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새로운
정신문명의 기회

박광수 한국종교학회장

취재. 장지해 편집장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사례를 여럿 만났다. 그리고 이는 특정 종교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닌, 전 종교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과제가 되었다.
“일제강점기에도, 민주화시대에도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는 종교는 민중(국민)들에게 환영을 받았어요.”라는 말로 종교의 사회적 역할의 중요성을 전하는 박광수(법명 도광, 교수교무, 원광대학교 교학대학장) 한국종교학회 회장. 시대정신을 읽어내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종교일 때 세상과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종교가 된다는 것이다.
종교학자이자 교무로서, 원불교의 학문적 확장을 위한 서원에 특히 공을 들이고 있는 그. 그는 최근 종교학계의 세계적 학술저널인 ‘Religions(A&HCI)’에 ‘한국의 원불교 장례의례(The Funerary Rites of Won Buddhism in Korea)’를 주제로 논문을 게재하여 원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학문적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그는 정작 성과에 대한 개인적 질문에는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더니, “국제적이고 세계적인 종교저널에 원불교를 다룬 논문이 게재된 것은, 원불교를 세계에 알리고자 하는 노력의 작은 한 부분.”이라며 소박하게 웃는다.

● 종교학자로서, 코로나19로 인한 종교 위기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나요?
“시대가 풀어야 할 문제죠.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은, 지역과 국가 단위는 물론이고 전 인류의 위기상황이에요. 이러한 위기현상은 종교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죠.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이런 현상이 왜 왔는지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코로나19 팬데믹 현상은 종합적인 현상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알고 보면 인류 역사가 가지고 있던 물질과 과학 중심, 생활의 편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온 역작용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죠. 사회적 질병은 곧 욕심에 의해 발생한 정신적 질병이기도 해요.”

약재가 개발되면 질병의 일시적 치료는 해결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또 다른 질병이 나타나는 근원을 끊을 수 없다고 말하는 박 회장. 과도한 욕심에서 비롯된 물질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는 방법이라고 한 번 더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위기가 오히려 인류 구원을 위한 새로운 정신문명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

● 종교들도 많은 변화를 요구받고 있는데요.
“당연히 변해야죠. 그동안에는 종교의례에 함께 참석함으로서 종교적 정체성을 확인하고 연대하고 확장시켜나가는 것이 주 활동이었지만, 이제는 어려워졌잖아요. 그러면서 자연히 소규모 영성 문화로 변화할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전에도 탈종교시대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탈종교현상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많이 생겼던 표현이 ‘대체종교’라는 말이에요. 종교적인 색을 띄지 않는 심신수련이나 마음수행을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거죠. 대규모 종교 의례가 중심 되는 측면도 한쪽에서는 상징성 있게 가면서, 새로운 종교운동이 함께 일어나며 다변화되고 있는 거예요.”

한국종교학회장인 그는, 올해 한국종교학회 50주년을 맞이하며 ‘종교와 영성, 사회적 치유’를 중심 주제로 올 가을 학술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종교의 가장 큰 정체성은 영성을 밝히는 것이고, 동시에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아야 종교의 참 의미가 살아난다는 것. 그 일을 하지 못하는 종교는 하나의 도구로써, 어느 순간 사라져버릴 수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 원불교의 ‘자리이타’ 정신이 발휘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듭니다.
“원불교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진리를 생활 속에서 실천한다는 점이에요. 종교적 영성이나 깨달음 또는 신앙성은 ‘숭고한 종교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한데, 원불교는 그 숭고성을 내 안에 두게 했어요. 과거에는 ‘신앙’을 절대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나 행위로 말했지만,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일원상을 신앙의 정점으로 두면서도 일원상의 신앙과 내 마음을 일치하게 했지요. 신앙성을 위로만 향하게 하지 않고 내 안으로 모시게 했고, 그것을 다시 관계성 속에서 은혜로 실천하게 한 거죠. 이데아를 현실 속에서 실현하게 한 것은 지금 시대와 잘 통할 수 있는 면이에요.”

● 종교들이 함께 세상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텐데요.
“우리나라의 경우 종교간 갈등이나 대립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큰 틀에서 보면 매우 미미하고, 상당히 높은 수준의 대화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어요. 교류와 대화, 그리고 협력이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종교영성적인 배움의 과정이 중요해요.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 활동을 하던 당시 일본의 시라나야기 세이치 추기경님이 해준 말씀이 오래 남아있죠.”

