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은
나의 앎을
제대로 소화시킨다

윤종모 대한성공회 주교

취재. 장지해 편집장

신학생 시절부터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다 영성상담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 피정 수녀원에 머물 때, 우연히 건물의 북쪽 끝에서 ‘메디테이션 룸(Meditation Room)’을 발견했다. 두서너 평 되는 좁은 공간의 한쪽 통유리 벽면 너머로 흰 눈이 쌓인 풍경은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한 시간, 그 다음에는 두 시간, 그러다가 여섯 시간….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깊은 체험을 했다. 그동안에도 해왔던 10분, 30분 명상으로는 느끼지 못했던 깊이였다. 고요한 즐거움, 마음의 평화, 여유로움을 제대로 느끼고 나니 본격적으로 명상을 즐기게 됐다. 윤종모 대한성공회 주교가 “먹어본 사람만이 사과의 맛을 알 듯, 명상 역시 실제로 하면서 즐겨야 제 맛을 알 수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흔히 ‘명상’이라고 하면 동양적(또는 불교적)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이들에게, 윤 주교는 “예수님도 뛰어난 명상가.”라는 말로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그리고 그는 영성을 성장하게 하는 아주 좋은 도구로써,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오늘의 나, 오늘보다 조금은 더 나은 내일의 나’를 만드는 비법으로써, 명상을 추천한다.

● 기독교의 한 교단인 성공회 주교가 명상을 이야기 하는 게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데요. “알고 보면 기독교에도 명상 전통이 있어요. 영성수련이라는 말이나 관상기도라는 말도 다 명상의 다른 표현이죠.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읽던 방법을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라고 하는데, 하나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관상하는 모든 과정이 알고 보면 명상과 다르지 않아요. 기독교인들이 묵상은 귀하게 여기면서 명상은 우리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죠. 사실은 단어에 얽매일 필요가 없는데요.”

대한성공회 관구장과 부산교구장을 역임한 그는 올해로 은퇴한 지 8년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치유명상 전문가이자 심리상담가로 활동하고 있다. 명상을 한다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지는 않지만, 꾸준히 명상을 하면 삶의 태도가 확실히 달라짐을 확신하는 그다.

● 명상이 쉬운 것 같은데, 막상 하려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명상을 하면, 어떤 사람을 챙겨주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나와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도, 부처님도 모두 훌륭한 명상가죠. 심리학에서 흔히 ‘영성이 성장하면 치유는 저절로 따라온다.’고 하는데, 영성수련, 마음공부 등이 모두 영성을 성장시키는 표현이에요. 이게 다 명상이죠.”

윤 주교는 명상을 처음 시작하는 이들에게 명상에 대한 이해·호흡법·집중하는 방법 등을 먼저 개괄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권한다. 하지만 기본 개념과 방법을 익힌 후에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음악 듣는 걸 좋아하는 사람은 음악과 자신이 하나로 느끼는 것으로 자신만의 명상 스타일을 삼을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짜장면을 만들며 ‘한 그릇을 팔면 천 원, 두 그릇을 팔면 이천원….’을 계산하는 건 영성과 관계가 없지만, ‘누군가 이 짜장면을 먹고 행복하고 즐겁고 영양을 잘 채워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 목적을 가지고 짜장면을 만든다.’고 하면 이것 역시 영성이 담긴 일이자 명상이 된다고 말한다. 설거지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 찌꺼기를 씻어 내면서 내 마음 속의 부정적인 것과 우울한 것들도 함께 씻겨나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설거지를 하면 그것도 곧 영성이자 명상이다. 일상의 모든 생활을 넓게 놓고 보면 다 영성이자, 명상 아님이 없다는 것.

● 은퇴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
“제가 뭔가를 열심히 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꾸준히 하는 것을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또 성격이, 어려운 부탁은 못하지만 가벼운 부탁은 좀 하는 편이죠. 연세대 상담코칭아카데미에서 고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코스가 있었는데, 그것도 제가 강의를 하면 좋겠다고 먼저 요청을 해서 강의하기 시작했어요. 일이라는 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되지 않고, 해보기로 마음먹고 하고자 하면 다 돼요. 해보려고 하는 의지와 생각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요한복음의 구절이나, ‘텅 빈 가운데 가득 있음’을 뜻하는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에도 모두 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고 말하는 그. ‘앞으로의 시대에서는 창의성을 가진 사람들이 주도한다.’라는 말에서의 창의는 곧 상상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내는 상상이 곧 의지와 통한다고 본다. 그래서 윤 주교는 젊은 세대들에게 ‘나는 창의성이 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기를 당부한다. 그의 삶의 모토 역시 ‘뭔가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 최선을 다 해서 하되, 집착하지는 말자.’이다.

