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산에서 마음을 줍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터덕터덕… 터덕….’
가쁜 숨 때문에 호흡이 길어집니다. 가파른 오솔길을 잠시 벗어납니다. 긴 막대기로 숲속 여기저기를 뒤적입니다.
“무얼 잃어버리셨어요?”
무심히 던지는 행인의 호기심에 멀뚱멀뚱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그걸 모르겠어요.’
사는 것에 바빠 잃어버린 것이 무언지도 모른 채, 귀한 약초를 찾는 듯 딴청을 부립니다. 나이 지긋한 사람이 지나가며 혀를 끌끌 찹니다.
“허허 참, 잃어버린 것도 모르고 살아온 세월을 여기서 찾겠다고….”

문득, 가파른 길을 오르던 어린 아이의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귓가를 두드립니다.
“아빠, 나 이제 늙었나 봐. 오르막길이 힘들어.”
여섯 살짜리 동생보다 두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아이는 젊은 아빠를 향해 손을 내밀며 투정을 부립니다. 늙었다는 건 긴 세월이 지났다는 소리겠죠. 그걸 아이는 알까요. 피식, 웃음이 먼저 지나갑니다.
다시, 숲속 여기저기를 뒤적입니다.
떼굴떼굴 굴러온 도토리가 삐죽이 얼굴을 내밉니다. 집 떠나 길 잃은 밤톨도 몰래 숨었고요. 다람쥐가 떨어뜨린 잣송이에 웬 횡재인가 싶다가도 별 관심이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릴없이 이래저래 뒤적이다 보니 어느 순간 눈이 번쩍 뜨입니다.
‘아, 그래. 그걸 잃어버렸지. 내 마음….’
그렇게 마음 한 톨을 줍습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그런 말이 있죠.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이며, 22%는 사소한 사건들, 또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것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사건이다. 즉, 우리의 걱정거리 96%는 알고 보면 쓸데없는 것이다.’
이런 쓸데없는 걱정거리가 우리의 일상을 흔듭니다. 생기지도 않을 돈을 얻기 위해 영혼을 팔고, 없는 땅을 억지로 장만하려 허덕이고, 오르지도 못할 출셋 길을 달리기 위해 비굴해집니다. 또 많이 벌고도 더 못 벌어서 한이 되는 돈 걱정이나, 남의 것까지도 빼앗아야 직성이 풀리는 땅 걱정이나, 누군가 치고 올라올까 늘 애태우는 출세 걱정이 우리를 지치게 합니다. 없는 사람은 굶을까 걱정이고 많이 가진 사람은 빼앗길까 걱정이죠. 욕심이 쌓이면 걱정거리가 많아집니다. 걱정이 태산인데 어찌 마음을 온전히 보전하겠습니까.

‘바스락 바스락…’
계절이 발아래 밟히는 시간입니다. ‘본래 그것이었으니 그것으로 돌아간다.’는 화두 같은 소리. 자연은 이것을 아는데, 우린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겠죠. 아니, 사는 것조차 두려운 것이겠죠. 심무가애 무유공포(心無罫碍 無有恐怖, 마음에 걸림이 없으면 두려움도 없다).
가을이 아름다운 건, 모든 걸 내려놓아 가벼워지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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