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색,
100가지의 이야기

김영금 침선공예 명인

취재. 김아영 기자

“살면서 얘(조각보)에 대한 생각을 가장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같이 이야기도 하고 여행도 하지요.” 색색의 고운 천이 가득한 작업실 안. 김영금 명인(침선공예부문)이 조심스레 조각보를 바느질한다. 그 모습이 아이를 품은 엄마와도 같은데…. 역시나 그의 조각보는 엄마에게 듬뿍 사랑 받은 아이처럼 화사하고 정갈하다.
“저는 운이 참 좋아요. 이런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있으니까요.” 바느질을 시작하게 된 것부터 잇따라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 명인이 되기까지 모두가 감사할 일투성이라는 그. 운이 좋았다고도 말하는 그이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얼마나 치열하게 작품을 완성하는지 알게 된다. 그는 “바느질을 할 때는 절대 타협을 안 한다.”고 말한다.

“한 작품 당 거의 1년이 걸려요. 바느질이 잘못되면 다 뜯어서 새롭게 하지요. 다른 사람 눈에는 안 보여도 내 눈에는 계속 보이거든요.” 200×200cm 크기의 작품 안에 들어가는 조각만 4000여 개, 색상만 해도 100여 개가 들어간다. 작은 조각을 이어 10×10cm를 만들고 그걸 다시 잇는 작업이 1년. 바느질 땀을 옆으로 1mm, 깊이 1mm로 하는 그만의 규칙 때문이다. 또 작품에 들어가기 전, 조화롭게 어울릴 100가지 색의 천을 고르고, 뒷감과 실까지 세팅해 놓아야 하는데…. 더디지만, 완벽한 작품을 만들기 위한 그만의 고집이다.
“조각보 선생님을 찾아가서 다른 사람들 10년 할 것을 2년 동안 다 만들었지요. 나도 모르게 그냥 좋았어요. 밤도 낮도 없었어요.”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어깨가 망가져 수술을 했을 정도였다. 목 디스크가 걸려 재활만도 1년이 걸렸다. 하지만 바느질을 하면서 채워지는 것에 비하면 충분히 참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단다. 작업에서 만큼은 타협이 없는 그의 작품은 곧 여러 곳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첫 상을 받은 ‘아름다운 바람’이라는 작품이에요. 연꽃 뿌리의 괴불을 천으로 만든 거지요. 지니고 있으면 나쁜 기운이 없어진다고 해서 아기들이 태어나면 삼색으로 만들어 달아줬지요.” 108개를 엮어 천장에 달아놓은 작품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작품에 달린 장식 술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기성품을 쓰지 않고 원단을 한 줄씩 풀어 묶어 술을 만들어 단 것이다. “힘들고 더디지만, 원단을 풀어서 만들면 시간이 흐르면서 실이 꽃처럼 피어요. 유물을 보면 이렇게 다 피어있지요.”란 그의 말이 돌아온다.

“저는 이런 작은 디테일이 좋아요. 작가마다 작품의 특징이 있는데, 이런 디테일이 저를 나타내는 특징이에요. 또 조각보의 앞감과 뒷감이 벌어지는 것이 싫어서 사이사이를 색실로 예쁘게 바느질 해요. 이런 장식과 작품마다 조그맣게 들어가는 색동조각이 특징이지요.” 장식 하나, 작은 모양 하나에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는 그. 조각보에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어 바느질을 하다 보면 푹 빠져들게 되기 때문이란다. “보자기 끝에 하트모양의 장식이 있어요. 연기장식이라 하는데, 세상 구경을 못했던 옛 여인들이 연기처럼 날아 세상 구경을 하고 싶다는 뜻이 담겼지요.” 그 이야기를 따라, 조각보와 대화하다 보면 작품을 만드는 1년여의 기간은 느리지만 행복한 여행이 된단다.

“얼마 전에는 새로운 시도를 해 보았어요. 사선 모양으로 조각을 잘라 잇고, 크기도 크게 해 조각보 유물을 재현했어요. 조그만 사각형 모양을 선호하는 저의  규칙을 벗어난 거죠. 다른 듯한 것들이 어우러져 예쁘더라고요.” 또 천연염색을 직접 배우기 시작했는데…. 똑같은 원단, 염료라도 맑은 날, 흐린 날에 따라 새롭게 입혀지는 색을 한데 모아 조각보를 만들 계획이다.    
“다른 욕심은 없어요. 얘랑 같이 이야기하고 같이 여행 하는 거죠. 지금처럼, 오늘처럼, 오늘 이 마음처럼요. 이 아이들을 안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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