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담긴 배꿀물

재료들을 넣어 푹 고아서 보온병에 담아주시면 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글. 주희주

요즘 날씨가 부쩍 추워졌습니다. 낮에 햇볕이 따뜻하다고 조금만 방심하면 날카로운 저녁 공기에 감기 걸리기가 쉽습니다. 여러분들은 감기에 걸렸을 때 어떻게 하시나요? 바로 병원으로 가서 감기약을 처방받나요, 아니면 본인만의 극복 방법이 있나요?
저는 감기에 걸리면 콧물을 많이 흘리는 편입니다. 그래서 콧물 때문에 고생을 할 때마다 엄마는 배꿀물을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배꿀물은 배, 생강, 콩나물, 꿀을 넣고 달인 물인데, 부어서 아픈 목이 편안해지고 콧물을 그치는 데에도 효과적입니다.
언젠가는 이런 배꿀물을 어떻게 알고 끓이는지 엄마에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30여 년 전, 엄마가 큰언니를 임신하셨을 때라고 했습니다. 임신 중에 감기에 걸렸던 엄마는 뱃속의 아기에게 해가 될까 봐 그 흔한 감기약 하나조차 마음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임신 중에 먹을 수 있는 약을 물어보러 약국에 가서 약사 선생님을 만나셨다고 합니다. 양의학과 한의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약사님은 지금의 배꿀물 조리법을 알려주셨고, 엄마는 무사히 감기가 나으셨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엄마는 큰언니, 작은언니, 저, 동생까지 4명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감기에 걸릴 때마다 배꿀물을 달여 마셨다고 합니다.
비단 배꿀물의 효능뿐만이 아니라, 뱃속의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과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건강한 4남매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과거에 엄마의 감기를 낫게 해 준 배꿀물은 지금까지도 저를 비롯한 4남매의 감기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저는 감기에 걸리면 콧물로 고생을 많이 하기 때문에 다른 형제자매에 비해 배꿀물을 자주 마시곤 했습니다. 엄마가 큰 냄비에 재료들을 넣어 푹 고아서 보온병에 담아주시면 저를 걱정하는 엄마의 마음이 잘 느껴집니다. 하루빨리 제가 낫길 바라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담긴 따뜻한 배꿀물을 마시면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따뜻해지는 듯합니다.
이렇게 감기에 걸릴 때 저를 생각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우면서도 기운이 납니다. 여러분들도 감기에 걸렸을 때 가족들의 걱정과 사랑이 담긴 보살핌을 받은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항상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추운 이 겨울 무사히 넘기길 기원합니다.

며칠이면 나을 줄 알았다

마음을 정착하지 못한 채, 마음 감기가 함께 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글. 구자림

나는 원래 감기에 잘 걸리는 편에 속했다.
어느 정도냐면 친구들에게 “감기”라고 말하면 “요즘엔 괜찮은가 했는데 역시나 또 걸렸냐.”는 말이 돌아올 정도이다. 하지만 늘 잔병치레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어서, 건강에 대한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 감기도 그냥 자연스레 지나가겠거니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고, 매우 크게 다가왔다.
늘 그랬던 것처럼 난 감기에 걸렸고 약을 먹었다. 며칠 후면 나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 당시 나는 여러 가지 일에 겹쳐 심적으로 복잡하던 상태였다.
전문 학사학위만 가졌던 나는 어느 미래에 대학원을 진학할 때 걸림돌을 없게 만들기 위해 학사학위를 받으려고 퇴근 후 야간으로 4학년을 다녔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원으로 바로 진학을 하자니 아직 남아있는 학자금 대출이 있었다. 특히 대학원 학비가 만만치 않다보니 마냥 꿈만 좇다가는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될까 불안한 상태였다. 함께 공부하는 동기는 바로 대학원 진학을 결정한 반면, 나는 아니었기에 혼자 뒤처진 느낌이 들면서 힘들었다.
또,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집-직장-학교가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매우 바쁘게 지내다가, 당시 학교는 졸업을 앞둔 상태이고 직장은 잠시 쉬면서 집에만 있던 터라 답답하고 무기력해져 있었다. 이런 여러 가지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위경련까지 왔고 보름 정도 거의 먹지를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감기에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겹쳐왔다.
그래서 나는 무기력함과 감기를 이겨내려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건강을 챙겼고, 학업에 대한 열등감은 천천히 생각을 하면서 조급함을 떨쳤다. 또한, 쉬어가는 시기라고 생각하며 평소에 일과 학교 때문에 못했던 것들을 조금씩 해보며 여유를 가져보려 노력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감기로 시작했지만 정신적으로나 심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해 마음을 정착하지 못한 채, 마음 감기가 함께 온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일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아직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뭘 해야 행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정답을 찾진 못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 미래의 형태는 아주 조금은 잡힌 것 같다. 그리고 나에게 우울함에 빠지게 한 부정적인 경험이 아닌, 나에 대해 되돌아보고 길의 방향을 잡아준 긍정적인 경험이 되었다.
이로 인해 얻은 것이 있다. 하나는 안 좋은 일이 찾아와도 이 또한 내 인생의 과정일 테니 잘 넘길 수 있는 여유이고, 다른 하나는 나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이다.

