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원불교를 넘어서

글. 엄익호

“원불교를 알게 된 지는 3년째, 원불교에 입교한 지는 1년째, 원불교에서 일하게 된 지는 6개월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원불교와 나의 관계를 궁금해 할 때 내가 늘 표현하는 구절이다. 처음에는 원불교와의 인연이 짧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짧으면 짧을수록 내가 원불교에서 겪는 경험들이 극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원불교를 알게 된 뒤의 나의 삶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2016년도에 원불교 한민족한삶운동본부에서 주관했던 프로그램에 우연히 참가하게 된 것이 그 인연의 시작이었다. 남북 출신 청년들이 함께 제주도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원불교와 탈북자에 대한 편견이 없었던 게 행운이었다. 그 프로그램 덕분에 통일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경험으로 대학생활 후반기를 정말 알차게 채울 수 있었고, 원불교와 법연이 맺어져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다.
철학이 전공인 학생으로서 늘 모든 것에 회의적이었기 때문에 종교를 믿는게 내키지 않았다. 힘든 시절 정신과도 가보고 심리상담도 받아봤지만, 마음이 회복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었다. 그러나 원불교 법을 통해 그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건강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교당을 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법연이 이어져 과거에 참가했던 프로그램의 실무자로 일할 수 있는 기회도 얻게 되었다. 올해 4월부터 원불교소태산기념관에서 근무를 하게 된 배경이다. 또한 짧은 시간동안 대학선방, 청년훈련, 교정원 프로그램 참여 등 원불교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받았다. 특히 내 또래의 도반들을 많이 알게 된 것이 좋았다.
그러나 늘 좋은 일만 일어날 수는 없는 법. 원불교에서 일을 하고 여러 사업들과 행사들에 참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법 자체와는 멀어지게 되었다. 교당을 다니는 것도 소홀해졌다. 나는 점점 힘들어하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법당에서 일원상을 마주 보았는데 망치로 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을 받았다. 일원상은 ‘진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알려주며 저렇게 눈부시게 빛나고 있는데, 나는 온갖 두려움과 후회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원상이라는 진리의 심상을 보자마자 ‘아 내가 원불교를 제대로 믿지 않고 있구나.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하는 거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원불교 이야기로 나를 소개하는 걸 즐겼다. 원불교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내가 원불교에 대해 아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원불교’라는 패션을 즐겼을 뿐이었다. 지금 나는 패션 원불교를 넘어서는 중이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기 때문이다. 다음에 누가 나에게 원불교에 대해 묻는다면, 긴말 필요 없이 행복한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설명하고 싶다.


행복으로 하나 된 우리

글. 류길성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해외에 갈 수 있어.”
이 한마디에 가볍게 생각하고 신청서를 작성했다. 당시 나는 ‘봉공’이라는 단어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고 ‘해외’라는 두 글자에 혹했다. 그 후 발대식에서 처음으로 함께 봉공할 식구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날 ‘인류는 한 가족 세상은 한 일터’라는 우리 봉공의 목적을 보게 되었다. 처음 본 친구들의 얼굴에는 진지함이 묻어났다. 그와 함께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발대식 이후 각 팀별로 매주 모임을 했다. 세 개의 프로그램과 장기자랑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팀장의 리더십과 해외봉공을 경험해본 친구들의 노하우, 그리고 다른 팀원들의 적극적 참여로 프로그램은 무탈하게 완성되었다. 매회 팀원들은 힘찼고 적극적이었다. 그 모습에서 그들의 봉공에 대한 태도를 배울 수 있었다. 열심히 하는 그들에게 감사했다. 차차 우리들의 손으로 프로그램이 하나씩 완성되어가자 애정 또한 늘어갔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을 완벽히 마무리하겠다는 책임감도 가지게 됐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캄보디아에 도착하였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해맑고 한없이 감사해하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고,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를 기준삼아 마음대로 이들을 평가한 것은 아닐까? 이곳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데, 내가 혼자 생각하고 연민의 눈으로 본 것은 아닐까? 그들이 가난해서 불쌍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된 나의 선입견에 비롯된 그릇된 판단이 아닐까?’ 이후부터 봉공에 대한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나는 봉공을 하는 사람이고 캄보디아 친구들은 봉공을 받는 입장이지만 무조건적으로 내가 나눔만을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았다. 이 친구들은 이 친구들만의 생활이 있었고 그 속에서 충분한 행복을 느꼈으며, 나 역시 이들의 삶 속에서 배움을 얻었다. 그동안에는 일방적인 나눔을 베풀었다면 쌍방향으로 나눔과 배움을 모두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자 단순하게 ‘봉사자’와 ‘봉공을 받는 자’가 아닌 한 명의 친구로 생각하게 되면서 그 속에 자연스레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행복을 배울 수 있었다.
캄보디아에서 배우고 느낀 ‘행복’은 마치 5시간 비행 속에서 꾸었던 꿈같다. 이 꿈은 퍼즐처럼 흩어져 잔상으로 흐릿해지겠지만 이때 느낀 행복만큼은 평생 뚜렷하게 남겨두고 싶다. 이 행복을 우리 캄보디아 친구들도 고스란히 느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행복을 다시 누군가에게 나눠주기를, 나 또한 이 행복을 또 다른 이에게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행복으로 하나 된 우리 그리고 그 행복을 나누는 일을 할 우리, 결국 우리는 하나이며 이 세상은 행복으로 가득할 하나의 일터다!


