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저녁

글. 김윤진 잠실교당

딸 아이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준비를 했다.
남편은 지방에 내려가 있고, 딸은 연말이다 연초다 하여 그간 나 혼자서 저녁을 먹는 날이 자주 있었다. 딸은 “엄마, 혼자서 저녁을 드셔서 어떻게 해요?”라며 이것저것을 집으로 사 들고 오기도 했다. 그러더니 그저께부터는 바쁜 일이 끝났다며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그런데 딸이 퇴근해서 올 시간이 지났는데도 연락이 없다.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겼나 하여 카톡을 보냈다. 답장이 왔다. ‘ㅎㅎㅎ 엄마 깜빡했어요. 친구랑 저녁 먹고 있어요. 빨리 들어갈게요. 미안…….’
딸의 답장을 받으니 참 황당하다. 겨우 이틀 같이 밥을 먹고는 오늘 또, 그것도 내게 연락도 없이 다른 약속을 잡은 것이다. 약속이 있다고 미리 말한 것도 아니고 벌써 저녁을 먹고 있다고 하다니!
이해가 안 됐다. ‘나는 안중에도 없는 사람인가….’ 괘씸하고 언짢은 생각이 든다. 들어오기만 해봐라…. 그러다 순간, ‘그래 밥이나 먹자.’라며 산란한 마음을 챙긴다.
딸이 친구나 동료와 서로서로 잘 지내면 좋다. 딸이 내게 죄송하다며 애교 뿜뿜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딸아이가 매사 긍정적인 성격으로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일상생활하는 모습 모두를 다 고맙게 생각하자 마음이 편안해진다. 감사합니다.


일상 수행의 요법 제3조

글. 이도중 춘천교당

아내가 봄맞이 집안 정리를 하던 중에 수십 권의 책을 다 들어내 놓았다. 아내는 그것을 모두 버리라고 했다. 나에게는 경계의 발생이었다.
아내는 “이사 온 지 10년 넘도록 한 번도 꺼내는 것을 못 보았고, 앞으로도 볼 것 같지 않다. 공간만 차지하니 내다 버리자.”고 했다. 나의 주견이자 고집은 “읽어 본 것은 한두 번 더 읽을 가치와 내용이 있고, 불교·종교 관련 책은 시간을 내서 정독해 보고 싶고, 아직 못 본 것은 퇴직하면 여유롭게 읽어야지 했던 책들인데 어떻게 버리냐.”는 것이었다.
이 경계에서 마음이 요란해지고 아내의 의견에 상대적인 그름이 일어났다. 소중한 책을 버리는 것이 용납이 안 됐지만 내 생각만 고집하면 다툼이 일어날 것이 분명했다. 이 상황에서 ‘지금 여기 알아차리기’를 했다.
“앞으로 책을 다시 볼 것 같지 않다.”는 아내의 말에 수긍하기 힘들었지만, 그 책들을 볼 시간에 교전을 한 번 더 읽고, 마음공부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아내의 의견을 따르기로 마음을 돌렸다. ⅓은 아파트 폐기물 수집장에, ⅓정도는 교당 북카페에, 시집 등 나머지는 한 번 더 보겠다며 책상 밑에 쌓아놓는 것으로 아내와 합의함으로써 이 경계는 종결되었다.
나의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가족·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상대의 처지에서 경계나 상황을 알아차리고 그에 적합한 결정이나 행동을 하면 일상이 더욱 편안하고 순조롭고 행복할 수 있다.


친구

글. 조청진 둔산교당

오랜만에 SNS에 법명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이렇게 하면 친구들이 나를 못 알아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방 경희에게 예쁜 홍매화 사진과 함께 ‘SNS에서 만나니 반갑네. 우리 건강하게 오래오래 만나자.’라는 메시지가 왔다. 문자를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역시 마음으로 통하는 사람은 알아보는 법. 그리고 친구가 보낸 영상에 색소폰 연주로 흘러나오는 음률이 너무 좋아서 틈이 날 때마다 들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보낸 것을 이렇게 고마워하고 좋아하면서도 흡족한 답신을 보내지 못했다. 아직 터덕거리는 문자 실력 때문이기도 하고 표현력이 낯설어서이다.
경희와 내가 처음 만난 것은 사춘기 소녀 시절 여중 1학년 때다. 문학소녀였던 그 친구는 곧잘 남의 마음을 알아주는 글솜씨로 꿈이 있던 그 시절을 아련히 대변해 주곤 했다. 여전히 그 감성이 남아 있어서 친구는 지금도 포근함을 느끼게 해 주는 재주가 있다. 이 나이에도 육십여 년 전의 친구를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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