 아닐까 걱정돼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그리려는 그림이 호랑이라면 호랑이를 제대로 그리고 있는지 계속 점검을 해야죠.”

● 원불교가 세상과 더 가까워지고, 세상 속에서 함께 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신을 먼저 살려내야 할까요?
“저는 ‘시대화·생활화·대중화’라는 말에, 소태산 대종사님의 혁신 사상이 그대로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이 말은 곧 일반사람들의 생활과 우리의 생활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평범한 사람들 누구라도 신앙하고 수행할 수 있는 종교를 만들겠다는 방향이자 지침이죠. 그렇게 보면,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맞는지 틀린지 가늠하는 기준을 거기에 두어야 해요. ‘시대화·생활화·대중화’라는 잣대에 반하면 방향에 맞는 길이 아닌 거죠. 반대로 그 잣대에 맞는다면 길을 벗어나지 않고 잘 가고 있는 것이 될 테고요.”

● 후배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세요.
“제가 젊을 땐 선진님들께 ‘너희는 참 복 받았다. 너희들 세상은 좋은 세상이다’라는 말씀을 많이 듣고 컸어요. 그냥 하시는 소리라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들으면 기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희망적인 말을 많이 해주는 게 어른 역할인데, 요즘 교단에서는 그런 역할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아서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교단에 젊은 교무들의 자존감이 꺾이지 않도록 고민을 많이 해야 할 것 같고, 후배들 스스로는 자부심을 가지고 ‘지금은 힘들더라도 이 일이 나중에 정말 좋은 결과를 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서 조금 더 힘을 내주면 좋겠어요. 고생을 하더라도 분명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하면 고생이 아닌 게 되거든요. 스스로도 감내하고, 윗세대에서도 후배들을 존귀하게 여겨주는 문화가 맞물려야 힘 있는 원불교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는 <대종경> 인도품 12장 ‘내가 못 당할 일은 남도 못 당하는 것이요 내게 좋은 일은 남도 좋아하나니, 내 마음에 섭섭하거든 나는 남에게 그리 말고 내 마음에 만족하거든 나도 남에게 그리하라. … (하략)’라는 법문을 가장 좋아한다. 간단하고 쉽지만, 불공을 할 때 이것만 기준 삼으면 반드시 성공하는 불공이 된다는 것.

● 행복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만약 행복을 누가 주는 것이라면, 누가 줄 때만 행복하고 주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죠. 행복은 ‘내가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밖에서 오는 행복은 그 순간만 충족되는 일회적 행복이지요. 모든 순간순간에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함을 느끼면 행복해요. 모르면 행복할 일이 하나도 없지만,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면 행복 아닌 것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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