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와 왕진

더 이상 교도의 법회출석과 입교연원만을 의무로 역설하고,
독보적인 교화척도인 것처럼 강조해서는 안 된다.

글. 고원국

먼저 결론부터 말하자. 원불교 교화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순교가 중요하고 시급하다.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순교(殉敎)가 아니라 ‘순교(巡敎)’ 말이다. 순교는 교무를 비롯한 교역자가 일원상의 진리와 소태산 대종사님의 가르침을 파란고해의 일체 생령들에게 전하고 고통을 어루만지기 위해서 돌아다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부산울산교구 교당별 출석교도 수 추이표’에 따르면, 지난 11년간(원기90~100년) 9,500명이 입교했으나 법회출석교도 수는 오히려 2,849명이 감소했다. 여기서 입교 우선 교화의 부작용으로 인한 입교와 법회출석의 불일치와 법회출석교도 33% 감소 추세가 심각한 문제로 진단되었다. 따라서 교화의 주체가 적극적으로 객체를 찾아나서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반성과 자각에만 그치지 말고 변화된 행동을 즉각 보여야 할 때다.
왕진(往診)은 의사가 병원 밖의 환자가 있는 곳으로 가서 진료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70년대 말까지 성행했던 왕진을 통해서 의사는 환자의 상황에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환자와 함께 고민하며 진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의사가 모두 지니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의료기구가 개발되어 있는 데다가, 환자 한 명을 위해 충분한 시간을 내는 일도 불가능한 의료체계가 구축된 까닭에 의사가 환자의 집으로 왕진하는 일이 거의 사라졌다.
더욱이 현대의학에서는 객관적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환자의 고통과 호소를 무시하고, “검사 결과에는 문제가 없으니 스트레스를 줄이고 이상한 증상이 심해지면 다시 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만연하다. 의사가 환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료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의료장비를 통한 검사 결과에만 의존하고 질병을 고치려는 기계적 역할을 반복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교무와 교역자는 다양한 순교 방법을 개발하여 교도의 아픔에 직접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며 치유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더 이상 교도의 법회출석과 입교연원만을 의무로 역설하고, 독보적인 교화척도인 것처럼 강조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교도들이 처한 불편과 고통을 직접적이고 효과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순교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거동이 불편한 환자와 의료 사각지대에 내몰린 계층을 위하여 왕진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어둠에서 방황하는 중생들을 제도하고 병든 사회를 치료하는 성의를 다하자는 소태산 대종사님의 본의를 실행하는 것이 교화일진대, 입교와 법회출석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시대화·생활화·대중화된 순교를 강화할 때다. 이제부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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