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친 머리카락 다듬어
마음까지 가볍게~

새해를 시작하는 마음, 이발소

취재. 이현경

이제는 탄가루가 아닌 검은 머리카락만이 날린다.
탄광촌이 자리한 강원도 태백시. 아침 7시경 붉은 태양이 능선을 비춘다. 최준범 이발사가 일과를 시작하는 때다. 출근이라고 해도 집과 이어진 건물 내 이동으로 가능하기에 가게 앞 주차장에 그의 자가용이 한가롭다. 다만 그는 50여 년간 이곳을 지키며 60여 년 넘는 이발 기술 발휘에 바쁘다.
‘드르륵’ 소리도 안 날 만큼 금세 미닫이문이 열리며 종소리가 울린다. 이곳을 두 번째 방문하는 손님부터 3·4·50년 된 단골까지 다양한 손님들이 등장한다. 그 익숙한 이웃들은 자연스레 겉옷을 옷걸이에 걸더니 이발 의자에 앉는다. 최 이발사 또한 어떤 의례적 인사가 아닌, 취미·지역 소식으로 마치 이들과 잠시 끊었던 이야기를 잇듯 대화를 시작한다.
그 사이 손님에게 큰 천이 둘리고, 그들의 머리카락이 빗질에 따라 가지런히 정돈된다. 사람마다 모발과 두피 상태가 다르기에, 이발 방법도 조금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최 이발사는 어떤 이에게는 먼저 이발기로 목의 잔털을 밀더니, 또 다른 이에게는 왼손엔 빗, 오른손엔 가위를 쥐고 쉴 새 없이 머리숱을 쳐내는 가위질에 여념이 없다.
손님의 머리카락은 빗에 의해 일으켜지다가 잘려 나가고 다시 제 자리에 눕기를 반복한다. 고요한 쇳소리로 울리는 가위질만이 반복되는 순간이다. 그 사이 주위에는 검은 머리카락이 쌓이고, 그럴수록 손님의 얼굴은 훨씬 밝은 빛을 찾는다. 여기에 최 이발사가 간간이 얹어주는 재미있는 농담은 그만의 영업 노하우다.
처음 오는 손님도 예외는 없다. 최 이발사가 “선생님은 어디 계십니까?” “요즘 무슨 일을 하십니까?” “전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와 같이 간단한 물음을 손님에게 건넨다. 그러자 손님이 몇 번 대답을 하다가는 이내 그에게 묻는다. “춘추가 어떻게 돼요?” 최 이발사가 “금년에 아홉입니다~.”라고 말을 하자 손님은 그만 그의 연령대를 자신보다 낮게 보고는 “내 동생뻘이네~.”라고 말한다. 이곳의 공기 좋고 물 좋은 환경을 누리고 있으니, 갈수록 더 건강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바탕 웃음판이 벌어진 후에도, 그의 이발 기술은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그가 가게 입구 연탄난로 위에 있는 큰 주전자 물을 통에 붓자 하얀 면도 거품이 피어오른다. 이윽고 최 이발사가 손님 얼굴에 부드럽게 하얀 거품을 묻히고, 면도칼을 들어 거칠게 난 수염을 깎아 낸다. 구레나룻부터 목 뒤를 지나 다시 반대쪽 구레나룻까지…. 면도칼이 깎아낸 수염이 신문 조각에 ‘쓰윽쓰윽’ 묻어난다. 깔끔해진 손님의 외모가 마치 어제까지 구름 껴 빗줄기를 쏟아내던 하늘이 오늘은 맑게 갠 모습과 같다.
곧이어 손님은 세면대 앞 의자에 옮겨 앉는다. 세면대에 고개를 숙인 채 머리를 감고 세수까지 마치면 드디어 이발 끝, 드라이가 시작된다. 손님들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오래된 나무 받침대, 물뿌리개, 100W(와트) 드라이기 등의 물건은 아까부터 얼마나 정겹게 손님과 어울리고 있는가.
한창 탄광 산업이 발전하던 시절, 전국 각지에서 이 지역을 찾아온 사람들처럼 최 이발사 또한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며 살아간다. 그가 때때로 아담한 이발소 문을 열어젖히고 저 너머, 문을 닫은 광산 쪽을 바라보거나, 광부로 일했던 이들을 추억하는 이유다.
“옛날에는 이발사를 의사라고 했어요. 아는 게 많으니까요.” 많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눠온 만큼 아는 것도 많아진 그가 흰 가운을 펄럭이며 손님들에게 농담을 건넨다. 그러자 갖은 시대변화를 다 겪어낸 사람들의 모습이 손님과 그가 마주 본 공간에 스쳐 간다.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은 이곳에서 손님들의 머리가 단정한 모습으로 재탄생된다. 손바닥에 스킨과 로션을 흠뻑 덜어 얼굴에 바르니 은은한 향까지 솔솔 풍긴다. 새 모습으로 탄생한 이들이 새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해 이발소를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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