이웃종교들과의 교류는 때로 국가별, 종교별 갈등 이슈로 인해 난감하고 어려운 상황을 맞닥뜨리게 한다. 갈등관계를 마주하며 고민하는 마음을 털어놓은 그에게, 시라나야기 추기경은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하나는 많은 신앙인과 수행인들을 만나는 가운데 자기 신앙에 대한 정체성이 확실히 서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화와 협력을 빨리 이루려 하지 말고 오래 인내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상대방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종교에 대한 확실한 이해와 신념에 바탕해 상대방에 대해서도 잘 알아야 원만한 교류와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 신앙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집단 지성을 높여야 해요. 집단 지성이 높아지려면, 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체험을 통해 종교성을 키워야 하죠. 깨달음에 대한 갈구, 구도자로서의 자세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스스로 종교적 체험이 있을 때 나의 종교적 정체성이 생겨요. 그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정이지요. 내 종교를 깊게 알려면 종교 의례를 소홀히 해선 안 되고, 동시에 외부 종교의 문화나 의례 등을 함께 경험해 볼 필요가 있어요. 체험지다(體驗之多)·경험지다(經驗之多)라고, 경험의 폭이 넓을수록 시각과 수준이 높아져요. 그러기 위해서는 교단적으로도 인재들이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투자가 필요하죠.”

● 원불교학과 교수이자 교학대학장으로서 책임감도 많이 느낄 것 같습니다.
“교학대든, 영산선학대든, 대학원대학교든, 예비교무를 직접 교육하는 분들이라면 원불교학의 발전에 대한 소명의식을 가져야 해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원불교는 사회적으로나 교학적으로 인정받지 못해서 유사종교 연구대상 목록에 포함되었어요. 그때 박길진 총장님을 비롯한 소위 4박사님들이 학문적 체계를 세워 원불교를 세상에 드러내셨죠.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원불교학을 제대로 정립함으로써 원불교를 세계종교의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에요.”

교단이 커짐에 따라 내부의 활동이 다양화되고 강해지면서, 바깥과의 교류가 축소됨을 우려하는 그. 다양한 전문 분야의 교역자들이 학회 등의 외부 활동에 함께 하는 학술적 교류를 확장해가는 일이 원불교학을 발전시키는 일이라고도 덧붙인다.

● 법인절을 지내며, 법인기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데요.
“종교적 의례는 기념‘식’이 되어서는 안돼요. 어떤 것을 기념해서 하는 ‘행사’에 그치면 종교성이 약화되거든요. 정해진 형식에 내용이 제대로 채워져야 생명력이 살아나죠. 혈인기도는 깨달음을 얻은 소태산 대종사가,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에 있는 제자들을 함께 순숙시키는 과정이라는 것에 큰 의미가 있어요. 기도 정성이 혈인으로 나타남을 보고 법명을 주면서 ‘세속의 이름은 이미 죽었고 다시 이름을 주어서 살리는 바’라고 한 것은, 과거의 작은 한계 속에서 살던 나를 확 깨버린 아주 중요한 사건이에요. 새 생명을 얻은 것과도 같은 것이지요. 혈인기도는 원불교의 정신적 근간이자, 성속(成俗) 일치의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 후배들에게 전하고픈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종교가 제도화되면 형식과 격식이 중심이 돼요. 형식과 격식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건 그것이 확장되면서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거죠. 변화를 통해 소프트 릴리전(soft realigion, 부드러운 종교)이 돼야 해요. 누구든 수용할 수 있어야 하죠. <정전> 교법의 총설에서 ‘다른 종교의 교지도 통합 활용하여 원만한 종교의 신자가 되자는 것이니라.’고 하셨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부정한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 제도 종교 그 자체라기보다 ‘제도적으로 고착화 되어 있는 종교’에 대한 부정이에요. 제도 종교의 본질을 잘 드러내면서도 다른 종교와 사상, 문화, 민족을 수용할 수 있으려면 결국 스스로의 종교적 체험이 중요해요. 그 가운데 어려움을 혹 맞닥뜨리더라도, 넘어진 곳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씨앗을 잘 보존하세요.”

● ‘은혜로운 세상, 행복한 마음’을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존재 자체가 매우 의미 있지만, 나의 존재 근원은 결국 ‘은(恩)’의 원리예요. 관계성 속에서 생명과 생명으로 연결된, 없어서는 살 수 없는 그 관계성을 철저히 깨닫는 것이 원불교의 독특한 종교적 체험이죠. 소태산 대종사께서도 ‘깨닫고 보니 부지중 사은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독각(獨覺)이 아니라, 주변 인연들과 환경에 의해 보다 숙성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그리고 많이 지어야 해요. 오랜 세월 보시 공덕이 쌓이면 깨달음의 원천수를 발견하는 길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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