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들의 패기

법당에는 방석과 교전이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이런 광경을 처음 접하다 보니 놀라웠다.

글. 박성근

오랜 공백기를 거치고 법회에 새로운 얼굴이 등장했다. 초등학교 3학년 여자아이 지혜(가명)다. 지혜는 첫 만남부터 공격적인 말투로 나를 긴장시켰다. 내가 더 당황했던 것은 대뜸 나를 ‘교수님’이라 부른 것이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나를 ‘교무님! 교무님!’ 하고 부르는 소리를 얼핏 듣고 교수님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새롭게 등장한 지혜는 으레 컴퓨터를 독점하다시피 했던 태식(가명)이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강력한 경쟁상대가 등장한 것이다. 태식이는 오자마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인사를 하고 곧장 컴퓨터로 향했다. 그리고선 지혜가 틀어놓은 동영상을 끄려고 하자 지혜는 빛의 속도로 달려오더니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했다.
적잖이 당황한 태식이는 지혜를 한참 설득했으나 역시나 무리였다. 태식이는 도저히 안 되겠던지,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바로 나이였다. “너! 몇 학년이야? 너 3학년이지? 난 4학년이야!” 하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나이로도 제압이 되지 않아 결국 태식이는 그날 컴퓨터 주변만 서성거리다 말았다.

이 알 수 없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법회는 시작되었다. 그리고 법회 중간에 감사일기를 기재하는 시간이었다. 지혜는 한참 동안 감사일기를 기재했다. 처음인데도 일기장 한 페이지를 거의 채워가고 있었다. 내가 “얘들아~ 오늘 새로 온 지혜의 감사내용이 이 정도입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라고 하자 태식이는 “신입은 원래 처음에는 이렇게 써요~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저처럼 됩니다!”라고 자조적인 말투로 말했다. 태식이의 일기장을 보니 간신히 두 문장을 써놓고 빈공간은 그림으로 채워놓았다. 이렇게 한 주가 흘렀다.
다음 법회 날이었다. 법회를 준비하기 위해 청소년 법당에 들어서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법당에는 방석과 교전이 가지런히 깔려 있었다. 지혜가 지난주 법회 모습을 보고 미리 세팅해 놓은 것이다. 이런 광경을 처음 접하다 보니 놀라웠다. ‘세상에나, 이런 게 가능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혜는 이런 감동을 주는 반면, 질문에도 거침이 없었다. 법회 시작 전, 죽비를 보면서 “교무님 이게 뭐예요?”라고 물어보고선 잠시 후 스스로 “매 아니에요? 태권도 학원에서 비슷한 거 봤는데!”라고 답을 했다. 죽비를 한참 설명하고 법회를 시작하려는데, 또 질문을 했다. “교무님, 근데 여친 있어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그 질문은 안 하는 게 좋아~.”라는 말과 함께 아이들이 날 위로하는 시늉을 했다.

법회 시작 전부터 마음이 너덜너덜해졌다. 법회를 마치고도 지혜의 장난은 계속되었다. 내 다리를 잡고 늘어졌다. 몸이 휘청휘청했다. 그러자 신입 기간(?)이 훨씬 지난 한 아이가 그 모습을 보더니 한마디 거들었다. “지혜야! 교무님은 이제 나이가 있어서 네가 그렇게 무리하게 매달리면 교무님 무릎 나간다. 나이 들수록 뼈가 약해져~.” 그 말을 듣는데 헛웃음만 나왔다.
신입은 한 달 후에 7살 남동생을 법회에 데려왔다. 첫 만남에서 7살 남동생은 경종에 들어가 5분째 나오지 않았다. 아주 제대로 된 신입들이 들어왔다.

저작권자 © 월간원광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