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수행의 원불교와
미국 실용주의의 융합

원불교 해외종법사 1호 + 초대 미국종법사
죽산 황도국 미국종법사

대담. 노태형 사장
정리. 장지해 편집장

원기 52년(1967), 갓 반세기 역사를 넘긴 원불교에서는 미국에 교역자를 파견한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흐른 현재, 원불교의 해외교화 역사에는 물론이고 전 역사에 있어서도 길이 기록될 원불교 해외종법사 1호가 탄생했다.
원불교 해외종법사 1호이자 초대 미국종법사로 임명받은 죽산 황도국 미국종법사. 교단 안팎에서는 ‘원불교 미국종법사 탄생’이 원불교 미국자치교헌 제정과 맞물려 현지 맞춤 교화의 새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에 죽산 미국종법사는 “개인의 능력으로는 부족하지만, 소태산 대종사님의 일원교법을 가지고 가는 것이니 그 포부와 경륜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면 미국에서 원불교의 미래는 양양할 것.”이라고 말한다.
퇴임 후 이미 미주총부 원다르마센터 교령으로서 약 1년여 간 미국에 머물렀던 죽산 미국종법사. 당시 그는 현지인 교도들을 만나 대화하고 미국을 직접 보고 겪으며 ‘일상 활동을 수행으로 변화시켜나가는 원불교 교법이 미국의 실용주의와 제대로 맞아 떨어짐’을 더욱 확신했다. 앞으로 약 3년 반에 걸쳐 미국자치교화의 초석을 마련하는데 전념할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본다.

● 해외종법사 1호이자 초대 미국종법사로서 교단 새 역사의 첫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소감을 전해주세요.
“예전에 누군가, 대산 종사께 종법사위에 계시던 시절의 이야기를 꺼내니까 ‘나는 종법사 된 적이 없다. 소동(小童), 소제(小弟), 소자(小子)로 살아갈 뿐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머릿속에 많이 맴돌아요. 그토록 큰 어른도 늘 소태산 대종사님을 모시고 받들며 사셨듯, 저에게 미국종법사의 소임이 주어진 것 역시 미국의 많은 재가·출가 교도들을 받들며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받드는 마음’은 미국 현지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국의 재가·출가교도들은 미국종법사 임명식(1월 13일)을 앞두고 3일간 자청하여 특별기도를 했다. 이에 죽산 미국종법사는 미주교화 초창기에 상산 박장식 종사, 승타원 송영봉 종사, 초타원 백상원 종사를 비롯한 많은 선진과 동지들이 혈심혈성으로 마련한 토대가 있어 오늘의 미주교화 결실이 있음에 깊은 감사를 전했다.

● ‘미국종법사’에 담긴 상징이 뭘까요?
“어른들이 그리는 그림, 그 스케일은 확실히 달라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일제의 간섭이 극하던 그 시절에 이미 ‘해외종법사’ 제도를 말씀하셨잖아요(<대산종사법어> 제6 회상편 31장 참조). 소태산 대종사께서 교법을 펴실 때 가장 먼저 보신 건 시대관이에요. 그 시대에 맞고 적절한, 즉 시대화·생활화·대중화 정신을 깔아 놓으신 거죠. 다시 말하면, 결국 교법은 그 시대 속에서 실현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미국에 간 원불교는 미국에 맞는 원불교가 되어야 하죠. 미국자치교헌 제정이나 미국종법사 임명에 담긴 참 의미는 ‘마음대로 해도 된다.’가 아니라 ‘현지에 맞게 하라.’는 것 아닐까요? 우리 교법정신에 바탕 하는 것은 기본이고, 현지에 맞는 포석을 해나가라는 거죠. 미주지역에 40여개 교당·기관과 70여 명의 출가교역자들이 있는 걸 생각하면 오히려 늦은 시작이에요.”

교령으로서 1년여 간 미국에 머물며 그가 느낀 것은 ‘종교’라는 개념이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은 여전히 ‘우리 교도’ ‘우리 종교’에 갇힌 개념이 강한 반면, 원다르마센터에 명상을 하러 오는 이들은 가톨릭인, 기독교인, 유대교인 등 이미 특정 종교에 갇히지 않고 울을 넘나들며 교류하고 있었던 것. 물론 그들만의 확실한 기준은 있었다. 그건 바로 ‘내 삶에 도움되는 종교를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 ‘종교’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네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인도(人道) 정의의 대도’에 중점을 둔 것은, 종교를 믿음으로써 삶에 도움을 얻어야 한다는 가르침이에요. 이 가르침이 실용주의를 추구하는 미국 사회의 흐름과 너무 잘 맞아떨어지죠. 종교를 믿고 교리를 배움으로써 직장에 나가는 사람은 직장에, 가정이 있는 사람은 가정에,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에 도움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나는 원불교가 미국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탈종교현상은 결국 기성 신앙과 기성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거든요. 하지만 명상이나 힐링에 대한 욕구는 늘어나잖아요. 그러면 원불교로서는 호기(好期)죠. 우리 교법은 일상생활 자체를 수행으로 만드는 가르침이니까요.”

