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난 마음’

글. 장진영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HK교수·교무

‘원래 마음(본성)’에서 ‘경계’에 반응하여 나타난 마음을 ‘일어난 마음’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어떤 조건이 주어지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연기설(緣起說)을 말하는데, 조건 발생이라는 이 법칙은 우리의 마음작용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마음작용은 인식능력(을 갖춘 기관)[根]과 인식대상[境], 그리고 이전 찰나의 인식결과[識]가 함께 만나는 ‘접촉(接觸)’에 의해 이루어진다. 접촉에는 동시에 일어나는 마음작용과 따라서 일어나는 마음작용 등이 있는데, 지면 관계상 감각(느낌), 생각, 감정을 간략히 살펴보고자 한다.

인식과정을 언급할 때, 불교 전통에서는 흔히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을 말한다. 근(根, indriya)은 산스크리트어로 ‘인드라(indra)에 상응하는’ 혹은 ‘인드라에 속한’을 뜻하며, 뛰어난 작용력(增上力)을 갖춘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인식의 능력을 갖춘 기관을 ‘근’으로 번역하였다. 반면에 경(境, viaya)은 세력이 미치는 범위, 즉 세력권을 뜻하는 말로서 인식작용의 대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색경(色境)은 안근(眼根)의 세력이 미치는 범위(혹은 인식대상)를 말한다. 육근은 태중에서 이미 형성된다. 육근이 형성되었다는 것은 아이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육근을 통해 인간에게 여섯 가지 기본 욕구가 있으며, 세상에는 여섯 가지 향유(享有, 누리고 가짐) 방식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육근 중 오근(다섯 가지 인식기관)은 감각(感受) 작용을 하는데, 이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작용이다. 보고 싶은 욕구가 시각을, 듣고 싶은 욕구가 청각을, 향을 맡고 맛보고 싶은 욕구가 후각과 미각을, 그리고 만지고 싶은 욕구가 촉각을 발전시켰다.

어떤 동물은 시각을, 어떤 동물은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등을 각각 발전시키며, 그것을 통해 나름 세상을 파악하여 왔다. 파악된 경험정보를 본능적으로 생존전략에 활용해왔다. 한편 감각(느낌)은 좋거나(유쾌), 좋지 않거나(불쾌), 혹은 중립적 느낌으로 나뉠 수 있는데, 이러한 감각은 있는 그대로 수용되지만, 이는 관념의 틀에 의해 강화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대체로 좋은 느낌은 가까이하고 싶은 욕구를 부르고, 좋지 않은 느낌은 멀리하고 싶은 욕구로 이어진다.

생각은 기본적으로 이미지를 의식의 표면에 떠올리는 작용(표상작용)을 한다. 이는 이전에 저장되었던 경험정보들이 경계와의 접촉에 의해 표면에 떠오른 것이다. 저장되었던 기억정보는 감각기관을 통한 경험정보뿐만 아니라 유전, 학습, 전승 등을 통해 강화되고 왜곡되면서 복잡다단한 관념의 틀(분별성)을 형성하게 된다.

감정의 경우는 쉽게 정의내리기 어렵지만, 대체로 경험된 감각이나 관념화된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이해된다. 만약 욕구와 그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아마도 감정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감정에도 수동적으로 ‘일어난’ 감정과 능동적으로 ‘일으킨’ 감정을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 새로 산 신발을 밟고 지나갈 때, 그때의 발에 닿는 통증은 불쾌감을 줄 수 있고 그와 관련된 안 좋은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면, 화가 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앞서 감각과 생각처럼 경계와의 접촉으로 일어난 감정 역시 하나의 ‘분별’일 뿐이다. 그 역시 하나의 진리 작용일 뿐이다. 그러한 마음작용은 어떤 괴로움이나 일시적 즐거움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다만 경계를 따라 일시적으로 일어난 현상이란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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