● 종교가 위기인 시대라고 합니다.
“종교마다 가지고 있는 각자의 전통과 자기 정체성을 버릴 순 없어요. 하지만 자기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반적이고 영성적인 뭔가가 있어야 해요. 문학을 말하는 자리에서는 문학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이웃 종교에 대해서 이야기할 땐 그러한 가르침과 지혜를 얻을 수도 있어야 하고, 영성심리학도 필요하다면 배워야죠. 성직자들이야 말로 포용적이고 개방된 마음으로 그것들을 우리 삶속에 끌어들여서 치유·성장과 연결시키고, 우리 삶의 목표를 발견해낼 줄 알아야 합니다.”

● 에큐메니컬 운동(교회일치 운동)에도 적극적이셨던 것 같은데요.
“성공회의 큰 특징 중 하나가 포용성이에요. 개신교 같기도 하고 가톨릭 같기도 해서 브리지 처치(bridge church)라고도 하죠. 성공회 교회는 미사 중심, 사회 운동 중심, 말씀 중심이 섞여 있어요. 하지만 각자의 신앙 경험과 스타일을 존중해요. 성공회에서 말하는 교회일치는 ‘다르지만, 그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한다.’예요. 조금 더 나가면, 기독교 외의 다른 종교 가르침도 존중해야 한다고 얘기해요.”

같은 교단 내에서도 ‘이단이다.’라고 쉽게 말하지 않고, 이웃 종교와도 최대한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러다보니 ‘종교 다원화 교회 아니냐.’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성공회만의 색깔은 분명히 존재한다.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계곡을 통해 갈 수도, 암벽을 타고 갈 수도 있다고 보는 것. 이러한 정서가 원불교와 가장 비슷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 가깝게 지내는 원불교 교무도 여럿이다.
그가 부산교구장이던 2010년에는 부산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회’가 열리기도 했다. 천주교, 개신교, 성공회, 정교회 등 부산 그리스도교인들의 일치를 위한 시도였던 것. 여기에는 그리스도교 내에 한정되지 않는, ‘여러 종교를 아우르는 종교화합’의 의미가 담겼다.

● 탈종교화 현상은 가속화되는데, 오히려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과거에 종교를 위대하게 봤던 것은, 결국 영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옛날에는 영성이 곧 종교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영성과 종교를 구분하려는 움직임이 많아지고 있죠. 요즘 세계적으로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 나는 영성적이지만 종교적이지는 않다) 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옛날에는 영성적인 부분 때문에라도 종교를 모두 감당하며 갔지만, 이제는 다른 요소들은 제외하고 영성적인 측면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거죠.”

● 사실, 종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역할이 ‘영성’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래서 더욱, 종교가 영성을 회복해야 해요. 살아가기 위해 먹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직업도 가져야 하지만, 사실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어느 순간 실존적 허무감, 또는 존재에 대한 허무감을 느껴요. 좀 더 궁극적인 존재에 대한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어 하죠. 그럴 때 종교가 영적인 차원으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해요. 자신들의 편리함을 위해 교리나 율법 위주로 강조하면 반드시 한계가 있어요.”

실제로 여러 심리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에게 ‘치유에는 기독교 상담가가 가장 최적의 입장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는 윤 주교. 정서장애는 일반 상담가나 심리치료사가, 정서장애보다 조금 더 심한 단계인 정신장애는 정신과 의사가 다룰 수 있지만, 그보다 훨씬 높고 깊은 차원의 영성장애는 결국 종교인만이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조금 전까지 함께 식사를 하고 헤어진 아내와 자녀를 잃은 사람에게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면, 의사는 죽음에 대한 사전적 또는 의료적 정의는 해 줄 수 있다. 하지만 그 마음의 깊은 상실감과 아픔은 높은 차원을 통해 승화시켜야만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종교인(성직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네요.
“성직자가 모든 치유를 완벽하게 해줄 수는 없어요. 다만, 하나님께 바르게 인도를 해줄 순 있죠. 종교들 나름의 가르침을 따라 깨달음이나 마음공부의 길로 바르게 인도해 줘야 해요. 저 너머의 존재를 잊고 성직자 자신에게 치유와 해결의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 타락하기가 쉽죠. 수녀님이든 교무님이든 목사님이든, 그래서 더욱 명상이 필요해요. 명상을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도,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도 있어요.”

●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행복하려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불평·불만이 있을 때 그 번뇌를 명상을 통해 깨달으면 감사할 일이 많은 걸 알게 돼요. 제가 척추에 이상이 생겨서 잘 걷지를 못하는데, 처음에는 엄청 불편했어요. 그런데 아예 걷지 못하는 게 아닌 것에 감사하게 되더라고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라는 말이 정말 맞아요. 이런 말을 진짜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통로가 명상이에요. 명상은 내가 배운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진짜 내 것으로 소화시켜줘요. 감사하는 마음을 품으세요.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기 위한 가장 좋은 도구로, 명상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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