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절리에서
‘신들의 선물’을 만나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처얼썩 처얼썩 쏴아악….
어쩌다 가끔, 잔뜩 굶주린 파도가 수백만의 군대를 몰듯 달려와 검은 대리석 기둥에 머리를 박습니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들…. 낱알로 흩어지는 파도의 비명이 시체처럼 뒹굽니다. 으르렁 으르렁, 밤낮을 가리지 않는 바다의 엄포에도 검은 기둥으로 울타리를 친 제단은 한 번도 열린 적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을 ‘신들의 제단’이란 뜻의 지삿개 주상절리(대포동 주상절리)라 불렀죠.
흔히 ‘신은 없다.’고 합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육근의 감각으로 모든 것을 판별하는 인간에게 신은 볼 수 없으니 없고, 만질 수 없으니 없는 것이고, 냄새가 없으니 당연히 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일까요? 거대한 자연의 조화 앞에서 신비로움을 느끼는 순간, 탄성 하듯 신의 이름을 붙입니다. 신들의 제단, 신들의 왕궁, 신들의 정원 등등.
아마 지삿개 주상절리가 그랬던 모양입니다. 거세게 달려드는 바다를 호위무사 삼아 수십만 년 동안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제단을 만들었으니까요. 바닷가 절벽의 정교한 기둥들은 인간들의 흉내를 차단하고, 바다 속으로 이어진 사각과 육각의 기둥은 신들의 신비로움을 느끼게 합니다. 오랜 세월, 신들에게서 버려져 황폐해진 왕궁.

상상의 아궁이에 억지 불을 지핍니다.
그러니까 20만여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출현할 때쯤일 겁니다.
대지는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꿈틀거리고, 동물과 식물들은 풍요를 누렸으나 무언가 굶주려 있었죠. 시간마저 가끔 뒤죽박죽 흘러 세상의 혼란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신들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나 다스릴 것이 없어 무료했습니다.
그런 신들에게 인간의 출현은 꽤나 큰 사건이었습니다.
신의 모습을 쏙 빼닮은 이 생명체는 두 발로 걸을 수 있었고,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머리를 쓸 줄도 알았죠. 더구나 생로병사를 따르는 몸과 희로애락을 누릴 줄 아는 영혼은 오히려 신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신들은 이 생명체가 장차 세상을 지배할 것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단 하나, 신들을 볼 수 있는 눈은 없었죠.

갑자기 신들의 손길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려고요. 신들의 표식이죠. 먼저 대지 깊숙이 불을 피워 펄펄 끓어오르는 용암을 높은 산에서 흘려보냈습니다. 바닷가로 흘러간 검붉은 용암이 절벽을 타고 내리자 신들은 바닷물과 부채질로 거대한 기둥과 틈새를 만들어 신들의 궁전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그 인근에는 바닷가를 산책할 수 있는 신들의 정원을 만들었고요. 갯깍주상절리가 바로 그 곳이죠. 신들이 남긴 증표.
그럼 신은 아직 살아있는 걸까요?

문득, 소태산의 선물을 상상해봅니다.
‘만유가 한 체성이요 만법이 한 근원이로다. 이 가운데 생멸 없는 도와 인과 보응되는 이치가 서로 바탕 하여 한 두렷한 기틀을 지었도다.’
이것은 소태산이 우리에게 준 증표겠죠. 꽃피는 4월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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