작은 용기로 달라진 나

글. 하태민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2019년 시작은 나에게 상당한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일적으로도 정체기가 오고, 가족들이 아프고, 개인적 힘듦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 자신이 쇠약해져 가는 것을 느꼈다. 어느샌가 비정상적으로 먹고 있고,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모든 일에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나와 다른 타인이 발견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친구들은 그 당시 나를 회상하면 ‘곧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어렵게 건넨 한 마디. “정신과 상담을 받아보는 게 어때?” 정신과라는 단어 자체가 나에게 주는 두려움과 압박은 엄청났다. 그래도 ‘지금 바닥까지 떨어진 내 상황보다는 낫겠지 뭐.’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용기를 내 병원 앞에 도착했지만, 아직 두려움과 압박이 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병원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너무나도 평범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와 실제는 달랐다.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 무언가 마음의 안정이 생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하신 한 말씀이 내 머리에 꽂히듯이 들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 지금 힘들어 죽겠다.’고 말하고 다니세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처음에는 두렵겠지만 말함과 동시에 그 짐이 줄어들 겁니다.”
나는 원래 타인에게 부탁하거나 고민을 잘 말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힘든 일이 있어도 나 혼자 끙끙 앓고 혼자 삭히는 편이기에 저 말이 더욱더 와닿지 않았나 싶다. 그 이야기를 듣고 용기를 내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내 상황을 말했다. 그러자 내 걱정과는 다르게 나를 위한 안부 전화와, 진심 어린 상담 등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라는 속담처럼, 내가 가진 짐을 혼자 들어야만 하는 줄 알았던 내가 이번 기회로 그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느꼈다. 점점 생각을 바꾸고 치료를 받으면서 나 자신이 봐도 긍정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완치된 것은 아니고, 아직 다른 이에게 내 고민과 힘듦을 다 털어놓지는 못하지만, 작은 용기를 낸 결과로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다. 끙끙 앓던 나에서 앓는 사람과 힘든 이에게 손을 빌려줄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나 자신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사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 세상을 살면서 자력으로서만 살아가는 건 불가능하다고. 자력과 타력, 두 힘이 합쳐져야 ‘잘살고 있구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글. 김은진

아침 기도를 마치고, 텔레비전을 켜니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이 방영 중이다.
내용인즉 ‘동행’이다. 부부간의 동행, 형제간의 동행, 도반 간의 동행 등 세상 살아가는 동안 동행 대상은 많다. 동행은 무엇으로 이루어질까? 사랑으로 이루어질까?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바람이 아니고, 늙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한다. 나도 이제는 회향을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입을 꽉 다물고 실눈을 살며시 감아도 세월은 잰걸음으로 흘러가 버렸다. 그런 나는 가끔 제3의 세상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벌써 내 나이 75세다. <대종경> 천도품 1장에서 ‘나이가 사십이 넘으면 죽어 가는 보따리를 챙기기 시작하여야 한다’고 하셨듯이, 내가 인연 따라 행복하게 태어났지만 뜬구름 바람같이 세월은 흘러 버렸으니 내 흔적을 어떻게 남길까!
하루가 저무는 저녁 무렵에도 아침처럼, 봄처럼,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마음의 자세로 살아왔다.
오늘 이 글을 쓰다 보니 갑자기 범산 이공전 종사님께서 “기도하는 마음과 실천하는 행동이 합하여 진리가 탄생한다.”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참새마저 무시하는 허수아비가 되어 진리라는 것은 잡아보지 못했는데, 세월이 너무 빠른 것일까?
말만 들어도 반가운 우리 교도님들. 이제 모두가, 또 나부터 나이가 들어 대각전으로 향하는 2층 계단 오르기를 힘들어하다 보니, 생각해 낸 것이 ‘엘리베이터’다. 벌써 몇 번째 회의하고 있다.
‘교도 여러분! 투우장의 황소가 결전을 앞두고 잠시 쉴 수 있는 ‘케렌사아’가 있듯이 마지막 힘을 쏟아 우리 인생에 편안한 길이 되게끔 우리가 잠시 쉬어가는 우리 교당을 살립시다. 목탁 소리와 향 내음이 멀리멀리 퍼져 온종일 마음 편안하도록 우리 모두 100일 기도에 동참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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