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회·의식,
변화의 길을 찾다

● 변화의 주체인가, 대상인가?
    박세훈 | 교무·안암교당
● 기술혁신의 시대,
  법회는 왜 다양해져야 하는가
    여도관 | 강남교당
● 지친 현대인에게 힐링 법회를
    이인성 | 교무·송천교당
● 선별과 재배치로 더 작게, 더 디테일하게
    김도경 | 서울교당
● 다양한 욕구 충족이 가능해야
    곽정원 | 여의도교당


변화의 주체인가, 대상인가?


일반적으로 변화는 크게 세 가지의 경우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첫째는 위기상황입니다. 많은 기업이 위기상황에서 기업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변화와 혁신을 이루어내며 그렇지 못한 기업들은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위기상황에서의 변화는 생존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변화의 요구가 있을 때입니다. 요즘 대부분의 조직과 단체의 구성원들은 변화와 소통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종교도 예외는 아니어서 원불교도 구성원들의 변화와 소통의 요구에 강하게 직면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스스로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입니다. 이는 가장 바람직한 변화라고 생각됩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변화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세 번째는 변화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로나19 감염이 파죽지세로 번지면서 교회의 ‘주일 예배’가 사회적 논란이 되었습니다. ‘신천지’ 집회가 극명하게 보여 주듯, 밀폐된 실내에 다중이 참여하는 종교 행사는 감염 확산의 기폭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종교 행사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커졌고, 정부 당국도 종교계의 자제를 요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천주교와 불교 그리고 원불교는 당분간 모든 미사와 법회를 중지했고 상당수 개신교 교회도 예배를 온라인으로 대체했습니다. 주일 예배 중단이 “하느님 앞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라며 취소에 부정적이다가 막판에 방침을 바꾼 교회도 있었지만, 일부 교회는 현장 예배를 예정대로 강행했습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종교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법회나 예배 등 종교 모임의 근본정신에 대하여 깊게 성찰해 볼 수 있었습니다. 조현철 신부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사회 전체가 위험에 처한 위급한 상황에서 미사나 예배의 취소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나타내는 사회적 차원의 자발적 절제다. 그러니 주일 미사와 예배의 강행이 아닌 취소가 오히려 주일의 기원인 안식일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다.”라며 예배의 근본정신을 망각한 채 외형적 예배에만 치중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교당 구성원들은 법회의 근본정신에 대하여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 근본정신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결국 오프라인 법회와 모임의 취소는 온라인 법회와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촉발시키는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법회와 집회 모임 그리고 종교의식의 다양화를 위해서는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법회와 집회 모임 그리고 종교의식의 ‘근본정신에 대한 성찰’입니다. 근본정신에 충실한 다양화는 시의적절하게 사회와 소통하며 저변을 넓히고 변화의 주체가 되지만, 근본정신을 잃어버린 다양화는 종교적 도그마에 빠지거나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버리며 변화의 대상으로 전락될 가능성이 큽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는 종교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면 그 종교가 변화의 대상이 될지 변화의 주체가 될지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변화의 주체가 되어 법회와 집회 모임 그리고 종교의식의 다양화를 이끌어내는 계기로 삼아야겠습니다. 


기술혁신의 시대,
법회는 왜 다양해져야 하는가


강남교당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부응하여 유튜브 온라인 법회를 준비해왔고, 마침내 지난 2월 26일 첫 유튜브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모바일이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법회가 필요한 이유는 4차 산업 혁명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활동무대를 옮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장을 보러 시장에 가는 대신 온라인 마켓을 찾고, 극장 대신 거실에서 넷플릭스에 접속합니다. 그 중심에는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스마트폰은 단순히 전화를 걸고 정보를 탐색하는 것을 넘어 물품을 거래하고, 유희와 오락을 제공하며, 새로운 관계를 맺는 새로운 감각기관이 됐습니다. 스마트폰은 인류 역사에 유래 없는 인간행동 변화를 가져왔고 그것은 다양한 형태의 문화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지금 아이들이나 학생들의 스마트폰 사용 행태를 보면 앞으로 십 년 후 이십년 후 그들의 일상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한시도 스마트폰을 몸에서 떼지 못하고, 모든 것을 손바닥 안에서 해결합니다. 가까운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은 구도(求道)의 도구가 될 것이 확실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제 법회는 법당을 벗어나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속도와 데이터를 지향하는 혁신시대는 영성수양과 의식절차를 중시하는 종교가에게 커다란 위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뜻밖의 기회도 함께 옵니다. 혁신시대의 성공 키워드는 훌륭한 콘텐츠이기 때문입니다. 원불교 교법만큼 모든 시대와 지역과 문화를 뛰어넘는 위대한 콘텐츠가 있을까요? 수많은 미디어들이 대중을 사로잡을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하고 있지만 모든 연예인이 유재석이 될 수 없고 모든 영화가 기생충이 될 수 없습니다. 원불교의 기회는 바로 교법과 법회라는 콘텐츠에 있습니다.
이제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수많은 채널들이 열렸습니다. 이에 맞춰 원불교도 법회를 다양화하고 시험적인 여러 시도를 통해 킬러 콘텐츠를 만들어야 합니다. 영화법회나 성가법회, 문화법회 같이 교도의 교양을 높이고 교법으로 문화를 해석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해야 하고, 환경·생태법회, 인권법회, 교육·육아법회 등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관심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선법회나 명상법회, 마음수련 법회는 경쟁과 물질적 욕망에 피폐해진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삶의 생수가 되는 원불교만의 킬러 콘텐츠입니다.
석가세존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 하실 때 삼백만 명의 대중이 몰려 야외에 단을 세우고 법회를 열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법회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야외에 단을 쌓듯이 원불교만의 플랫폼을 구축하고 콘텐츠를 개발하여 대중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 법회는 불가피한 상황에서만 대체해야 합니다. 법회는 성스러움을 경험하고 좌선, 독경, 심고를 통해 스스로를 새롭게 닦는 종교의식입니다. 대각전 일원상 아래 모여 정형화된 절차와 방법을 통해 경건함과 엄숙함이 유지되는 상태라야 깊이 있는 종교적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안정되어 많은 도반님들과 일심합일할 진짜(?)법회가 기다려집니다. 


