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당황하게 만든 친구의 질문

“그러면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거네?”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글. 박성근

월요일 오후 7시 42분, 서울행 KTX 열차는 익산역 승강장을 미련 없이 빠져나갔다. 기차는 익산을 떠났지만 내 마음은 아직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나는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불과 2시간 전에 있었던 대화가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오전부터 시작된 심심풀이 M3 보수교육은 나에게 방심할 틈을 허락하지 않았고, 오후 6시가 되어서야 마무리가 되었다. 피곤함이 물밀 듯이 밀려왔지만, 때마침 오랜 벗이 익산에 있어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반 남짓했다. 서로의 근황을 물어보다 친구가 “<원광>에 실린 네. 글을 잘 읽고 있노라.”며 대화의 주제를 틀었다. 독자(?)를 만나니 어깨가 으쓱해졌다.
아동심리치료를 전공한 친구는 잠깐 대화를 나누다가 “혹시 아이들이 글 쓰는 거 알아?”라고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아마 모르지 않을까? 물론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을 통해서 듣기는 할 걸?”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자 친구가 “그러면 아이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은 거네?” 하고 되물었다. 그 순간 난 머리가 하얘졌고,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친구는 이어서 나에게 숙제를 주듯이 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가명으로 쓰면 좋지 않을까 해서. 한번 고민해봐!”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나는 내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을 느꼈다. 우리는 더 이상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가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시간에 쫓기듯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이동했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기사나 다른 심리상담 에세이에서 가명은 자주 봤어도, 내 글에도 가명을 쓴다고?’ 처음에는 쉽사리 수긍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무슨 악행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단지 일상을 다루는 내용인데 하는 억울함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비록 짧은 글이지만 좀 더 현장감 있게 생생히 살아있는 글을 담고자 했던 날들을 떠올리며 나름 합리화를 열심히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경우가 많았다. <원광>에 실린 내 글을 보신 교도님들이 “교무님! OO가 법회 때 그랬다면서요!”라고 바로바로 물어오셨다. 특히 어린이 법회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가 정말 그랬느냐? 교무님 힘들게 하니깐 혼내야겠다.”라고 하기도 하셨다.
반대로 아이들은 부모님에게 말을 듣고서 나에게 물어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내가 난감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래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실명으로 거론된 아이들, 학생들, 청년들 모두 동의 없이 그들의 사생활을 내가 노출시켰구나.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20년 지기 친구가 툭 던진 숙제는 미뤄서는 안 되는 숙제였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얘들아~ 허락 없이 너희들 이름을 거론해서 미안해. 교무님이 생각이 짧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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