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세월 오롯이 담긴, 시계방
멈췄던
시계가 움직이다
취재. 이현경 기자

시간은 흘러도 시계는 그를 기다린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에 위치한 35년여 역사의 시계방. 정인성·김순옥 부부가 가게 문을 여는 순간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한다. 먼 손님이 보내온 멈춰버린 시계다.
정 씨가 익숙하다는 듯 상자 안 시계를 살피더니, 긴 띠지 위에 날짜, 이름, 전화번호, 시계 상태 등을 꼼꼼히 적는다. 이후 환자의 손목에 두르듯 시계에 긴 띠지를 둘러 묶으면 접수 완료. 그러나 오늘 처음 온 시계는 그의 작업대 한쪽에 있는 시계 더미보다 돌아갈 순서가 늦을 듯하다.
이곳 시계는 손목시계뿐 아니라, 벽면을 가득 채운 전자시계·뻐꾸기시계·부엉이시계·100년이 넘은 태엽시계 등 종류도 다양하고 사연도 다양하다. 언뜻 판매용으로 보이지만, 손님이 수리 맡긴 후 찾아가지 않은 물건들이 꽤 자리하기 때문이다.

“네, 신화사입니다~.” 전화벨이 울리고 가게 문이 연달아 열리면 곧 실내가 북적북적하다. 그 사이 손님들은 “시계가 안 가요.” “시계 약 갈아주세요.” “이 시곗줄 몇 칸 줄여야 해요?”라며 정 씨의 작업대에 물음을 쏟아낸다. 오래된 나무 책상 위에 투명한 유리로 공간을 세운 그의 자리에는 65년 시계 수리기술이 펼쳐져 자연스레 눈길을 끈다.
먼저 정 씨는 수많은 시계 부품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작업하기 전 자신과 작업대 사이에 흰 천을 펼친다. 그는 익숙한 듯 시계 뒤쪽의 뚜껑을 한 번에 열어 시계 건전지를 교체하는 일에서부터, 부러진 시계 부속을 새로 만들어 끼우는 일, 기계식 시계를 분해하여 점검·수리·조정하는 일까지 길게는 며칠, 그 이상이 걸리는 다양한 작업을 진행한다.
작업에 온 심혈을 기울이는 그. 순간순간 쇠로 된 도구들이 스치는 소리조차 그의 빠른 손 움직임보다 존재감이 작을 정도다. 충청도에 하나밖에 없다는 부속 세공 선반기, 투명한 통에 가지런히 정리된 시계 부품들, 길이가 짧아진 쇠로 된 작업 도구들이 그를 돕는다.

바람이 나오는 볼펜대로 시계 먼지를 털어내고 어느새 직접 개발한 손목시계 뚜껑 덮개 기기로 빈틈없이 시계 뚜껑을 닫는다. 그가 왼손에 찬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며 손님 시계의 시간을 맞추기 시작한다. 돋보기를 붙여 만든 안경을 벗어도 되는 때다.
“여기 있습니다.” 정 씨가 손수건으로 꾹꾹 닦은 손님의 시계를 건넨다. 이제 손님의 시간이 다른 사람과 같이 흐르는 것. 손님들은 어느새 시계 수리와 더불어 친절과 신뢰, 직업에 대한 열정을 손에 쥔다. 여기엔 그의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과 인생도 담겨 있다.
사실 오늘날이 있기까지 그의 길을 이끈 건 7살에 발목을 접질렸던 사고다. 제대로 된 병원조차 없었던 시절, 그는 부어오르는 발목에 어떤 이의 침을 맞았고, 결국 장애 4급을 얻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희생적인 노력과 스스로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고민하던 그는 14살 때부터 시계 수리기술을 배웠다.

“‘나는 이거 아니면 안 된다.’”라는 생각으로 해왔어요.” 시계방 주인이 외출한 사이 혼자 손님의 시계를 수리해 첫 칭찬을 받은 이후 꾸준히 이 일을 해온 것이 얼마나 되었을까. 정 씨는 오늘날 “아내가 아니었으면 가게를 못 했을 것.”이라며 그의 든든한 존재를 말한다. 순옥 씨 또한 꾸준하고 성실하게 일해온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이다.
손님들은 부부에게 “옆에 오래 계셔주세요~. 이곳 아니면 어디서 시계를 고치겠어요.”라며 마음을 건넨다. 어느 대학생 손님은 친구들에게 나눠 주겠다며 명함을 여러 장 챙기기도 한다. “고객이 ‘이만한 가격이면 되겠다.’ 생각할 만큼의 비용만 받고 있어요.”

하기야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항상 가게를 지키는 것이 손님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신념이다. 부부가 올곧게 살아온 삶의 자세가 그의 기술에 오롯이 베어 다른 이들의 시간과 마음을 움직인 것. “시계가 얼마나 중요해요. 시계가 없으면 약속이든 뭐든 다 어긋나잖아요. 가격에 상관없이 시계라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거죠.”
정인성 씨는 꿈에서라도 시계 수리를 해내야 머리가 개운하다며 일에 대한 열정을 보인다. 그의 며느리 또한 토요일이면 가끔 이곳을 찾아와 시계 수리를 도와주니, 앞으로 가게를 확장해 가족과 함께할 나날도 그린다. 어느새 그 시간이 가까워진 기분이다.  신화사Ι043)223-3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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