지친 현대인에게
힐링 법회를


코로나19는 종교집회를 성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교당의 핵심 집회인 법회를 5~7주 연속 가정법회로 진행되는 현실에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교화 현장에서의 고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교당을 지켜보며 ‘우리 교단의 미래 교화 핵심 프로그램은 무엇이어야 할까.’를 고민한다. 교단의 법회와 의식 등 집회가 군중을 향해 일방적인 소통을 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깊이 성찰하게 된다.
대중적인 법회와 의식은 위엄과 위로를 느끼게 해줄 수 있지만, 교도가 가정과 직장에서 받는 역경이나 스트레스를 교법에 맞추어 실생활에 풀어 갈 수 있는 현실 대안적인 감정 소통을 위한 만남의 시간을 갖는 활동이 필요하다. ‘교당 내왕시 주의 사항 6’과 ‘교화단 체제’로 그 대안을 제시하지만 얼마나 효율적이고 실용성 있게 운영되는지 살펴볼 만하다. 현실 대안적인 감정 소통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교무들의 적극적이고 전문적인 지원과 해법이 필요하다.
현 사회는 정보 통신의 발달로 내가 원하는 지식과 즐거움이 시공간을 초월한다. 스마트폰 하나로 인류 대성현의 만남에서부터 세계의 석학, 각계 유명인 등 어쩌면 교당 법회 설법 이상의 인생 진리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러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누군가와 만나서 나만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해하고 위로해주는 진정한 소통을 하고 싶어 한다. 정보통신이 아무리 발달한 시대라고 하더라도 나만의 진정한 감정을 읽어주지 못하는 그 한계점은 분명 있는 것이다.
작년 가을에 ‘감사와 행복’을 주제로 토크 법회를 열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니 누구나 일상에서 경험하는 이야기들에 공감은 배가 되었다. 이처럼 정형화된 기존 법회를 벗어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컨대 다양한 명상법회로 요가, 절 수행, 염불선, 좌선을 하고 춤 명상 등과 웃음과 행복이 있는 노래교실법회(송천행복대학)나 가까운 자연 속에서 하는 워킹명상, 경전공부를 통한 마음공부법회와 같은 다양한 문화를 결합한 작은 모임들이 상시로 운영되어야 한다. 이처럼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때와 곳을 가르지 않고 상황에 맞게 수행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더불어 어느 때나 찾아가서 명상이나 기도를 할 수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 제공이 필요하다. ‘우리 교당은 언제 아무 때나 찾아가 기도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이웃 종교의 고해성사라든지, 시간에 제약받지 않고 찾아가 기도할 수 있는 성모상 기도터가 있듯이 내가 힘들 때 아무 때나 쉽게 찾아가 기도하고 명상하며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열린 교당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의 핵심 가치는 정신개벽일 것이다. 정신개벽을 위한 마음공부의 사회화를 위하여 노력하고는 있으나, 어디까지 왔는지 성찰할 때이다. 일반 시민들이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지 않는다면 정신개벽은 요원할 것이다. 지금 시민들은 메인메뉴를 찾고 있다. 그 대안을 마련하여 ‘지친 현대인들에게 힐링을 제공하는 법회’가 되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를 외면할 것이다. 


