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
최정안 감찰원장
대담. 노태형 사장  정리. 장지해 편집장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우리 엄마 같은 분을 빨리 데려갔을까.’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10대 소녀는 젊은 나이에 생을 달리한 어머니의 죽음에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속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한 채 그저 마음에 묻고 수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오빠의 권유로 서울에 올라가 미싱자수 기술을 배워 수사로 취직한 곳이 바로 그 유명한 화동침구다.
원불교 직장법회 1호 역사를 가지고 있는 화동침구에는 수요일마다 출장법회가 열렸다. 종교는 다르지만 한쪽 구석에 앉아 법회에 참석하곤 했던 어느 날, 장성진 교무님의 ‘인연의 소치는 과거에 인연을 그만큼 걸어놨기 때문에 짧게 또는 길게 결정이 되는 것이다.’라는 내용의 인과법문을 듣게 된 최정안 감찰원장. “그 법문을 들으니까 우리 엄마가 우리 곁을 빨리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게 이해가 되면서 제 마음에 있던 의구심이 풀리게 됐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엄마를 제 마음에서 보내드리게 된 거죠.” 이후, 자연스럽게 생긴 발심은 입교와 전무출신 서원까지 하게 만들었다. 화동침구를 운영하던 만타원 김명환 종사는 은모(恩母)로서, 기독교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한 최 감찰원장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다.
교단의 어머니 역할을 하는 감찰원장직을 수행한 지 어느덧 1년여. 곳곳에서 역사를 일궈내며 ‘교단의 대표’로써 살아가는 이들에게, 최 감찰원장은 무조건 ‘고마움의 박수’를 먼저 친 후 감찰을 시작한다.


● 감찰원장으로 1년을 보낸 소회가 어떠세요.
“저는 여러 가지로 부족해서, 처음엔 이 중직이 내 옷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맡겨진 일이니까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죠. 총부에 살면서 특히 ‘나를 원불교로 이끌어주신 은모님의 은혜가 크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열심히 공부하면 나도 부처될 수 있다는 공부법을 배우는 것과, 내 힘 닿는 대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좋은 것은 무조건 남을 먼저 주고, 나는 안 좋은 걸 써도(가져도) 괜찮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간다는 최 감찰원장. 그는 한 때 ‘도시 빈민 교화’를 자원하기도 했었다. 그 서원은 비록 실현되지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낮은 자리를 찾아가고자 했던 마음이 어디 쉽게 나오는 것이던가.

● 감찰원장님이 이렇게 따뜻해서 감찰이 되나요?
“잘못된 걸 지적하고, 나무라고, 벌주는 것이 감찰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사람이 귀할 때잖아요. 교화를 하다 보면 정말로 그래요.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사람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죠. 실무적으로 부족한 것은 교정할 수 있게 돕고, 잘못된 것은 함께 길을 모색하고, 잘한 것은 더 잘하라고 박수도 쳐주면서요. 기관 기관의 교무님들이 다 교단을 대표해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전무출신들 참 장하다. 전무출신은 역시 전무출신이다.’ 하는 감탄을 참 많이 해요.”

한 사람의 열정과 헌신이 묵은 밭을 일궈낸 대표 사례로 완도소남훈련원의 이야기를 전하는 그. 찬란했던 과거가 무색하게 묵혀있던 곳을 온통 헌신으로 새롭게 일궈낸 그 모습에서 ‘두 마음 없는’ 전무출신 삶의 일면을 보았다는 것이다. 그 외 여러 기관에서도 전무출신 한 명이 몇 명분을 해내며 살아가는 모습은 때론 장하기도, 고맙기도, 가슴이 아팠다고도 전한다.
본래 따뜻했느냐는 질문에 원래는 남의 잘못을 잘 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고 말하는 최 감찰원장. 하지만 예비교무 과정에서 리더 역할(학년장, 회장 등)을 많이 하게 되면서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고, ‘이거 아니잖아.’ 하고 바로 말하던 습성은 점점 ‘그거 말고 다른 방법 없을까?’로 변해갔다고 말한다.

●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근무하셨는데요.
“하와이국제훈련원에서 8년, 미주서부교구장 겸 LA교당 교감교무로 5년, 총 13년을 미국에서 살았어요. 특히 하와이국제훈련원에 근무할 때는 정말 행복하면서도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게 치열하고 바쁘게 살았죠. 스스로 생각할 때 8년을 20년처럼 살았던 것 같아요. 봉불식도 해냈고, 여러 스승님들과 재가·출가 동지들을 모실 기회를 가졌으니 영광이었죠.”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경험, 특히 하와이국제훈련원에서 근무했던 8년의 시간은 그의 자력을 키워주는 계기가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 각자 맡은 일에 최선을 다 할 수 있도록, 지금도 웬만하면 운전을 비롯해 생활의 소소한 일들은 직접 처리한다.

● 교화 현장에서 늘 재밌고 행복하셨다는 소문이 자자하던데요.
“기독교 다니던 꼬맹이가 커서 원불교 교무를 하면서, 비록 능력은 부족하지만 부족한대로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니 감사해하며 흔연하게 살아요. ‘이렇게 좋은 일터를 만났으니 능력이 조금 더 있다면 교단이나 교도님들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텐데.’ 싶어서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죠. 교무라고 군림하려 하기보단 ‘교도님들에게 내가 어떤 도움이 되면 좋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았어요. 정성을 들이면 다 알더라고요.”

