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비탈길을 오릅니다.
헐레벌떡~, 숨이 가슴까지 차오를 때쯤 뒤돌아섭니다. 비로소 눈으로 달려드는 풍경들. 저 멀리 예쁘게 꽃단장한 봄 배 한 척 강나루로 들어서네요. 어영차 어영차~, 겨울바다를 건너온 배는 하얀 꽃잎을 한아름 퍼올려 강물에 뿌립니다. 은빛 물비늘을 타고 흐르던 꽃잎이 어느 산언덕에 닿아 환한 매화로 우수수 쏟아집니다. 누구는 설렘 가득 담은 아가씨 웃음이라 하고, 누구는 떠남을 아쉬워하는 새색시 눈물이라고 하네요. 꽃마다 사연은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봄이겠죠.

봄을 실은 나룻배 한 척, 다시 물살을 거슬러 오릅니다. 이젠 좁은 여울도 지나야 하고, 듬성듬성 암초도 조심히 지나야 하는 길이죠. 힘겹게 오른 어느 냇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돌돌돌 물소리 요란한 개울가에서는 종이배처럼 흐느적거립니다. 봄을 실어 나르는 일은 나루도 없는 낯선 산골까지 닿는 일이라 여간 힘든 게 아닌걸요. 그렇게 어느 외진 개울가에서 노란 꽃잎을 도둑처럼 물살에 실어 보냅니다. 그 개울을 따라 산마을에는 노란 산수유가 촛불처럼 켜졌습니다. 덩달아 할머니 할아버지의 까만 주름도 환하게 펴집니다.
“나도 저런 봄이 있었당게. 그땐 먼 바다로 갈 줄 알았제. 그런데 이렇게 흘러 흘러 이런 산골로 거슬러 오를 줄은 몰랐제. 살다 보니 고향이 되았고.”
봄은 늘 고향인가 봅니다.

올봄은 꽃을 실어 나르는 배들마저 당황케 합니다.
겨울의 배반이 이유입니다. 남도부터 강을 타고 북으로 오르던 예년의 봄은 여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찌감치 기온이 오른 서울의 봄이 어느새 남도와 발걸음을 맞추었네요. 성질 급한 상춘객들의 하소연이 꽃망울처럼 터져 나옵니다.
“예년에는 부지런만 떨면 봄꽃을 두 달은 만끽할 수 있었는데…. 이러면 올봄은 너무 훌쩍 가버리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서럽다, 서럽다, 봄이 서럽다 한 모양입니다. 우리 청춘도 이렇게 쉬이 흘러가겠죠. 눈 깜짝할 새 말이죠.
봄을 핑계로, 이리저리 떠돌다 가만 생각을 멈춥니다. 

사는 것에 바빠, 남의 눈치 보느라 나를 돌아볼 시간을 생략했습니다. 아니, 현대인들에게 나란 영혼은 박제된 모습으로만 남아 있는 건 아닐까요? 많은 영혼들이 스마트폰의 지령을 받아 거리를 배회하는 모습처럼 말이죠. “하늘은 보지 마.” “세상은 늘 말썽이야.” “세상의 봄도 허상일 뿐이라고.” “네가 보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다 퍼 날라 줄게. 이 속에는 사계가 다 들어있어.” “나만 믿고, 나만 바라보고 살아.” 우리는 편리를 좇다 어느새 물질의 노예 생활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봄은 물질의 강둑에 막혀 건너지를 못합니다.

다시, 마음 밭에 씨앗을 뿌립니다.
햇살을 담고, 물을 뿌리고, 김을 매고, 토닥토닥 대지처럼 내 마음을 위로합니다. 소태산이 일러준 말씀을 떠올립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새벽이 환히 밝았으니 그만 잠에서 깨어 일할 준비를 해야지.’
지금은, 우리가, 다시,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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