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취재. 노태형 편집인

1.
한 무더기 돌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세상에 그 흔한 돌들입니다.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다 다른, 같은 것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들을 무정물이라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앉아 있으니 무시당하는 거죠. 아무 생각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덮고 바람에 낙엽이 날려도 스쳐만 지날 뿐입니다. 그렇게 수천 겁의 세월이 지나면 이들의 모양도 변한다고는 하는군요. 제가 사는 세월이 이들을 따라가지 못해 감히 단정하지 않습니다. 소문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죠. 이 무정물 앞에서 사람의 생명은 하루살이에 불과하죠.

2.
누군가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읍니다.
제 각각의 돌들이 모이면 당황스러워집니다. 생긴 그대로를 살려 무언가를 만드는 작업은 먼저 조합에서 비틀어집니다. 이리저리, 사면 팔면을 한참 들여다보고서야 비로소 쓰임새를 알게 되죠. 큰 것은 아래로, 작은 것은 안으로, 거친 면은 거친 것들로, 평평한 것은 평평한 것으로….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갑니다. 돌들이 영차영차 자기 자리를 잡아갑니다. 덩치 크다는 이유로 아래에 깔려 그 무게를 다 감당하는데 불평이야 없겠습니까. 하지만 짝을 맞추어 한 계단 한 계단 하늘로 올라갑니다. 마치 죽순처럼 말이죠. 그렇게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온 세월이 천년입니다.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눈보라를 견뎌내며, 봄여름가을겨울이 잠시 머물다 떠납니다.

3.
어떤 이의 간절한 소망이 쌓였습니다.
외진 산속에 숨어들어 짐승의 발자국 소리만이 가끔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시간이 냇물처럼 흘러갑니다. 사는 게 상처라는데, 그 아픔이 지나온 세월보다도 더 많이 눌러 붙었겠죠. 한이 구슬처럼 또르르 구르는 밤이면 잠 못 드는 어둠을 헤집고 다닙니다. 그러다 알게 되죠. 그 모든 게 부질없음을.
돌들을 하나씩 주워 모읍니다. 이 매끈한 돌은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고, 이 길쭉한 돌은 내가 차마 잊지 못하는 연인이며, 이 거친 돌은 내 몸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아이이며, 이 평평한 돌은 나의 든든한 친구이고, 이 쪼개진 돌은 늘 부딪히던 이웃들이고, 세월에 쓸려 둥글둥글 그을린 돌은 나를 견디게 해준 자연이며, 이 온갖 모난 돌은 내가 의지해 사는 세상 등등입니다. 그 간절함으로 온갖 돌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하나 하늘로 쌓아 올립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고, 밤이 흐르면 다시 낮이 되는 시간들. 비로소 알게 되죠. 세상에 탑을 쌓지 못하는 돌은 없습니다.

4.
비로소 비워집니다.
세상을 위한 기도가 알알이 박혔습니다. 내가 없으니 세상이 살아납니다. 무정한 돌들이 간절한 기도로 피었습니다. 다시, 억겁의 세월 동안 사람들은 이 돌탑 앞에서 간절히 소망의 꽃을 피울 겁니다. 누군가 쌓았기에 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공든 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아니 무너트려서는 안 되고,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공든 탑이 희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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