독경할 때도, 축원문을 읽을 때도, 기도를 한 번 하더라도, 마음을 실어서 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당부하는 그.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천도재를 지낼 때 성가 46장 ‘청정법계 둘 아니니’를 행진곡처럼 씩씩하게 부르기보단 가족들의 슬픈 마음을 헤아리며 부르는 것. 사소한 그 한 번의 마음 씀에 서로 같은 감정을 나누게 되니, 어찌 통하지 않을 수 있을까!

● 현장의 어려움을 어떻게 타개해 나가야 할까요?
“먼저, 중앙과 지방의 연계가 더 잘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심장이 튼튼해야 발끝까지 피가 잘 공급되고, 혈관이 튼튼해야 피를 심장으로 보내서 깨끗하게 거를 수 있잖아요. 중앙에서 지방을 지원하고 지방에서 중앙을 향하는 유대관계를 강화하고 챙겨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신심·공심·공부심과 더불어 교리적으로 실력을 갖추고 교리를 실천해내는 교역자들이 많이 나와야 해요. 정신 차려서 공부를 잘 해야 해요.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면 반드시 돼요. 뭔가 답이 있어요.”

이에 덧붙여 그는, 신앙인이자 수행인이자 교화자, 그리고 봉공인으로 살아가기로 서원한 전무출신들이 초심을 재정비해야 한다고도 강조한다. 성직의 길을 ‘직장인’처럼 여긴다거나, 계문을 쉬이 어기며 일반인처럼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많이 아프다는 것. “세상엔 공짜가 없다. 우리가 성직을 택한 이상 희생이 필요하다. 성직을 잘 수행하고 삶을 마칠 때 ‘나 정말 최선을 다했고, 내 삶이 참 보람 있었다.’고 느끼려면 뭔가는 포기를 해야 한다.”는 말에 여운이 가득 실린다.

● 최근, 정남·정녀규정 개정과 관련한 이슈가 상당합니다.
“최근에 이뤄진 정남·정녀규정 개정은 소태산 대종사께서 펼치고자 했던 평등주의사상, 평등주의 정신을 살려낸다는 게 핵심이에요. 후진들이 편리를 위해 중간에 바꿨던 걸 다시 원점으로 돌려서 ‘스스로 선택’하게 하자는 거죠. 물론, 규정이 개정됨에 따라 여러 상황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건 다양한 공의를 통해 잡아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개정된 제도가 정착하기 위해 짧게는 10년, 길게는 더 긴 세월이 예상되지만 “미리 당겨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 재가·출가/선·후진 간에 인식이 변화해 가도록 시간을 가진다면 문제가 생겨도 잘 풀어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미래시대 종교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요.
“미래시대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정전> 개교의 동기에 들어있어요.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앞으로의 세상에서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고 그 물질로 인해 인간이 나약한 존재로 전락되어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것을 면하게 하기 위해 원불교를 연다고 하셨죠. 미국에 살아보니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달된 미국 사람들은 더욱 정직, 실용성, 도덕성을 귀하게 여겨요. 우리 교법이 그런 성향에 맞아 떨어지죠. 개교의 동기는 소태산 대종사께서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설계한 설계도예요. 여기서 답을 찾아가야 해요.”

● 후진들이 창조적·창의적 개척정신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주세요.
“우리가 우리끼리만 있을 땐 별것 아닌 것 같고, 다 부족해 보여요. 하지만 대중 속에 놓고 보면, 그래도 우리는 공을 위해 살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진실하고, 헌신해요. 요즘 사회에서 보기 힘든 진짜배기 사람들인데, 우리 스스로 그 값어치를 모르는 것 같아요. 성직자로서, 교무로서, 전무출신으로서 ‘나는 이 세상에 보기 힘든 대단한 사람’이라는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불평하지 않고, 맡겨진 일에 충실한 후배가 예뻐 보이더라고 말하는 최 감찰원장. ‘네가 지금 마당을 쓰는 것은 마당만 쓰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한 모퉁이를 쓸고 있는 것이다.’라고 했던 소태산 대종사의 말처럼, 현실에서의 어려움이야 당연히 있음에도 묵묵히 ‘나는 세계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내가 달라지면 교단과 세계가 달라진다.’는 마음으로 노력하는 후배들을 보면 닮고 싶다고.

● 세상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을 전해주세요.
“전생에 지어놓은 그대로 갖고 태어나는 것을 세상에서는 사주팔자라고 해요. 하지만 이미 정해진 사주팔자도 바꿀 수가 있어요. 그게 소태산 대종사께서 밝혀주신 용심법(用心法:마음사용법)이에요. 인과를 설명할 때 ‘과거에 지은 것이므로 필연적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그것에 바탕해 또 새로운 업을 짓는 것이므로 이후의 것은 얼마든지 바꿔 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해요. 어떤 마음을 먹고, 어디에 공을 들이고,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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