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 총부

취재. 노태형 편집인

“깔깔깔깔~~.”
어디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아님, 멀리서 그리운 벗이 찾아온 모양이죠. 또 들려오는 웃음소리 “호호호호….” 그 웃음을 따라 웃다 보니 행복해집니다. “허허허허~.” 웃음이 흔하다는 건 마음의 배가 부르다는 것이겠죠. 소태산 대종사님 계신 ‘마음의 고향’, 총부(익산성지)에 가면 그렇게 웃음 배가 든든해집니다. 
“소태산 대종사님이 계실 때는 가끔 대중들을 모아놓고 ‘깔깔대소회’를 열었어요. 그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여서 장기자랑 한판을 펼치죠. 정~ 할 게 없는 아이는 옆으로 뒹굴뒹굴 구르기만 해도 어른들이 배꼽을 잡았어요. 웃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무엇인들 재미가 없겠어요.” 어느새 지나쳐온 100여 년, 그래서 웃음은 원불교 사람들의 행복을 채워주는 상비약이 되었나 봅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여기에 부처님이 산다면서요?”
“네. 이곳에, 죽은 부처님은 없어요. 모두가 살아있는 부처님이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하하, 주위를 둘러보세요. 부처님이 보이지 않으세요?”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이어 “당신이 나의 부처님…”이라는 말에 겨우 오랜 비밀을 엿본 듯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아, 처처불상(處處佛像), 모두가 부처님이란 말씀이군요.” 세상 모든 생령이 부처되는 세상, 얼마나 행복할까요. ‘이미 그런 세상인데….’ 둥글둥글 웃고 사는 부처님이 그곳에 있습니다.
“개똥아~ 개똥아~.”

“예~.”
“개똥아~ 개똥아~.”
“왜요~.”
“개똥아~ 개똥아~.”
“왜요, 자꾸~.”
그렇게 부르던 스승의 목소리가 한참 잠잠하더니, 혼잣말처럼 한 마디를 툭 내던집니다.
‘참 멍청한 놈~. 누가 널 부르더냐. 그걸 못 알아차려. 쯧쯧.’
부르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것은 자신의 몫입니다. 답을 줄 수 없는 부름. 그래서 스승은 한숨을 내쉬고 어리석은 제자는 하릴없이 대답만 반복합니다.
소태산 대종사가 머물렀던 종법실(옛 구조실), 잘 정돈된 디딤돌을 징검다리 삼아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연신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부름의 소리가 있습니다. 주위를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스산한 바람만이 나뭇잎을 흔들고 오랜 세월을 지켜온 정원은 조용하기만 하죠. 또 한 발을 내딛습니다. 그때~.
“개똥아~~.”
머뭇머뭇, 혼잣말로 답을 합니다.
“좀 그만 불러요.”
“야, 이놈아, 정신 차려~.”
몇 번을 불러야 정신을 차릴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후딱 지나치다 보니 어느새 세월이 저만치 도망가 있습니다. 그렇게, 그곳에는 나를 불러주는 부처님이 있습니다.

세상이 원망 병으로 앓고 있습니다.
더 갖지 못해, 더 빼앗지 못해, 더 이기지 못해, 욕심의 바다가 출렁입니다. 정신 차리시게요. 그래 봐야 영원한 내 것은 없습니다.
‘마음의 고향’ 총부를 거닐면 욕심으로 홍수 난 마음, 그만 내려놓으라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음성이 귓전에 울려 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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