결혼철 감기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서
도리어 감사했다.

글. 김준영

한의학에선 감기를 상풍(傷風), 상한(傷寒)이라 부른다고 한다. 인체의 면역력이 약해졌을 때, 바람과 추위와 같은 바깥의 좋지 않은 기운들이 침입하여 발병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기운’이란 감기의 원인이 되는 200종의 다양한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나를 아프게 괴롭히는 모든 것들을 포괄하는 넓은 차원에서의 바이러스라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었다. 흔히 나타나는 발열 증상은 없지만, 몸이 축 늘어지고 기분은 늪에 빠진 것 마냥 계속 밑으로 파고들어 갔다. 몸이 아닌 심리적 통증이 있는 바이러스의 정체는 무엇일까.
최근에 결혼식을 치렀다. 우리의 경우엔 남들하고는 조금은 다르게 시작했다. 내가 이직을 준비하는 동안 “안산에서 문화기획 쪽으로 일을 하면 어떠냐.”는 아내의 권유가 있었다. 서울에서 안산은 꽤 먼 거리였고 출퇴근도 어려웠기에 이참에 안산에 집을 구하면서 혼인신고도 해버렸다. 그렇게 결혼생활과 결혼식 준비가 동시에 진행되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까지 하면서 날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한순간에 뒤바뀌었다. 부모님이나 친한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 있었기에 조금은 외로웠다. 모든 걸 새롭게 다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 다행이라면, 모든 일이 겹쳐 그런 감정을 진득하니 느낄 새도 없이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치는 건 당연했다. 쓸데없는 허례허식을 다 벗기고 최대한 간소하게 진행한다고 생각했는데도 준비할 게 어찌나 많은지. 특히 지인들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전해야 하는지 그 기준이 모호했다. 그래서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최대한 연락을 했고 만났다. 나로 인해 그들 중 누구라도 서운한 마음이 들게 하기 싫었던 마음도 컸다.
대부분의 지인이 나를 축하해줬다. 꼭 온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몇몇은 그날 참석을 못 할 것 같다며 미리 축의금을 주거나, 당일에 갑자기 오지 못한 사람들은 결혼식이 끝나고 내게 연락을 줬다.
하지만 상처를 준 이들도 여럿 있었다. 결혼식 때 오지 않은 친했던 형은 연락도 없다가 내가 물어보자 이제야 생각난 듯 미안하다고 했고, 대학 시절 나를 잘 따르던 동아리 후배는 당일에 못 올 것 같다며 대신 선물을 택배로 보내준다고 말을 하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 한동안 그들과 있었던 추억들과 우정이라는 감정이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돌이켜 보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모두가 나와 같은 마음일 수 없고, 결혼식을 통해 그들의 진짜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뿐이었다. 내가 신경 써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서 도리어 그들에게 감사했다.
일반적으로 성인의 경우 일 년에 2~4회 감기에 걸린다고 한다. 이는 분기별로 1번씩은 걸린다는 셈이다. 어쩌면 인생의 중요한 분기인 결혼식에, 몸과 마음이 힘들어 면역력이 떨어진 내게 찾아온 지독한 감기라고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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