● ‘종법사’라는 호칭에 대한 우려도 있는데요.
“단어만 보면 같지만, 미국종법사와 중앙종법사는 그 위상과 개념이 아예 달라요. 미국종법사는 미주지역 교화의 책임자로서, 현지 실정에 맞는 교화를 더 잘 하도록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는 역할이죠. 중앙종법사께 맥을 대고 일하는 건 당연하고요. 원다르마센터에서 한 현지인에게 ‘여기에 왜 왔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이미 여러 교무님들이 있어서 잘 하고 있는데, 교령이라고 해서 굳이 또 있을 필요가 있냐.’는 의미가 담긴 질문 같아서,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죠. ‘나는 한국에서도 같이 수행하고 공부하고 적공하면서 살다 왔다. 다른 것 아니다. 여기서도 공부하고 적공하며 함께 살기 위해 왔다.’고요.(웃음)”

● 미국종법사로서 미주지역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만약 원다르마센터가 미국에서 뜨는 영성센터가 된다면, 저절로 전 세계에서 뜨는 영성센터가 되는 거예요. 미국의 정신적 중심 센터로, 미국에서 각광받는 영성센터로 만들어야죠. 또 미국은 새로 개척할 곳이 많아요. 한국식 원불교로 잡힌 틀을 변화시키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의 시도를 통해 변화를 더 빨리 가져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죽산 미국종법사가 미국이라는 도화지에 그려보는 그림은 크게 다섯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우리의 ‘정신개벽’이 ‘마인드 풀니스(mind fulness, 마음챙김)’처럼 미국사회의 일반용어가 되는 미래다. 또 한 가지는 일상의 활동을 수행화 하는, 즉 일상수행이야말로 실용주의의 미국에서 가장 완결판 수행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다. 세 번째는 교화단 중심의 자치교헌을 통해 무수한 불보살을 배출하는 길이다. 즉 신심 굳은 열 사람만 형성되면 건물이라는 실체가 없어도 그 자체로 교당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 네 번째는 도덕에 대한 인식이 낮은 미국 사회의 도덕을 우리 교법을 통해 구현해 내는 것,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종교간 협력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해 나가는 모습이다.

● 미국교화뿐 아니라 세계교화, 그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까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왜 ‘해외 각국의 종법사’라고 하셨을까…. 교법 정신에 기반하되, 현지 그 나라의 법에 맞게 제도를 설정해 나가라는 뜻이 담긴 거잖아요. 미국이 진작 현지에 맞게 해갔다면 현지 교역자도, 희사자도 훨씬 더 생겼을 거예요. 미국에서 한국 사람이 한국 방식으로 교화해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결국 우리가 해외로 확장해 나가는 것은 ‘법’을 전하기 위해서인데,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와서 2조 혜가 한 사람을 만나 법을 전하고, 혜가는 3조 승찬에게, 승찬은 4조 도신에게, 도신은 5조 홍인에게, 홍인은 6조 혜능에게 법을 전함으로써 중국에 불법이 편만해져요. 그 ‘한 사람’을 현지에서 발굴하는 일이 중요해요. 그러려면 결국 법을 전하려는 나에게 법의 중심이 확실해야죠. 전달자인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형식 원불교’가 될 수도, ‘일원상의 진리를 제대로 전하는 원불교’가 될 수도 있어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법을 내는 사람, 법을 받는 사람, 법을 전하는 사람의 공덕이 똑같다고 하셨잖아요.”

● 미국(미주) 재가·출가교도들에게 하고픈 말씀이 있다면요?
“어떻게 보면 이번에 미주는 전산 종법사님께 큰 선물을 받았죠. 소태산 대종사님과 정산 종사님, 대산 종사님 이하 역대 종법사님과 스승님들이 크게 꿈꾸고 그려온 자치교화를 실현해보게 되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무슨 큰 깨달음이 있어서 이 일을 맡게 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답은, 대중의 지혜를 나의 지혜 삼아 합력해 나가는 거죠. 새로운 길의 제시보다, 미국 재가·출가교도들이 교법에 맞게 공부하면 미국에 원불교가 자연히 번지게 되어있어요. 시일의 장단이야 있겠지만 제대로 공부하면서 ‘미국에 어떻게 이 법을 잘 전할 것인가?’ 하는 방법을 찾다보면 창립의 기쁨까지도 누릴 수 있고요. ‘이 기회에 미주교화가 크게 약진하도록 한번 해보자.’고 말하고 싶어요.”

● 원불교가 미래 시대의 종교로서 나아갈 길을 짚어주세요.
“교법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돼요. 우리 교법은 현실 위주 교법이고, 원불교는 삶의 종교예요. 소태산 대종사께서 <정전> 최초법어에서 수신의 요법 1조로 ‘시대를 따라 학업에 종사하여 모든 학문을 준비할 것이요.’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결국 우리의 교리나 각자의 수행은 그 시대를 통해 나타나요.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교역자라면 시대감각을 가져야 하고, 이 시대에 우리 교법이 어떻게 활용되게 할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답을 제시해야죠.”

●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들이 하루 생활 속에서 자신만의 조용한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물질문명에 계속 끌리면 마음이 번거해지고, 마음이 번거하면 행복을 느낄 수 없어요. 요즘 ‘선한 영향력’이라는 말이 일반화됐는데, 내가 행복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전달하죠. 정말 바쁘더라도, 하루 중 조용히 스스로를 관리하고 다스리는 시간을 꼭 가지세요. 그래야 행복을 느낄 수 있고, 남에게도 전해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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