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교무
결혼허용의
나비효과

 글. 노태형 편집인

여성교무들의 결혼허용 문제가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물론 이는 교무의 삶을 선택한 여성 교역자들이 대학 입학 과정에서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했던 ‘정녀지원서’ 폐지의 확대 해석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난 7월9일 임시 수위단회에서 ‘정남정녀규정 개정’이 승인되고, 이에 따라 ‘정녀 지원을 스스로의 발원에 의해 한다는 것은 여성 교역자의 결혼을 허용한다는 뜻’이 되기에 의견을 수합해 달라는 담당 부서장의 게시문에는 향후 교단 변화의 불가피한 고뇌가 담겨있다.

지금이야 결혼을 한 남자교무들이 일선 교당에 다수 분포되어 교화에 전력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남자교무들의 교화현장 근무는 꽤 드문 사례에 속했다. 특히 가정을 보살펴야 하는 남자교무들의 현실을 들춰 ‘반무출신(반쪽짜리 전무출신)’이라며 비아냥거리는 목소리가 쏟아지기도 했다. 특히 결혼한 남자교무를 터부시한 일부 교도들의 반대로 교당발령이 보류되는 사례도 심심찮게 벌어졌으니, 어찌 보면 지난 30년간 남자교무상은 격세지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적으로 ‘비혼’이 점점 증가하는 추세다. 젊은 세대들에게 이제 결혼은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고 있다. 더구나 여성의 경우, 애초 결혼을 목적한다면 전무출신의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에 여성 교무의 결혼허용 이슈가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 될 ‘교단 혁신’의 나비효과를 어떻게 불러일으킬지 자못 기대된다.

지금 교단이 맞닥뜨리고 있는 여성교무의 결혼허용 현실화는 어찌 보면 ‘새로운 교무상’으로 변환의 서곡일 수 있다. 과거 순결함과 고고함이 곧 성스러움으로 대변되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이다. 개인의 삶이 중요해지면서 무조건적 희생은 학대로 치부되는 시대이기도 하다. 근거가 불분명한 관습과 권위는 더 이상 구성원들의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 지금 세태다. 앞으로 시대의 교무는 청빈을 가장해 궁색해 하고, 온갖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늘어놓아서도 안 될 것이다. 이것들은 한갓 종교인들의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런 변화가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교무상’을 정립하는 계기로 이어진다면 보편타당한 종교를 지향하는 원불교의 새로운 100년은 더욱 희망찰 것이다. 혁신은 늘 마음을 설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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