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들의 달콤한 세상, 양봉
취재. 이현경 기자

꿀벌과 함께 하는 꽃길김진광 씨 눈은 늘 꽃을 향한다.
집에서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양봉장으로 갈 때도 마찬가지다. “갑자기 날이 따뜻해지니까 꽃이 하루하루 다르네~.” “산에 가 보면 하얀데, 여긴 아직 꽃이 덜 펴서 푸르구나~.” 여느 이들 같으면 도로 옆 아카시아나무도, 먼 산의 푸름도 그저 지나칠 풍경에 지나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다르다. “꽃은 생명이니까요. 일 년 내내 꽃을 보려고 준비하는걸요?” 올해 개화 시기가 늦은 감도 있지만, 그 차이는 길어야 삼일. 꽃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날짜에 맞게 정확히 필 것임을 그는 안다.

정읍 이평초등학교 후문 맞은편에 위치한 그의 양봉장. 너른 터 옆 큰 나무들이 만들어낸 울타리 아래 벌통들이 2열로 놓여있다. 며칠 내 이동양봉을 떠나기 위해 위아래 두 개씩 쌓아놓은 모습인데, 오늘 그 벌통들을 끈으로 묶을 예정이다.
김 씨가 머리망을 쓰고 다가가니, 언뜻 인기척만이 들릴 것 같던 곳에서 순식간에 윙윙대는 벌들의 날갯짓이 요란하다. 벌들의 천국, 각자의 작은 날갯짓들이 모여 그 위세를 당당히 드러내는 공간이었던 셈. 하기야 이곳에 놓인 벌통만 해도 300여개. 벌통 하나당 벌이 3만~5만 마리이니, 그 수를 다 가늠하기가 힘들 정도다.
그가 벌통을 열어 벌의 상태를 살핀다. 벌들이 집을 지어놓은 소비 하나를 들자 어린 벌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몇 개의 벌통을 보았을까. 그가 벌의 세력이 약한 통을 따로 빼놓는다. “벌통 하나에서 나온 꿀이 네 통에서 나온 꿀보다 더 많은 경우도 있어요.” 벌의 세력과 수에 따라 꿀의 양이 달라지는 것이다.

벌을 정성 들여 키우는 것은 기본이요, 좋은 밀원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여기엔 운도 따라야 한다. “어떤 때는 이동하는 곳마다 비가 온 적도 있어요.” 그의 말처럼, 작년엔 비가 자주 와서 꿀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벌통 하나하나를 들어 그 아래에 끈을 내려놓는 김 씨. 그러자 이리저리 손볼 곳이 눈에 띈다. 벌통의 틈 사이로 나와 있는 벌들을 보고는 이내 그 구멍을 메우더니, 결국 그가 다른 벌통을 보고 몸을 일으킨다. “통 갈이 하나를 해야지.” 하며 솔잎에 불을 붙여 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연기를 뿜는다.

벌놀이가 활발한 오후 시간에 시작된 작업. 그가 장갑을 끼고 연장을 챙겨 나와 본격적으로 벌통 교체를 시작한다. 많은 수의 벌들이 김 씨 주위를 윙윙대자 그도 이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귓가에 윙윙대기가 무섭게 한 방, 두 방, 벌들은 순식간에 김 씨를 쏘아대며 그 흔적을 남긴다. 그런데도 정작 그는 덤덤하다. “양봉하는 사람들이 수명이 길대요.”라며 웃어넘기는 것.
그도 그럴 것이, 40여년 양봉 경력에 벌에 쏘인 것이 어디 한두 번이랴. 수시로 양봉 관련 교육을 들으며 최신 동향과 지식을 통해 철저한 대비도 해놓았다. 더구나 톡 쏘는 벌침만큼이나 그 꿀의 달콤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아는 그. “처음 2, 3년은 다른 이들을 따라다니며 일을 배웠죠.” 예전에는 꽃 피는 시기가 지역마다 차이가 커서 제주도부터 강원도까지 꽃을 따라 올라갔던 추억도 더한다.

“배에 벌통을 싣고 제주 유채꿀을 얻은 적도 있고요. 대구에서 서울, 강원도까지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며 싸리꽃에서 꿀도 얻었었죠.” 이처럼 꼬박 20~25일 정도의 일정을 소화했던 그. 전국 안 가본 데가 없으니 곳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이웃과 단골손님도 제법 많다. 그가 종종 “언제까지 이 일을 할지 몰라요~.”라고 말할 때마다 “하시는 날까지 오셔요~.”라며 꽃이 피기 전부터 그에게 전화를 거는 이웃들이 있는 것. 이뿐이 아니다. 그가 판매하는 꿀 또한 사람들에게 단연 인기 만점이다.

색이 진한 잡꿀, 약간 씁쓸한 맛이 나는 밤꿀 등 여러 종류의 꿀 중에서도 아카시아꿀은 사람들의 수요가 가장 많다. “아카시아꿀은 결정이 안 되고 맛이 순해요. 물병에 든 물과 같은 색깔이 나죠.” 그 인기 덕분에 어떤 때는 즉석에서 다 팔려 집에 꿀을 한 병도 갖고 가지 못한 적도 있었다. 꿀에 담긴 정성을 사람들이 먼저 알아본 것이다.
더불어 그는 자연에 대한 감사도 배운다. “세계 인류가 살아가는 데 벌이 많은 공을 세우잖아요.” 꽃이 피고 열매 맺는 과정처럼, 그가 일한 삶의 열매도 이제 시작이다. 어느새 그가 벌과 함께 꽃을 만나러 갈 준비를 다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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