선별과 재배치로 더 작게,
더 디테일하게


전 세계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역병’을 엄중한 사실(hard facts)로 겪고 있다. 이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 사이에 ‘경계선’이 그어졌음을 몸으로 체감하는 중이다. 즉, 코로나19가 자연파괴와 물질문명의 뼈저린 자각이 요구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위한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되리라 생각한다. 의료를 넘어 정치, 사회, 종교, 경제, 문화, 환경, 교육 등 전 분야에 걸쳐 감염병에 대비한 새로운 틀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집단 감염 확산지가 된 한 종교단체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종교 일반’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학문과 사상, 예술도 진리를 추구하지만, 종교야말로 몸과 마음으로 온전히 진리를 추구해야 하는 분야가 아닐까. 저마다의 종교가 추구하는 종교적 원형과 회심을 지키되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기 변화를 필사적으로 꾀하며 유연하게 대응해야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정보통신의 혁명은 종교를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면대면 접촉이 없이 가르치고 배우며 교류하는 세상을 만들었다. 종교계에서도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수년 전부터 운영하고 있으나 대안적 종교의식으로 수용해왔다. 종교의식은 어느 분야보다 면대면 집회 모임의 지향과 욕구가 강한 분야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종교는 현대사회에서 이미 사회문화의 일부가 됐다. 그렇다면 종교 콘텐츠의 경쟁상대는 더는 이웃 종교가 아닐 수 있다.
장엄과 정례화된 거대한 집단적 모임에서 더 작게 분절되는 소모임들, 즉 다양한 유닛(Unit)의 종교문화 콘텐츠들이 생성되어 평상시는 물론 비상사태 시에 목적에 맞게 큐레이션 된 작은 모임과 종교 콘텐츠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민첩하게 결합하고 상황에 따라 해체하며 필요에 맞게 재구성되어 교도(사용자)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
즉 종교모임에서도 ‘더 많이 확보’하는 것보다 ‘의미 없는 것들을 과감하게 덜어내며 선별과 재배치’하는 큐레이션을 통해 본질에 집중하는 미니멀리즘의 종교로 이동하게 될 거라 생각한다.
원불교는 이웃 종교에 비해 작은 종교라는 콤플렉스가 있는데, 이 세계적인 위기를 통해 오히려 합리적인 생활 종교로서의 미니멀리즘을 통찰적으로 잘 활용할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재난 상황과 사회문화로서의 종교의식에 대한 폭넓은 인식개선 캠페인과 문화 적응이 필요하다. 집회 모임 형태의 종교의식을 기본으로 두되, 스마트 법회와 유지비 송금 문화에 대한 적응 프로세스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일상으로 돌아와도 코로나19로 경험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다독일 수 있는 월·분기별 1회 온라인 법회 또는 단별 소법회, 개인별 법회로 시험 운영해보는 것도 고민을 다각도로 실행해보는 작은 실천이 될 것이다.
역사적으로 그래왔듯이 바이러스는 또 올 것이며 그때마다 우왕좌왕할 수는 없다. 비상시를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일상적으로 가동하면서도 종교인의 역할을 사회적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이번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 


다양한 욕구 충족이
가능해야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일상에 파묻혀 지내다 보니 어느덧 내 나이 40대 후반이 되어 있다. 그 당시 어찌 다행 늦게라도 철이 들어 한동안 뜸하던 법회에 출석하게 되고 인터넷 법문사경을 하며 마음공부를 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교감교무님의 말씀이 새롭게 다가오고 경계를 당할 때마다 마음 돌리는 공부로 조금씩 변화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다.
일요일마다 조용히 법회에 나가 목욕재계하고 마음을 정화하고 한 주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안정과 신앙심이 북돋는다. 무엇을 더 바라는 것도 없다. 누굴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돌아오는 법회가 기다려질 뿐이다. 이제라도 이렇게 참여할 수 있음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내게 있어 법회는 신앙심을 강화시키는 근간이다. 신앙과 수행을 증진시키는 배움의 장이다. 이런 법회가 가까운 미래에는 어쩔 수 없이 변화하게 될 것이다. 미래학자나 공학자가 아니더라도 조금만 관심이 있으면 인공지능(AI)이나 로봇,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이 실생활에 접목되어 인간을 대신하는 시대가 펼쳐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물질이 개벽됨이 너무나 확연한 것이다. 4차 산업은 육체를 대신하는 기술에서 나아가 지능을 대신하게 될 것인데 이런 인공지능(AI) 시대에 종교는 어떻게 존재하게 될까? 4차 산업의 새로운 기술은 인간의 삶뿐만 아니라 종교의 변화도 가속화 할 것인데 말이다.
인공지능(AI)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그에 대한 반감으로 인간성을 추구하는 현상이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 4차 산업 혁명으로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성 회복의 유일한 길은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든지(물질이 개벽되니) 인간본질에서 떠나지 않으려는 노력(정신을 개벽하자)이 필요할 것 같다. 미래에는 종교와 신앙에 대한 욕구도 다양해지고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필요에 따라 신앙을 추구하는 경향 또한 강해질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의 법회는 시공간으로부터의 자유, 여가와 훈련의 접목, 소규모 공동체 단위의 다양한 욕구 충족이 가능한 법회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법회 시간의 다양화를 위해 의식, 교리, 설교, 문답감정, 교도 관리가 가능한 온라인 법회를 실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다.
요즘처럼 코로나19로 인해 법회 휴회 기간이 길어지고 있는 이때에 온라인 법회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모쪼록 이번 코로나 사태가 하루 빨리 진정되어 법회에 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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