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교무

우리는 24시간 끊임없이 심신을 작용한다. 경계도 매 순간 끊임없이 변화한다. 경계와 만나면, 몸과 마음도 그에 따라 반응한다. 그 경계에 상응하는 감각과 생각이 일어난다. 이때 일어난 마음 현상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자동적 생각과 습관적 행동이 반복된다. 이렇게 반복된 생각과 행동은 이전에 형성된 분별성(고정관념)과 그것을 고집하려는 주착심에 의해 발현되며, 동시에 다시 분별성과 주착심을 강화시킨다.

이렇게 일정한 삶의 패턴이 반복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반성과 자각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면, 우리를 옥죄는 삶의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는다. 매 순간이 공부의 기회가 되려면, 매 순간 일어나는 마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경계를 대할 때, 알아차림이 필요하다. 그 순간 몸의 반응, 그때의 느낌(감각), 그때의 생각과 감정, 심층의 관념과 욕구, 주어진 조건과 상황 등을 알아차린다. 일단 (자동적 생각과 습관적 행동을) 멈추고 (몸과 마음의 느낌, 생각, 감정, 그리고 그때의 경계상황 등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린다. 분별이 나타나기 이전의 ‘원래 마음(본성)’에 경계를 따라 분별이 나타나 ‘일어난 마음(현상)’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것에 대해 시비를 판단하여 어떤 마음을 작용(실행)하기 전에, 그 일어난 마음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수용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든 마음의 현상은 인연을 따라 일시적으로 나타날 뿐이다. 실체가 있지 않고, 그저 경계마다 반응하는 마음의 현상이다. 하지만 그 역시 진리의 작용이다. 그냥 우연히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층에 형성된 분별성과 그에 대한 주착심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 순간은 우리의 심층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알아차림’을 통한 통찰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알아차림은 모든 판단을 일시 중단하고 경계의 순간, 마음 안팎의 모든 현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온전히’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표현이나 기능은 조금씩 달라도 대부분의 마음공부나 명상수행 전통에서는 알아차림을 중시한다. 초기불교의 사띠(sati)나 이를 응용한 심리치료의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 선불교의 공적영지(空寂靈知) 등이 알아차림의 역할을 담당한다. 사띠와 마인드풀니스는 기본적으로 분별 그 자체를 관찰함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개념적 망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한다. 반면 공적영지는 현상을 본성에서 그대로 비추어 봄으로써 우리의 마음이 일시적 현상에 끌려가지 않도록 한다. 숨을 들이쉴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숨을 내쉴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어떤 경계에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일어나면, 요란함·어리석음·그름이 일어남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몸의 감각에서부터 생각, 감정, 나아가 심층의 관념과 집착에 이르기까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그것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한다. 나아가 공적영지의 자성에 비추어 그러한 모든 현상이 ‘실체가 없는 것’임을 여실히 알아차린다.

마음공부는 알아차림으로 시작하여 알아차림으로 끝이 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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